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숫물이 바위 뚫었다”…‘특허괴물’에 4조 국부유출 막은 주역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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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숫물이 바위 뚫었다”…‘특허괴물’에 4조 국부유출 막은 주역들

이데일리 2025-10-02 14:14:01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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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미영 기자] “낙숫물이 바위를 뚫었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에 있는 것만 같았는데 드디어 해냈다고 생각하니 법정에서 일어나 만세라도 부르고 싶은 심정이었어요.”(웃음)

국세청이 33년 만에 대법원으로부터 국내 미등록 특허에 관한 과세권을 인정 받은 건 셀 수 없이 많은 직원들의 노고로 이뤄낸 쾌거다. 판판이 지면서도 끊임없이 미국의 ‘특허괴물’과 대형 로펌에 맞서 싸워 대법원 판례 뒤집기에 마침내 성공했다.

국세청의 미등록 특허 태스크포스(TF) 소속인 김은수 중부국세청 징세송무국 국제조세팀장과 문진혁 서울국세청 송무1과 법인2팀장을 지난 1일 만나 역전승소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대법에서 번번이 졌지만…“공정과세 신념 따라”

김은수 중부국세청 징세송무국 국제조세팀장(왼쪽)과 문진혁 서울국세청 송무1과 법인2팀장(사진=김미영 기자)


김 팀장은 “제가 2016년 입직할 때부터 알고 있었을 정도로 미등록 특허 소송은 유명한 쟁점이었다”고 했다. 문 팀장은 “계속 져왔던 소송을 어떻게 이끌지 부담이 컸다”고 토로했다.

미등록 특허 소송의 쟁점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우리나라 제조기업이 미국 기업의 특허를 사용하고 내는 특허사용료(로열티)에 한국 국세청이 과세할 수 있는지 여부였다. 1992년 대법원은 미국에만 등록돼 있고 한국엔 등록되지 않은 특허는 국내 ‘사용’이 없다고 판단해 과세 불가 판결을 내렸다.

김 팀장은 “대법 판결이 있긴 했지만 국세청은 과세를 계속했고 소송도 계속 당해서 2000년대 후반과 2014년, 2018년, 2022년 등 대법원에서 번번이 졌다”며 “대법에서 ‘심리 불속행’으로 심리도 안 해주고 곧바로 기각한 사건도 십수 건”이라고 했다. ‘대법 패소→패소 사건 외 미등록 특허 건에 지속 과세→미국 기업 또는 미국 기업으로부터 의뢰받은 국내 기업의 소송 제기→대법 패소’라는 일련의 과정이 무한반복됐다는 얘기다.

법원으로선 국세청이 판례를 따르지 않고 ‘옹고집’을 부린다고 여겼을 법하다. 실제로 법원에서 “왜 자꾸 이렇게까지 하느냐”는 타박 섞인 질문을 여러 번 들었을 정도다. 김 팀장은 “국내 기업이 특허사용료를 지급해 경제적 실질이 분명히 있는데도 과세하지 않는 건 ‘공정과세’에 부합하지 않고, 판례가 바뀌어야 한단 판단과 신념이 국세청 내부에 강했다”고 했다.

바위와도 같은 대법 판례를 바꾸기 위한 지난한 노력은 계속됐다. 국세청은 10년 넘게 TF를 운영하며 국·내외의 세법 분야 법조인·교수 등 전문가들의 지지를 얻어냈다. 중부청 송무과의 고승욱·신진규 당시 팀장 제안에 따라 대법원 첫 판결의 근거가 됐던 ‘특허 사용지주의’(속지주의)를 허물기 위해 1970년대 한·미조세조약 체결 당시 자료도 다시 파고들었다. 수천 페이지에 달하는 자료를 수개월 동안 분석해 조약에서도 소득원천을 사용지주의가 아닌 지급지주의로 봤다는 사실을 ‘발굴’해냈다. 김진우 당시 본청 역외정보담당관 주도로 정보교환제도를 활용, 미국 국세청(IRS)은 한국과 달리 ‘특허 등록지 만으로 소득원천을 정하지 않는다’는 유리한 답변도 받아냈다.

◇ 벌써 소송취하한 사례도…4조 국부유출 막아

지난달 18일 대법 판결은 미국 기업이 SK하이닉스를 통해 국세청에 제기한 3억원대 소송 결과지만, 동일쟁점 사건 소송액이 현재 4조원대에 이른단 점에서 파급력은 상당하다. 미국 기업에 돌려줬어야 할 세금 4조원가량의 국부유출 가능성이 현격히 낮아진 셈이다. 소송을 취하한 사례도 벌써 나왔다고 한다.

문 팀장은 “대법 선고를 앞두고 멈춰 있던 (동일쟁점) 소송들이 조만간 재개될 예정”이라며 “원고대리인인 대형 로펌들이 새로운 주장을 갖고 나올 수 있지만 대법 전원합의체 판결이 큰 줄기의 방향을 잡아줬기 때문에 앞으로 판결이 크게 달라지진 않을 것”이라고 봤다.

두 팀장은 국세청의 중무장을 위한 지원도 강화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문 팀장은 “33년 동안 국세공무원들의 노력이 쌓여 오늘의 결실을 맺었다”며 “국가재정 최후의 보루인 송무국이 무너지지 않도록 예산과 인력에 지원이 늘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김 팀장은 “최근엔 소송금액을 불문하고 대형로펌을 쓰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는 전체 사건의 10%도 대리인 선임을 못 하는 실정”이라며 “젊은 법조인들도 양심에 반하지 않고 국가를 위해 일할 수 있는 이곳에 관심을 가져줬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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