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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구달 연구소는 성명을 통해 “연구소 설립자이자 지칠 줄 모르는 자연 보호 옹호자인 구달 박사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연설 투어 중 자연사로 세상을 떠났다”고 발표했다. 연구소는 “그의 발견은 과학계에 혁명을 일으켰다”고 애도했다.
구달은 1934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 본머스에서 성장했다. 아동문학 ‘타잔’, ‘닥터 두리틀’에 매료돼 어린 시절부터 동물에 대한 꿈을 키웠지만, 어려운 형편으로 대학 진학은 포기하고 런던에서 비서로 일했다.
그는 1957년 친구의 초대로 케냐를 방문한 뒤 저명한 고인류학자 루이스 리키를 만나 본격적으로 영장류 연구의 길에 들어섰다.
구달 박사는 26세던 1960년에는 탄자니아 곰베 국립공원에서 야생 침팬지 장기 관찰을 시작했다. 그는 침팬지가 의사소통, 개성 발달, 도구 제작과 사용 등 인간과 유사한 행동을 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특히 인간만의 능력으로 여겨졌던 ‘도구 사용’을 침팬지가 한다는 발견은 학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기존의 포획 연구 대신 야생 개체를 오랜 기간 관찰하는 비정통적 방식을 택한 그는 ‘침팬지의 어머니’라는 별칭을 얻으며 동물행동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케임브리지대에서 동물행동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그는 내셔널지오그래픽 등 방송을 통해 전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이후 단순한 학문적 발견을 넘어 침팬지 서식지 파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깨닫고 환경운동가로 활동을 확장했다.
1977년에는 곰베 연구와 아프리카 보전을 위해 자신의 이름을 딴 ‘제인 구달 연구소’를 설립했다.
구달은 매년 300일 이상을 전 세계를 돌며 강연과 캠페인으로 환경 보전을 호소했고, ‘희망의 이유’ 등 30여 권의 저서를 남겼다. 그는 생전 “희망은 우리 손에 달려 있다. 가능한 한 가벼운 생태학적 발자국을 남기라”고 말하며 지구의 회복력을 믿었다.
구달은 1964년 네덜란드 사진작가 휘호 판 라빅과 결혼해 아들을 1명 뒀고, 1974년 이혼했다. 1975년에는 탄자니아 국립공원 관리자 데릭 브라이스슨과 결혼했고, 1980년 사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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