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바위는 왜 굴러떨어져야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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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바위는 왜 굴러떨어져야만 하는가?

독서신문 2025-10-01 09:00:00 신고

3줄요약
필로어스 & 필로프리셉100 마케터, 튜터 김태연

부산 광안리 바다는 하루에도 열두 번 얼굴을 바꿉니다. 밀물과 썰물, 파도와 잔잔함, 폭풍과 고요. 바다를 보며 자란 저는 일찍이 『주역』의 한 구절을 가슴 속에 품게 되었습니다.

궁즉변 변즉통 통즉구(窮則變 變則通 通則久). 막히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간다.

17세 뜨거운 나이에, 이 말이 무엇인지 한참이고 고민했던 때도 있었습니다. 지금 제가 이해하는 것이 참된 의미가 아닐 수 있지만, 그럼에도 저는 이 구절을 실패와 변화, 그리고 그 끝없는 순환이 만들어내는 영속성에 대한 이야기라고 해석합니다.

주역 – 막힌 자리에서 시작되는 필연

『주역』 64괘 중 마지막은 화수미제(火水未濟)입니다. ‘아직 건너지 못했다’라는 뜻이죠. 주역의 가장 심오한 철학 중 하나입니다. 우주의 모든 시간과 변화, 그 적절함의 이치를 탐구하느 고전이 완성이 아니라 미완성으로 끝나니 말입니다. 왜일까요? 주역은 이렇게 답합니다. “끝은 곧 새로운 시작이다.”

시시포스의 바위가 정상에 영원히 머물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마 이야기는 거기서 끝났을 겁니다. 바위가 굴러떨어지기 때문에 시시포스는 영원합니다. 실패가 그를 불멸하게 만든 셈이죠.

궁즉변(窮則變), 막히면 변한다. 이것은 단순한 인과관계가 아니라 존재론적 필연입니다. 물이 바위를 만나면 돌아가듯, 우리도 벽을 만나면 방향을 바꿉니다. 모든 생명이 가진 본능적 지혜입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이것을 ‘저항’으로 볼 것인가, ‘기회’로 볼 것인가입니다. 즉, 모든 변화는 주체의 자세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물론 이런 자세가 어디 쉽나요? 말로는 쉽습니다. 고전을 읽는 사람들도 “변하는 게 없어요. 인생이 멈춘 느낌이에요”라며 곧잘 실존적 고민을 토로합니다. 이런 우리들에게 『주역』은 이렇게 말하죠. “막혔다는 인식 자체가 변화의 전조다. 지금 궁의 자리에 있다면, 곧 변화할 수밖에 없는 필연이 닥친다.”

논어 – 알면서도 계속하는 자의 실존

공자는 14년간 천하를 주유했습니다. 초나라에서는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았고, 심지어 굶어 죽을 뻔하기도 했죠. 이런 공자에게 은자가 붙여준 별명이 있습니다. 비아냥이었을 수도 있지만, 지금은 오히려 공자 철학의 핵심을 관통하는 명언이 되었습니다.

지기불가이위지(知其不可而為之). 안 되는 줄 알면서도 하는 사람이란 의미입니다. 공자는 실패를 예건했던 철학자입니다. 시대르 정확하게 바라볼 줄 알았기에, 자신의 이상이 당대에는 실현 불가능함을 알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맹목적 집착이 아니라, 철학적 신념에 기반한 실천이었습니다.

변즉통(變則通). 변하면 통한다. 공자는 온 세상이 막혀있음을 알았고, 그래서 필연적으로 변할 것을 믿었습니다. 당장의 실패는 미래에 올 태평성대를 위한 초석이었던 것이죠. 물론, 씨앗을 뿌리는 사람은 수확을 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씨앗은 반드시 싹을 틔우기 마련입니다.

시지프 신화 – 형벌이 자유가 되는 역설

카뮈는 시시포스를 통해서 인간 삶의 부조리를 말합니다. 바위는 반드시 굴러떨어집니다. 이것은 정해진 운명입니다. 여기서 카뮈는 천재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전환을 보여줍니다.

“바위가 굴러떨어지는 순간, 시시포스는 자유롭다.”

산을 내려오며 시시포스는 생각합니다. 다음에는 어떻게 밀어올릴까? 어느 길로 올라갈까? 이 사색과 성찰의 시간이 그의 ‘자유’입니다. 형벌이 아니라 선택의 순간인 것이죠.

이 부분은 주역의 통즉구(通則久). “통하면 오래간다”와 연결해볼 수 있습니다. 시시포스가 영원한 이유입니다. 그는 매번 실패하지만, 그 실패를 통해 역설적으로 자유의지와 영원성을 획득합니다. 바위를 밀어올리는 행위 자체가 그의 존재 이유가 되어버린 시시포스. 부조리한 운명 속에서도 의미를 창조하는 인간의 존엄성, 이것이 시시포스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실존 철학입니다.

도덕경 – 가장 낮은 곳에서 시작되는 순환

상선약수(上善若水). 노자는 물을 최고의 선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바다를 보며 자란 제가 보기에 물은 항상 패배합니다. 중력에 굴복하여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만 흐르죠. 저항할 수 없는 운명입니다.

하지만 바다에 도달한 물은 변화를 맞이합니다. 증발하여 구름이 되고, 비가 되어 다시 산 정상으로 돌아오죠. 가장 낮은 곳이 가장 높은 곳과 연결됩니다. 실패의 극점이 성공의 출발점이 되는 하늘과 땅, 바다의 순환입니다.

이것이 『주역』이 말하는 순환이고, 『도덕경』이 말하는 ‘복’, 즉 ‘되돌아감’입니다. 물의 순환은 단순한 반복이 아닙니다. 매번 다른 경로, 다른 형태로 순환하며 새로운 의미를 창조합니다.

네 권의 책이 그리는 하나의 그림: 나선형 상승

『주역』은 변화의 원리를 제시합니다. 막힘은 변화의 필연적인 시작점입니다.

『논어』는 변화 속 실천 태도를 보여줍니다. 내가 깨지고 부서지고 파괴될 것을 알면서도 지속하는 의지입니다. 톨스토이가 농부들에게서 발견한 생명력처럼, 죽을 것을 알면서도 살아가는 삶 그 자체인 것입니다.

『시지프 신화』는 변화의 실존적 의미를 드러냅니다. 반복 속에서 자유와 영원성을 만나는 것입니다.

『도덕경』은 변화의 지혜를 펼쳐냅니다. 낮음과 높음이 하나로 연결되는 순환 속에서 우리는 ‘창조’라는 거대한 힘의 원형을 체험하고 체득할 수 있습니다.

네 권 모두 같은 것을 가리킵니다. 실패는 끝이 아니라 과정이며, 추락은 몰락이 아니라 순환의 일부라는 것. 무엇보다 정체는 죽음이 아니라 변화의 임계점이라는 것입니다.

이 순환은 동일한 것의 무한 반복이 아닙니다. 시시포스는 매번 같으 바위를 밀더라도, 그의 내면에서는 새로운 무언가가 계속 생겨나고 축적될 겁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성장하고 나아가는 나선형 상승, 즉 궁극적인 것을 향해 운동하는 순환과 같습니다.

막힌 곳에서 시작하라

지금 당신의 삶에서 가장 막힌 지점은 어디인가요? 직장? 관계? 꿈? 이제 인식과 태도를 살짝만 전환해 봅시다. 바로 그 막힌 곳이 변화의 진원지라고 말이죠.

시시포스의 바위가 굴러떨어지는 그 순간. 공자가 쫓겨났던 그 지점. 물이 바위에 막혀 돌아가야 하는 그 굴절점. 실패를 실패로만 보면 거기서 끝나지만, 이것을 변화의 시작으로 읽어내면 완전히 새로운 가능성이 열립니다.

고백하자면, 저는 오늘도 실패합니다. 쓴 글이 마음에 들지 않고, 학생들과 함께 한 시간이 충분하지 않으며, 읽은 것을 온전히 실천하지 못합니다. 믿음조차 제자리걸음인 것만 같은 기분이 듭니다. 하지만 저는 내일 다시 쓰고, 다시 학생들을 생각하며, 다시 미래를 그려내고, 다시 신과 진리에 대한 믿음을 바로 세웁니다. 왜냐하면 알기 때문입니다.

막히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간다는 것을.

당신의 바위를 오늘 어디까지 올라갔다가 떨어졌나요?

그리고 내일은 어떤 길로 십자가를 지고, 바위를 굴리며 올라가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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