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왓츠앱 단체 대화방에서 브라질 출신 여성 이민자가 "이제 공공장소에서 소리 내 말하지 말라"라는 조언과 함께 수화 튜토리얼 영상을 공유했다.
수화로 대화하라는 조언은 이러한 대화방 사용자들 사이에서 돌던 여러 조언 중 하나다. 이들 중 대다수가 서류 미비 이민자이며, 이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다시 집권한 이후 미국 이민 단속국 직원들의 주목을 피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다.
조언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또 다른 이민자는 사용자들에게 더 '미국인'같아 보여야 한다면서 포루투갈어를 쓰는 자녀들을 데리고 밖에 나가지 말 것, 선글라스를 착용할 것, 차에 트럼프 지지 스티커를 붙일 것 등의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했다.
지난 몇 주간 BBC 브라질 뉴스는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의 최근 행보가 일상생활을 어떻게 뒤흔들고, 불안감을 고조시키는지를 파악하고자 이러한 왓츠앱 단체 대화방을 추적해왔다.
취재진은 미국 최대 브라질인 커뮤니티가 있는 매사추세츠주의 단체 대화방들을 모니터링했다. 현지 NGO에 따르면 매사추세츠주에만 브라질 출신 약 30만 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메시지 내용은 실제 대화방에 올라온 내용을 바탕으로 구성했으나, 사용자의 이름은 신원보호를 위해 가명으로 대체했다.
ICE 검문소 위치를 알리는 메시지부터, 구금된 이들의 사진 혹은 심지어 체포된 이들이 두고 간 차량을 담은 사진까지 이러한 대화방에는 매일 수천 건의 메시지가 쏟아지고 있다. 모두 가족들이 알아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올리는 것이다.
법적으로 ICE 요원들은 영장 없이 주거지에 진입할 수 없다. 이에 요원들은 일반적으로 공공장소에서의 체포를 허용하는 행정 영장을 소지하고 다닌다. 이에 "의심스러운" 인물로 판단되면 그 누구든 구금할 수 있다.
지난달 초 미국 연방대법원은 이민자 검문 및 구금에 대한 당국의 더 넓은 재량권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리며 트럼프 행정부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러나 이같은 조치가 인종이나 언어를 근거로 한 체포를 가능하게 할 수 있다며 우려하는 이들도 있다.
지역 주민들은 사실상 체포에 대한 "백지수표"를 내어준 셈이라고 말한다.
이미 많은 이들의 생활 방식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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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중 단속
트럼프 현 행정부의 주요 목표 중 하나는 바로 미국으로의 불법 이민을 억제하고 서류 미비 이민자를 추방하는 것이다.
2024년 대선 운동 당시, 트럼프 후보는 통제되지 않은 이민이 국가의 "피를 오염"시키고, 미국인들의 "일자리를 빼앗아 가며", 공공 서비스를 압박한다고 주장했다.
미 국토안보부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에 복귀한 이후 지금까지 약 40만 명이 추방되었다. 브라질 현지 언론 보도가 인용한 공식 통계에 따르면, 이 중 올해 1월 이후 브라질로 추방된 이들은 2000명을 웃돈다.
현재 이민자 약 6만 명이 구금 시설에 수용 중인데, 이는 미국 언론이 인용한 전문가들의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사상 최대 규모다. 트럼프가 처음 취임했을 당시 구금자 수는 3만9000명대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앞서 백악관 관계자들은 ICE가 하루 3000건씩 체포하길 바란다고 말한 바 있다.
'홀연히 사라진' 사람들
브라질 출신으로 미국인과 결혼해 합법적으로 거주하는 로레나 베츠(37)는 이민자들의 신고를 받고, 체포 현장을 실시간으로 촬영하는 자원봉사 네트워크를 설립했다.
베츠에 따르면 최근 구금된 이들이 대거 늘어난 이후 "홀연히 사라진" 사람들에 대한 신고가 급증했다고 한다. 그리고 왓츠앱 단체 대화방은 정보를 공유하는 생명선이 되었다는 설명이다.
현재 민주당 소속으로 매사추세츠주 하원의원 선거에 출마한 베츠는 "보스턴에서 체포된 이들이 다음 날 뉴욕으로, 그다음에는 루이지애나로 이송된다"며 "남부 지역 판사들이 더 가혹한 형량을 선고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한 대화방의 관리자인 주니어(27)는 매일 오전 5시만 되면 메시지가 쏟아진다고 말했다. ICE 요원들이 보통 업무를 시작하는 시간이다.
3년 전 브라질에서 건너와 매사추세츠주 로웰에서 배달 일을 하며 살고 있다는 그는 "그때부터 대화방에 정보가 쇄도하기 시작한다"고 했다.
올해 1월 트럼프가 재집권했을 당시 이민 단속 정보를 공유하는 네트워크를 구축하고자 이 같은 대화방을 만들었다는 주니어는 "ICE 차량이나 요원들이 종종 위장 근무를 하기에 사람들의 영상 및 (차량) 번호판 공유가 큰 도움이 되고 있다"면서도 거짓된 정보가 돌고 있다는 점도 인정했다.
한편 피난처 도시임을 자처하는 보스턴은 연방 정부의 이민 단속에 협력하길 거부하고 있다.
9월 초 트럼프 행정부는 단속 작전을 공개적으로 비판해 온 민주당 소속 미셸 우 보스턴 시장의 정책에 대응해 '애국자 작전 2.0'을 시작했다. 이는 3월과 5월에 이어 올해 매사추세츠주 내에서 벌어진 3번째 대규모 ICE 작전이다.
ICE는 브라질인 구금 관련 세부 사항을 요청한 BBC 뉴스 브라질 서비스의 문의에 답변하지 않았다.
하늘의 드론
9월 16일, 브라질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보스턴 북서부의 한 주택 단지에서 공포감이 번져나갔다.
주민들은 단지의 출입구를 막은 차량 사진을 공유하며 집을 떠날 용기가 없다고 호소했다. 단지 내 상공을 촬영한 드론 영상도 올라왔는데, ICE 요원이 탄 것으로 추정되는 차들을 확대한 모습이다.
이민자들은 종종 집 안만이 유일하게 안전하다고 말한다.
한 왓츠앱 사용자는 감정이 격양된 상태로 "1~2주 일하지 않는다고 부자가 못 되는 것도 아니지 않냐. 아니면 아이들과 떨어진 채 수개월간 구금되고 싶냐"면서 사람들에게 일을 잠시 그만두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주니어는 대화방에서 주고받는 내용을 바탕으로 짐작해보면 ICE 요원들은 영장을 기다리는 대신 "먼저 체포하고 나중에 묻는다"는 식으로 나온다고 한다.
현재 주니어는 어머니를 통해 영주권을 신청해 둔 상태나, 여자친구와 여자친구의 아들은 서류가 없어 걱정된다고 했다.
주니어는 "영어를 서툴게 하면 그 자리에서 저들이 잡아간다. 시민권자인지도 신경 쓰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이렇듯 두려움에 떨며 살고 있지만, 브라질로 돌아갈 생각은 없다고 했다. 지난해 잠시 휴가차 브라질에 머물다가 강도를 당하기도 했다.
주니어를 비롯해 대화방에 참여하는 이들은 이러한 감시 시스템에도 한계가 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들(ICE 요원)은 매우 빠르다. 단 4분 만에 누군가를 체포하고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임시방편
자원봉사 네트워크는 정보 격차를 메우고자 노력 중이다. 지역 단체들은 서로 연합하여 이민자들이 ICE 활동을 신고해오면 이에 대응하고, 모니터링 직원을 파견해 현장을 확인하고 촬영해둔다.
베츠가 이끄는 LUCE도 그 중 하나로, 이곳에서는 영어를 하지 못하거나 폭력적인 사건 이후 연락하기 두려워하는 이들을 위한 핫라인도 운영하고 있다.
또한 자원봉사자들은 보안카메라 영상을 수집하고, 이민자들과 변호사들을 연결해 주기도 하며, 심지어 체포로 인해 가족이 소득을 잃게 될 경우 남은 가족의 식료품 구입도 돕는다.
이러한 활동도 왓츠앱 그룹을 통해 이루어지는데, 사적인 네트워크일 때도 있고, 교회나 지역사회 단체와 연계된 공개 대화방인 경우도 있다.
베츠는 "사람들이 전화로 신고하여 상황을 설명해주면 지역 자원봉사자들이 휴대전화를 들고 가서 현장을 기록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경찰 업무를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헌법상 권리인 기록할 권리를 행사하는 것일 뿐"이라고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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