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이 러시아 동결 자산 최대 1400억 유로(약 230조2800억원)를 우크라이나에 빌려준다는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의 '배상금 대출(Reparations loans)' 구상을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
뉴시스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전쟁 피해 배상금을 지급한다는 다소 비현실적 상황을 전제로 하는 조치인만큼, 결과적으로 '러시아 자산 몰수'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에서다.
1일(현지 시간) 유로뉴스 등 유럽 언론을 종합하면 EU는 이날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비공식 정상회의에서 러시아 동결 자산 대출 문제를 논의했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EU 집행위, '러 배상금 지불' 전제 대출 추진
앞서 EU 집행위는 대(對)러시아 제재로 유럽 내 예탁기관 유로클리어에 동결된 러시아 자산을 집행위로 이체하고, 이 중 최대 1400억 유로를 우크라이나에 무이자로 빌려주는 방안을 지난달 26일 발표했다.
러시아 동결 자산의 이자 수익이 아닌 원금을 대출 형태로 우크라이나에 지원하겠다는 구상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전쟁 피해 배상금을 지불하는 것을 조건으로 원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배상금을 지불하면 우크라이나가 유로클리어에 대출금을 상환하고, 유로클리어가 이 금액을 러시아로 돌려줌으로써 거래를 청산하는 구조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배상금을 지불하지 않으면 현재의 자산 동결이 지속된다.
프랑스, 핀란드, 스웨덴 등 EU 회원국 다수는 집행위의 이 같은 구상을 지지하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책임이 우크라이나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동진 위협에 있다는 입장이므로 배상금 지불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높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유로뉴스는 이에 대해 "크렘린이 배상금을 지급하지 않을 확률이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계획은 사실상 국제법상 불법인 국가(외국) 자산의 몰수에 해당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유로클리어 본사가 있는 벨기에의 바르트 드 베버 총리는 앞서 "유럽 정치권이 적절하다고 판단할 때 예치 자금이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다른) 국가들이 알게 되면, 유로존에서 준비금을 인출하기로 결정할 수도 있다"는 입장을 내기도 했다.
전쟁 등 외부 요인을 이유로 예금 원금을 압류하는 선례가 생기면, 유럽 금융기관에 돈을 맡긴 투자자들이 대거 빠져나갈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다만 EU는 러시아가 정당한 전쟁 배상금을 낼 의무가 우선이기 때문에 몰수로 이어질 일은 없다고 본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이날 정상회의 후 "이 계획에 따르면 (러시아) 자산이 몰수될 일은 없다. 우리는 (외국) 자산을 빼앗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 지원 비용을 유럽만 부담하는 게 아니라 러시아도 내야 한다는 공감대가 커지고 있다"며 "이 배상 제안을 통해 이것(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지원 분담)을 실현시킬 수 있는 건전한 법적 방법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카야 칼라스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아직 모두가 지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해야할 일이 많다"며 "그러나 그 자산(러시아 동결자산)이 아니라면 (우크라이나 지원) 부담은 우리 납세자들의 몫이 된다"고 부연했다.
EU는 오는 23일 브뤼셀에서 열리는 정상회의에서 러시아 동결 자산 사용 문제를 다시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푸틴, '외국 자산 국유화' 대통령령 서명…"대칭적 대응"
한편 러시아는 서방의 러시아 동결 자산 활용 움직임에 대한 보복 조치 준비에 착수했다.
유럽연합(EU) 전문 매체 유락티브가 1일 블룸버그 통신을 인용한 보도에 따르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전날 외국 자산의 국유화 절차를 규정한 대통령령에 서명했다.
러시아 정부는 지난해 동결된 자국 자산과 동일한 규모의 서방 자산을 동결했다면서 서방의 자산 위협에 대칭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힌 바 있는데, 이를 위한 구체적 법령 정비에 나선 것이다.
새 대통령령이 시행되면 러시아 정부는 10일간의 매각 전 평가를 거친 뒤 외국 기업 자산을 국유 자산으로 등록하고 민간에 매각할 수 있게 된다.
EU 집행위 구상이 통과돼 러시아 동결 자산 원금이 이동하기 시작할 경우, 동일한 규모의 서방 자산을 국유화해 매각하며 맞대응한다는 계획으로 보인다.
뉴욕타임스(NYT)는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의 "절도" 논평을 언급하며 "러시아는 '훔치는 것'과 '압류하지 않고 우크라이나에 빌려주는 것'을 나누지 않았다"며 "러시아는 외국 기업과 개인의 자산을 압류할 수 있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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