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 동부에 사는 파히마 누리는 대학을 졸업할 때만 해도 큰 꿈을 품고 있었다.
법학을 공부했고, 조산사 과정을 수료했으며, 심지어 정신건강 클리닉에서 일하며 경험을 쌓았다.
그러나 이 모든 꿈은 2021년 탈레반이 재집권하면서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탈레반 정권은 12세 이상 소녀들의 교육을 금지하고, 여성의 직업 선택을 극도로 제한하고 나섰으며, 최근에는 대학가에서 여성 저자가 집필한 서적을 제거하라고 지시했다.
이런 상황에서 누리에게 인터넷은 외부 세계와 닿을 수 있는 마지막 생명선이었다.
누리는 "최근 사이버 대학에도 등록했다. 학업을 마친 뒤 온라인에서 할 수 있는 일자리도 구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러나 지난 9월 30일, 탈레반이 전국에 인터넷 차단령을 내리면서 그 생명줄마저 끊겼다. 이번 조치는 무기한 지속될 예정이다.
누리는 "온라인 학습이 우리 여성들의 마지막 희망이었는데, 이제 그 꿈마저 무너졌다"고 토로했다.
누리는 물론, 본 기사에서 인터뷰한 모든 인물은 신원 보호를 위해 가명을 사용했다.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집에 있습니다'
지난 몇 주간 탈레반 정부는 부도덕한 행위를 막는다면서 일부 주의 광섬유 인터넷 연결을 차단하기 시작했다.
당시에도 많은 이들이 인터넷 전면 차단으로 이어지리라 우려했다.
그리고 지난 30일, 그들의 최악의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인터넷 감시 단체 '넷블록스'에 따르면 현재 아프가니스탄은 "전면 인터넷 차단" 상태로, 국가의 필수 서비스도 마비된 상태다.
국제 언론사들은 수도 카불 내 사무실과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말한다. 아프간 전역에서 모바일 인터넷과 위성 TV 서비스도 크게 지연되거나 중단되었다. 현지 언론 보도에 따르면 카불에서 출발하는 항공편도 운영 중단된 상태다.
이번 전국적 인터넷 차단 조치에 앞서 BBC는 아프간 현지인들에게 각 지역의 인터넷 차단령이 그들의 삶을 어떻게 뒤흔들었는지 들어보았다.
북부 타카르주에 사는 샤키바는 "나는 원래 조산학을 공부 중이었는데, 안타깝게도 여성에게는 그 프로그램이 금지되었다 … 우리에게 남은 유일한 희망은 인터넷과 온라인 학습이었다"고 했다.
"우리는 공부하고 싶습니다. 교육받고 싶습니다. 앞으로 사람들도 돕고 싶습니다. (그런데) 인터넷이 차단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세상이 암흑처럼 느껴졌습니다."
누리의 사정도 비슷하다. 너무나도 "무력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나와 언니들은 온라인으로 공부하고 있었다. 인터넷으로 뉴스와 새로운 기술 동향도 접했는데, 이젠 새로운 정보를 알 수도, 새로운 기술을 배울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 자매는 학업을 마친 뒤 경제적으로 아버지를 돕고 싶었지만 이제는 …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집에 있습니다"
2021년 권력을 장악한 이후 탈레반은 이슬람 샤리아 법에 대한 자신들의 해석에 기반하여 수많은 제한령을 내려왔다.
이달 초에는 여성 저자가 쓴 서적을 대학에서 제거하라고 명령했으며 인권과 성희롱 방지 교육도 금지했다. '화학 실험실 안전'을 포함하여 여성이 쓴 서적 약 140권이 "샤리아와 탈레반 정책에 반하기"에 "문제"로 판단되었다는 설명이다.
탈레반 정부는 아프가니스탄 문화와 이슬람법에 대한 자신들의 해석에 맞게 자신들은 여성 권리를 존중하고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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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번 인터넷 금지령으로 타격을 입은 것은 여학생들뿐만이 아니다. 동부 지역에 살며 온라인 강의를 통해 생계를 꾸려가던 자비와 같은 강사들도 위기에 직면했다.
남성인 자비는 과거 파키스탄에서 기자로 일했으나, 고국으로 돌아온 이후 관련분야에서 일자리를 구할 수 없었다. 이에 영어 학원을 개원하려 했으나, 당국이 교육 기관들을 제한하면서 온라인으로 전환할 수밖에 없었다.
"온라인 수업에는 70~80명 정도 규모로 남녀 학생 모두가 참여했다"는 그는 "학생들도 만족했고 수업도 순조로웠다"고 회상했다.
"다들 IELTS(국제 영어 능력 평가 시험)를 준비 중인 학생들로, 인터넷에 의존하여 공부를 이어갔습니다. 자료조사부터 모의고사, 본 시험에 이르기까지 모든 걸 온라인으로 했습니다."
자비에 따르면 아프가니스탄에는 IELTS 시험장이 없어 학생들에게는 온라인 시험 외에는 달리 선택지가 없다.
"2일 전, 제 학생 중 45명 정도가 시험 도중 인터넷이 끊겼습니다. 몇 달간 준비해 온 시험이었는데 기회가 사라진 거죠. 학생들에게도, 교사인 저에게도 가슴 아픈 일이었습니다."
지금 그에게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는 학생들의 전화가 끊이지 않는다.
"학생들이 계속 전화를 걸어 '선생님, 저희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고 묻습니다. 남학생들에게는 아직 운영 중인 실물 영어학원 몇 군데가 있지만, 여학생들에게는 이번이 마지막 기회였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마저도 사라졌습니다."
BBC가 만나본 주민들에 따르면 모바일 인터넷은 아직도 가능하지만, 요금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지나치게 비싸고, 연결 상태 또한 불안정하다. 100GB 데이터가 포함된 월정액 요금제가 3500아프가니(약 7만원)에 달한다. 반면 와이파이 사용료는 월 1000아프가니 정도이며, 여러 학생이 함께 분담할 수도 있었다.
과거 유엔개발계획(UNDP)의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아프가니스탄의 1인당 소득은 306달러(약 42만원)였다.
자비는 인터넷이 곧 복구되지 않으면 아예 나라를 떠날 것이라고 했다. 생계를 유지할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탈레반은 아직 이번 인터넷 차단에 대한 공식적인 이유를 밝히지 않고 있다. 인터넷 접속을 위한 대체 경로가 마련될 것이라고 말했으나, 이와 관련한 세부 사항은 제시하지 않았다.
타카르주에서 환전소를 운영하는 아나스는 인터넷 차단령으로 자신의 사업이 "엄청난 위험"에 직면했다고 토로했다. 업무 대부분을 인터넷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사업이 약 90% 정도가 피해를 입었다"는 아나스는 "어제는 동업자인 동생이 고객에게 이메일을 보내려 했는데 전송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의 가장 큰 걱정은 온라인 수업을 듣고 있던 세 딸들이다.
"전날 밤 탈레반이 마자르이샤리프 지역의 인터넷 접속을 차단했다는 소식을 들은 큰딸이 눈물을 글썽이며 우리 주에도 같은 일이 벌어질까 봐 두렵다고 했습니다."
"딸들이 공부할 마지막 기회가 이제 사라졌어요. 이토록 무기력한 아이들의 모습을 보는 게 … 너무 힘듭니다. 아이들과 제게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오직 신만이 아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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