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쯤되면 막가자는 거지요?”(노무현 전 대통령)
지난 2003년 3월 9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참석한 ‘전국 검사들과의 대화’ 자리에서 나온 이 발언들은 진보 진영의 검찰개혁 의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면이다. 훗날 진보 진영에서는 당시 검찰 내부에 만연한 조직 이기주의, 정치적 중립 부족, 폐쇄적인 문화 등이 여실히 드러난 것이라며 이를 갈았다고 한다.
|
◇“검찰 개혁해야 됩니다”...노무현 정부가 마주한 집단 항명
노 전 대통령은 20년이 넘게 걸린 검찰개혁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노무현 정부는 역사상 최초로 본격적인 검찰개혁에 나선 정권이기 때문이다. 그가 지난 2002년 대선 후보 당시 충남대학교 연설에서 “제대로 된 나라라면 제대로 수사받고 제대로 처벌받아야 되는 것이지요. 검찰이라는 사람들이 흐지부지 덮어버려요. 답답합니다. 속 탑니다. 이것 개혁해야 됩니다”라고 이야기한 건 그의 검찰개혁 의지를 단적으로 보여준 장면으로 꼽힌다.
노 전 대통령은 취임 후 검찰개혁의 신호탄으로 당시 강금실 변호사를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했다. 여성, 법관 출신 변호사, 낮은 사법연수원 기수 등 파격적인 인선이었다. 검찰 출신이 법무부를 장악해 왔다고 생각한 노 전 대통령은 강 장관을 통해 ‘법무부의 문민화’와 동시에 검찰의 수사권 독립은 존중하되 상급기관으로서 검찰을 견제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아울러 2004년 1월에는 검찰청법 개정을 통해 검사동일체 원칙을 법적으로 폐지했다. 검사동일체는 검사들이 검찰총장을 정점으로 하는 피라미드식 조직 내에서 상명하복 관계를 가지고 일체불가분의 형태로 검찰사무를 처리하는 원칙을 말한다.
하지만 이같은 속전속결 행태는 검찰의 반발을 불러왔다. 절정은 ‘검사와의 대화’에서 였다. 당시 이완규 검사는 이 자리에서 노 대통령을 향해 법무부 장관이 갖고 있는 검찰 인사권을 검찰총장에게 넘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완규 검사는 훗날 윤석열 전 대통령 ‘40년 지기’로 윤 정부 당시 법제처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검사와의 대화가 있은 후 김각영 검찰총장은 항명성 사표를 냈다.
이후에도 검찰의 집단 반발은 이어졌다. 그로 인해 당초 참여정부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폐지,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 검경 수사권 조정 등을 추진했으나 무위에 그쳤다. 문재인 전 대통령과 참여정부 시민사회비서관으로 일한 김인회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함께 쓴 책 ‘검찰개혁을 생각한다’에서 당시를 두고 “검찰은 참여정부의 검찰인사에 대해 역사상 한 번도 시도해 본 적이 없는 집단 항명으로 저항했다”며 “검찰개혁으로 인하여 검사들이 기존에 누리던 모든 기득권을 다 빼앗긴다고 생각해 이에 저항한 것”이라고 썼다.
|
◇보수 정권에서도 이어진 검찰개혁…그때마다 집단 항명
미완의 검찰개혁은 노 전 대통령 서거라는 비극으로 찾아왔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의 뇌물 수수 관련 수사를 대대적으로 시행했다. ‘논두렁 시계’로 대표되는 검찰의 과도한 수사와 언론플레이에 노 전 대통령은 스스로 운명을 달리했다. 유서에서는 검찰의 과도한 수사로 심적인 고통을 많이 겪었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검찰개혁에 대한 국민적 목소리가 커졌다. 이에 이명박 대통령도 검찰개혁 일환으로 검경 수사권 조정에 나섰다. 2011년 해당 내용을 담은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 압도적 표차로 통과됐다. 물론 이번에도 검찰의 집단 반발이 일었다. 당시 김준규 검찰총장은 임기 46일을 남겨두고 사퇴했다. 동시에 대검 검사장들과 검사들도 집단으로 사표를 내며 항의했다. 2012년 한상대 전 검찰총장도 검찰개혁 일환으로 대검 중앙수사부(중수부) 폐지를 추진하다 내부 반발로 사임했다.
이후 박근혜 정부는 2013년 4일 대검 중수부를 공식적으로 폐지했다. 중수부 폐지 이후 대검 산하에 반부패부가 신설되면서 이 부서와 서울중앙지검 특수부로 수사 기능이 이관됐다. 노무현 정부부터 추진해 온 중수부 폐지가 박근혜 정부에서야 비로소 완성된 것이다.
다만 검찰은 그 이후에도 ‘정치 검찰’이라는 오명을 벗지는 못했다. 2014년 이른바 비선실세가 국정운영을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내용의 ‘정윤회 문건’이 폭로됐지만, 검찰은 의혹에 대한 수사 대신 문서를 유출한 사람만 수사해 기소하는 모습을 보였다. 2016년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며 비선 실세는 사실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여기에 검찰이 국정농단 혐의로 조사를 받는 우병우 전 민정수석을 극진히 모시는 듯한 모습을 보이며 검찰개혁에 대한 요구는 또다시 커졌다.
이후 검찰개혁의 공은 노 전 대통령의 유지를 이어받은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로 넘어갔다.
Copyright ⓒ 이데일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