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김남근 기자]
남다름을 나다움으로 바꾸는 컬러인터랙터
ⓒ 휴(HUE)인터랙트
- 정답보다 맥락, 사람을 향한 색의 언어
- 편의점 같은 돌봄, ‘열린 문’의 약속을 확장한다
위로의 상투어인 ‘괜찮아’ 앞에서 사람들은 종종 자신의 고통을 감추고 속도를 잃는다. 자신을 컬러인터랙터로 정의한 이현영 휴(HUE)인터랙트 대표는 이 말의 선의를 인정하면서도, 정답을 서둘러 주입하기보다 질문을 통해 스스로의 언어를 찾게 하는 방식을 택해왔다. 그녀는 색을 해석의 규범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알아차리게 하는 매개라고 설명하며, 각자가 지닌 색에 대한 기억과 의미를 존중한다. 그래서 그의 현장은 문턱을 높이는 명품숍이 아니라, 필요할 때 누구나 들를 수 있는 ‘편의점 같은’ 열린 자리로 다가간다. 상처의 시간을 건너온 사람답게 ‘괜찮지 않을 땐 괜찮지 않다’라고 말할 자유를 먼저 지키겠다고 약속하는 그녀의 이야기를 심도 있게 들어보았다.
ⓒ 휴(HUE)인터랙트
동행이 만든 휴(HUE)인터랙트의 시작
그녀의 출발은 화려함과 거리가 멀었다. 경력의 단절 앞에서 주저앉지 않기 위해, 그녀는 할 수 있는 한 가지를 붙들었다. 매일 밤 아이를 재운 뒤 책상 앞에 앉아 SNS에 한 편의 글을 올리는 것이었다. “저는 한 아이의 엄마에서 시작했습니다”라고 말문을 연 그녀는 “매일, 조금씩 채운 기록이 다섯 해가 되었을 때, 글 너머의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어요. 제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서 찾아왔다는 뜻밖의 일이었죠”라고 전했다. 그렇게 낯선 관심은 첫 수업으로 이어졌고, 테이블 맞은편에 한 명이 앉자 또 다른 사람들이 따라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어진 반가운 사람들과의 활동에 ‘자격증 1기’라는 타이들이 붙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순서는 거꾸로였다. 2015년, 그녀는 배우는 자리에서 출발했고, 2017년이 돼서야 휴(HUE)인터랙트라는 이름을 내걸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먼저 모인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저를 찾아와 주신 선생님들께 안전한 울타리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휴(HUE)인터랙트의 설립과 책임을 다할 수 있는 대표라는 직함이 필요해졌어요”라며 “그래서 저에게 창업은 목표가 아니라 관계가 만들어낸 결과로 다가왔어요. 실력을 과시해 사람을 모은 것이 아니라, 사람을 받아들일 그릇이 필요해 제도를 뒤따라 만들어진 회사인 것이죠”라고 전하는 이 대표다.
이 과정에서 그녀가 고집스럽게 고수하고 있는 점은 기술이나 유행이 아니라, 시간을 견디는 태도였다. 해석을 주입하지 않고 질문으로 꺼내는 말 걸기, 보이는 색 뒤에 숨은 개인의 맥락을 기다리는 인내, 그리고 어떤 한 사람이 자신의 속도대로 걸어 들어올 수 있도록 불을 켜 두는 마음. 시작이 미약했다는 사실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그 미약함을 버티게 한 동행의 축적이고, 바로 그 축적이 ‘휴(HUE)인터랙트’라는 이름을 불러냈다는 점이다.
ⓒ 휴(HUE)인터랙트
괜찮지 않을 자유를 지키는 말 걸기
그녀가 색을 다루는 방식은 규정이 아니라 상호작용이다. 같은 빨강이라도 누군가에겐 분노, 다른 누군가에겐 애정, 또 다른 누군가에겐 냉정의 기호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서 출발한 그녀는 “색에는 보편의 정답이 없다”라고 힘주어 전했다. 그래서 수업의 첫 질문은 정의가 아니라 맥락이다. ‘선생님이 생각하는 빨강은 무엇인가요?’라고 그녀는 묻고, 답을 대신 말해주지 않은 채 상대의 기억과 감정, 오늘의 상태를 차분히 꺼내 오도록 기다린다. 그 기다림 속에서 색은 해석의 표가 아니라 알아차림의 매개가 된다.
“괜찮지 않을 땐 괜찮지 않다고 말했으면 좋겠습니다. 위로의 말이 선의를 품고 있더라도, 그 말이 감정을 덮어버리는 순간 당사자의 속도는 더 느려질 수 있기 때문이죠.”
언어는 처방보다 질문에 가깝다고 주장하는 이 대표는 이처럼 충분한 기다림과 상대가 원할 때, 원한 만큼, 지금의 상태를 정확히 말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곧 스스로의 언어로 마음을 회복하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가령 ‘초록색 = 착하다’라는 사회적 통념을 예로 들며, 누군가는 타인을 배려하는 자신을 초록으로 느끼는데, 이는 배려가 ‘좋아서 하는 나’의 선택일 수 있음을 함께 성찰하게 한다고 한다. 색의 의미가 ‘사회가 준 평판’에서 ‘내가 확인한 사실’로 옮겨올 때, 타인에게 보이기 위한 착함은 사라지고, 나에게 맞는 행동의 기준이 선다. 그녀는 “다름을 인정하는 순간, 색은 사람을 설명하는 언어가 아니라 사람에게 맞춰 변하는 언어가 됩니다”라고 덧붙였다.
그녀가 자신을 ‘컬러 테라피스트’가 아니라 ‘컬러 인터렉터’라고 부르는 이유도 같다. 일방향의 치유가 아니라, 서로의 반응이 오가는 상호작용이 결국 변화를 만든다는 믿음 때문이다. 답을 주는 사람이기보다, 질문으로 함께 발견하는 사람이고 싶다는 그녀는 자신의 이러한 소신과 철학이 지켜질 때, 누구의 빨강도, 누구의 초록도, 단 하나의 뜻으로 묶이지 않을 것이며, 색은 각자의 자리에서 다르게 빛나고, 사람은 그 빛을 따라 자기 속도로 나아갈 수 있으리라 굳게 믿고 있다.
ⓒ 휴(HUE)인터랙트
현장의 스펙트럼, 색으로 여는 대화
이현영 대표의 수업은 최연소 4세에서 시니어에 이르기까지 전 연령을 아우른다. 기업과 공공기관, 학교와 지역 커뮤니티, 다문화·한부모 가정 프로그램까지 대상이 넓지만, 방식은 한결같다. 시작은 정답이 아니라 선택이며, 작은 선택이 오늘의 감정과 기억을 부드럽게 끌어올린다. 누군가는 핑크를 고르며 인정받고 싶은 마음을 털어놓고, 또 다른 누군가는 회색을 집으며 잠시 멈추고 싶다는 상태를 조심스럽게 말한다. 그녀는 여기에 해석을 덧붙이지 않고, 그 고백이 더 안전해지도록 질문의 간격을 조절한다.
기업 강의에서는 색을 공통 언어로 삼아 리더십과 커뮤니케이션을 점검한다. 팀마다 빨강을 추진력으로 읽는 곳도, 경계의 신호로 받아들이는 곳도 있다. 그녀는 “우리 조직에서 이 색은 무엇을 의미하나요?”라고 되묻고, 각자가 체감한 사례를 모아 규범 대신 합의를 만든다. 그 과정에서 ‘말투’나 ‘성향’ 같은 모호한 인상 비평이 색의 언어로 번역되며, 사람을 단정하지 않고도 행동의 기준을 함께 세울 수 있도록 만들어 간다.
위기 청소년을 만나는 자리에서는 색이 특히 빠르게 라포(rapport)를 만든다. 이름이나 사연을 캐묻지 않고 손에 잡히는 색부터 묻기 때문이다. 그녀는 ‘괜찮지 않다는 말을 해도 괜찮다’라는 약속을 먼저 건네고, 간단한 제스쳐로 자신의 마음을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한다. 말문이 트이지 않던 학생이 한 가지 색을 고르는 순간 그에 담긴 의미를 서두르지 않고 붙잡아 당사자가 스스로 다음 문장을 만들어 가도록 돕는다.
부모 교육과 시니어 프로그램에서는 서로를 돌보는 방식이 달라진다. 부모는 아이의 색 선택을 통해 당장의 훈육보다 필요한 지지를 확인하고, 시니어는 오래된 추억과 현재의 감각을 잇는 색의 단서를 찾아낸다. 그녀는 각 장면에서 공통의 원칙을 지킨다. 단정하지 않을 것, 비교하지 않을 것, 그리고 오늘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할 것. 그래서 그녀의 현장은 설명보다 발견이 많고, 가르침보다 합의가 많다. 색은 변하지 않는 규칙표가 아니라, 사람을 사람에게로 데려오는 안전한 매개로 기능한다.
ⓒ 휴(HUE)인터랙트
문턱을 낮추고 속도를 존중하다
그녀의 차별성은 방법보다 태도에서 드러난다. 그녀는 스스로를 ‘극복자’가 아니라 ‘생존자’라고 표현한다. 아프지 않은 척을 다그치는 속도 대신, 멈춰 서서 신호를 듣는 쪽을 택했던 시간이 현재 그녀의 언어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녀는 누군가에게 정답을 내리기보다, ‘당신의 속도는 지금 어디쯤인가요?’라고 묻는 말을 먼저 꺼낸다.
대표이자 한 사람의 여성으로서 감당해야 했던 시선과 요구는 분명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기준을 바꾸지 않았다. 그리고 이 기준은 그녀가 일터에서, 가정에서, 공동체에서 같은 사람으로 서 있게 한 최소한의 약속이 되었다.
무엇보다 그녀는 휴(HUE)인터랙트가 ‘문을 닫지 않는 편의점 같은 공간’이 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누구나 필요할 때 들어올 수 있는 편의점 같은 공간을 지향하려면, 들어오는 사람의 사정만큼이나 돌아가는 사람의 속도도 존중해야 한다. 그래서 그녀는 ‘오랜만이에요’라는 인사가 부담으로 다가오지 않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설명하며, ‘한 번의 수업, 한 장의 카드, 한 번의 선택이 곧 답이 되지 않더라도 그 사람의 다음 발걸음을 조금 덜 외롭게 하는 것’이 자신이 말하는 ‘편의점 같은 공간’, 즉 ‘열린 문’의 진정한 의미라고 설명했다.
특히나 이 대표의 일에는 스승과 동료, 가족의 말이 기준으로 남아 있다. 과거 그녀의 아버지가 건넨 “네가 너를 찾아온 내담자라면 상담사로서 무엇을 말하겠니?”라는 물음은, 그녀가 현장에서의 방식을 결정할 때마다 떠올리는 가장 중요한 잣대가 되었다. 속도를 늦추고, 눈높이를 낮추고, 문을 열어 둔다. 화려한 해결보다 지켜진 약속이 더 오래 사람을 붙든다는 것을 깨닫고 증명해 가고 있는 그녀다.
ⓒ 휴(HUE)인터랙트
동행자 플랫폼, ‘함께’의 지속을 설계하다
이현영 대표가 그리고 있는 다음 10년은 ‘이벤트’가 아니라 ‘시스템’에 가깝다. 한 번의 강의, 한 권의 책으로 끝나는 활동이 아니라, 누구든 필요할 때 들어와 배우고 머물다,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도 다시 연결되는 구조를 세우는 일이다. 그래서 그녀는 편의점 같은 접근성을 유지하면서도 신뢰 가능한 기준을 쌓기 위해선, 사람과 방법을 담아낼 새로운 설계도가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첫 번째 축은 자격 과정의 단계화로, 이 과정에서 강의 노트와 세션 가이드, 윤리 기준을 표준화해 누가 진행해도 같은 안전이 담보되도록 준비하고 있다. 두 번째 축은 동행자 플랫폼이다. 한 사람의 역량으로 닿지 않는 자리들이 분명히 있다는 소신을 가진 그녀이기에 기관·학교·기업과의 협업을 개인의 의지가 아니라 플랫폼의 약속으로 전환하겠다고 말했다. 마지막 세 번째 축은 대중적 매개의 확장이다. 수업에서만 만나는 색이 아니라, 일상에서도 스스로를 확인할 수 있는 카드, 향, 작은 책과 도구들을 준비하고 있다. 공동 집필 프로젝트 역시 같은 맥락에서 진행되고 있으며, 여러 명의 목소리가 함께 적힌 페이지는 정답 하나를 말하는 책이 아니라 다름의 합의를 보여주는 기록으로 남을 것이라고 전한다.
사람이 자신의 속도를 되찾기 위해서는, 해석을 덧씌우는 손길보다 묻고 기다려 주는 시선이 먼저여야 한다. 그녀가 색을 다루어 세운 일은 그 원칙을 일상의 규칙으로 바꾸는 일에 가깝다. 정답을 강의하는 대신 질문으로 스스로의 언어를 찾게 하고, 위로의 관습을 반복하기보다 ‘지금은 괜찮지 않다’라고 말할 자유를 지키는 일. 그녀는 이 기준을 흔들림 없이 지켜 왔다. 그래서 휴(HUE)인터랙트의 문은 특정 순간의 이벤트가 아니라, 필요할 때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장소로 기능한다. 그리고 각자의 속도로 드나들 수 있는 열린 문, ‘필요하면 여기 있다’라는 조용한 약속. 색은 그래서 그녀의 작업에서 목표가 아니라 매개가 된다. 그 매개를 따라 사람은 자기 마음의 언어를 다시 발견하고, 사회는 조금 더 안전한 대화를 얻는다. 그녀가 지켜 온 원칙이 다음 10년에도 같은 온도로 이어질 때, 휴(HUE)인터랙트는 한 사람의 기술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지속성의 약속으로 증명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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