[뉴스컬처 김기주 기자] tvN X TVING 단편 드라마 큐레이션 작품 '화자의 스칼렛'은 단 1편의 이야기 속에 ‘엄마’라는 이름이 주는 무게, 그리고 피보다 진한 사랑의 서사를 촘촘히 담아냈다. 배우 오나라와 김시은이 빚어낸 특별한 모녀의 서사는 짧지만 진한 울림을 남기며, “가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졌다.
극의 시작은 다소 잔잔했다. 20년 전, 딸을 미국으로 입양 보낼 수밖에 없었던 엄마 ‘화자’(오나라)는 시장 국숫집에서 평범한 일상을 살아간다. 그러나 어느 날, 금발머리의 낯선 소녀 ‘스칼렛’(김시은)이 나타나고, 국수를 먹다 코에 면발을 묻힌 채 말없이 앉아있는 그녀를 향해 화자는 본능적으로 손을 뻗는다.
그 순간, 모정은 국경도 혈연도 초월한다. “엄마, 나예요.”라는 한마디와 함께 이루어진 눈물의 포옹은 보는 이의 가슴을 울리며, 이들의 특별한 서사를 예고한다.
하지만 '화자의 스칼렛'이 모녀 상봉극에 그치지 않는 이유는, 스칼렛의 정체와 그녀의 과거 때문이다.
스칼렛은 사실 입양된 화자의 친딸이 아닌, 미군 클럽에서 노래를 부르던 재즈 가수 레나(서영희)의 딸이다. 레나는 임신 사실을 부정했고, 태어난 스칼렛은 사랑을 받기는커녕 존재 자체를 부정당했다.
그럼에도 스칼렛은 “엄마의 딸이 되고 싶었어요”라고 편지를 남기며, 진짜 모정이 아닌 ‘엄마가 되고 싶었던 사람’ 화자에게 가 닿는다. 결국 화자는 스칼렛이 친딸이 아님을 알고 있음에도 그녀를 딸로 받아들인다. 이 지점에서 드라마는 “가족은 피가 아닌 마음”이라는 진리를 설득력 있게 풀어낸다.
드라마 후반, 스칼렛이 폐암 말기라는 사실이 밝혀지며 비극은 절정에 다다른다. 수혈을 위해 스칼렛의 친모 레나를 찾아간 화자는, 되려 “그 애는 이름도 없는 애야”라는 차가운 비난을 듣는다. 이에 화자는 “우리 스칼렛 너무 가여워. 당신 엄마 하지 마”라며 절규하고, 그 순간 시청자도 함께 오열한다.
모성애를 타고나지 않은 레나와, 모성애를 가슴으로 키운 화자. 두 인물의 대비는 짧은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깊은 여운을 남긴다.
'화자의 스칼렛'이 특별했던 또 하나의 이유는, 배우들의 내면 연기다.
오나라는 잃어버린 딸을 향한 절절한 모정부터, 다시 잃게 되는 상실의 고통까지 온몸으로 표현해내며 시청자의 감정을 뒤흔들었다.
김시은은 “엄마, 사랑해도 돼요?”라고 묻는 마지막 대사까지, 스칼렛의 외로움과 사랑받고 싶은 갈망을 그렁그렁한 눈빛 하나로 전했다.
여기에 서영희는 모성을 거부하는 레나를 섬세한 분노와 슬픔으로 풀어냈고, 이재균은 ‘엘라’라는 젠더 경계를 초월한 보호자 역할을 따뜻하게 담아내며 극의 울림을 더했다.
에필로그에서는 첫눈 내리는 날, 손톱에 봉숭아 물을 들이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화자와 스칼렛의 모습이 그려진다. 현실은 비극으로 끝났지만, 그 속에서도 기적처럼 존재했던 사랑의 한 장면이다.
'화자의 스칼렛'은 이처럼 우리가 너무 쉽게 지나쳐버리는 "사랑받을 자격"에 대해 되묻는다. 그것은 혈연이 아닐 수도 있고, 오랜 시간이 쌓아준 신뢰도 아닐 수 있다. 단지, “당신이 내 딸이었으면 좋겠어요”라는 말 한마디면 충분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단편 드라마’는 종종 이야기의 깊이나 감정의 몰입에서 아쉬움을 남기곤 한다. 하지만 '화자의 스칼렛'은 그 틀을 정면으로 깨부순다.
짧은 러닝타임에 진한 감정의 파동을 담아낸 작품은, 가족과 모성, 그리고 사랑의 정의에 대한 정제된 시선과 강렬한 서사를 선보였다.
"피보다 진한 사랑, 그리고 가족의 재정의. 당신도 ‘화자’가 될 수 있고, ‘스칼렛’일 수도 있다."
뉴스컬처 김기주 kimkj@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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