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이상명 기자] 최근 건강보험 재정 부담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는 우려가 의료계와 국회를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특히 약제비 인상과 행위 수가 조정이 동시에 확대되면서, 관련 재정 지출이 불과 5년 만에 약 34배나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제도의 투명성과 지속 가능성을 강화하지 못할 경우, 건강보험 재정이 중대한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3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미애 의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 관계 기관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퇴장방지의약품 지정과 원가 보전·상한금액 조정 등으로 발생한 약제 인상 부담이 2019년 약 17억 원에서 최근에는 약 602억원까지 불어났다. 5년 만에 35배 가까이 폭증한 셈이며 2023년(123억원)과 비교해도 1년 사이 약 4.9배 늘어난 수치다.
퇴장방지의약품 제도 적용 대상 역시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2019년 24건이던 것이 올해는 50건으로, 인상 조정 대상 약제도 같은 기간 5건에서 73건으로 크게 늘었다. 2025년 8월 말 기준으로 이미 약 85억 원이 투입됐고, 연말까지 누적 규모는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이와 더불어 의료행위 수가 조정도 빠르게 이뤄졌다. 2019년부터 2025년 8월 말까지 총 762개 진료 행위가 조정됐는데 이 중 750건은 수가 인상, 9건 신설, 3건은 재분류 조정이었다. 사실상 대부분 기존 진료 항목의 수가가 올랐다는 뜻이다. 김 의원도 "약제와 수가 인상이 동시에 늘어나면서 건강보험 재정 부담이 크게 커지고 있다. 투명하고 합리적인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 현상의 주요 원인으로는 세 가지가 거론된다. 먼저 고가 약제와 퇴장방지의약품의 확대다. 퇴장방지의약품은 제네릭이 있어도 대체제가 마땅치 않은 경우가 많아 시장에서 퇴출되기 힘든 약이다. 정부가 이들 약의 원가를 보전하거나 상한금액을 높여주면서 제약사가 가격을 올릴 여지가 커졌고, 고가 치료제와 희귀병 치료제 분야에서 비용 누적이 빨라졌다.
다음으로 수가 인상 중심의 보상체계가 지적된다. 의료기관은 진료 수입을 끌어올리기 위해 지난해에 이어 수가 인상을 요구했고, 보건 당국도 이를 일정 부분 받아들였다. 그러나 비용 대비 효과나 과잉 진료 우려, 진료 항목 간 형평성 등은 충분히 고려되지 않은 채 인상 폭이 커졌다는 비판이 나온다.
세 번째는 누적 효과와 예측의 어려움이다. 약제 인상과 수가 인상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해마다 부담이 쌓인다. 여기에 고가 약제 확대와 환자, 고령층의 증가가 더해지니 재정 부담이 기하급수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지출이 계속 늘어나면 결국 선택지는 보험료 인상이나 정부 보조금 확대 뿐이다. 하지만 보험료를 올리면 국민 부담이 커져 정치적으로도 논란이 뒤따른다. 이처럼 비용이 급속히 늘면 건강보험 제도의 지속 가능성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예측 가능한 재정 운영이 어려워지고, 운영 부실 가능성도 높아진다.
한편 고가 약제나 특정 치료항목 중심으로 인상이 진행될 경우, 일반 진료나 저비용 항목과의 형평성 논란이 일 수 있다. 또 지역, 의료기관에 따라 수가 인상 폭이 다를 수 있어 의료 접근성 자체가 차별화될 우려도 있다.
투명성이 부족한 수가 조정이나 약제 인상 방식은 국민 신뢰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제도 운영 과정에서 이해관계 충돌이나 불명확한 기준이 드러나면 큰 반발을 부를 수도 있다.
따라서 약제 급여와 수가 인상 결정 과정에서 효과성과 경제성 평가를 더욱 강화하고, 근거에 기반한 조정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고가 신약이나 희귀병 치료제 등에는 성과 기반 지급, 리스크 공유 같은 새로운 방식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약제 가격 조정이나 수가 인상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적용 기준이나 조정 내역 등 국민이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공개 체계를 더 확실하게 만들어야 한다. 또 의사와 약사, 제약업계, 환자 단체 등 여러 이해관계자의 목소리도 함께 반영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
앞으로의 지출을 미리 예측할 수 있는 모델을 도입하고, 예상치 못한 비용이 생겼을 때를 대비해 예비비나 재정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장치도 마련해야 한다.
모든 약제와 진료 분야에 대해 일괄적으로 인상 정책을 적용하기보다는 공공성과 필요성이 높은 분야에는 보장을 더 두텁게 주고 반대로 비효율적인 부분이나 과잉 진료가 우려되는 곳은 더 엄격하게 관리하는 식으로 균형을 맞추는 전략이 중요하다.
보건복지부, 건강보험공단, 심사평가원, 의료계, 제약업계 등이 함께 참여하는 거버넌스 체계를 강화해서 약값과 수가 조정 정책을 공동으로 점검하고 조정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번 약제·수가 인상 흐름은 단순히 비용만 늘어난 게 아니라 건강보험 제도가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지와 국민 의료비 부담이라는 복잡한 문제를 함께 드러내고 있다. 정부와 국회, 의료계 모두가 머리를 맞대어 비용과 보장 사이의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제도 개편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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