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어지면 동해안의 항구는 겨울을 맞을 준비로 분주해진다. 차가운 바닷바람이 불어오면 어판장에는 명태, 대구, 가자미 같은 겨울 생선이 자리를 채우곤 했다. 하지만 그 한편에는 잡히면 애물단지 취급을 받던 물고기가 있었다. 바로 곰치다. 길쭉하고 흐물거리는 생김새, 손에 잡히면 미끈거리는 촉감 때문에 어부들은 그물에 걸려도 다시 바다에 던져버리기 일쑤였다.
잡혀도 시장에서 값이 나가지 않아 헐값에 팔리거나 심지어 돼지 사료나 밭 거름으로 쓰이기도 했다. 어민들 사이에서는 ‘물텀벙이’라는 별명까지 붙으며 천덕꾸러기로 불렸고, 제대로 된 생선 대접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한때 버려지던 곰치가 이제는 겨울철 별미로 손꼽히며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곰치, 서식 환경과 효능
곰치는 강원도 동해안 깊은 바다에 주로 서식하는 어종이다. 몸길이는 60cm 안팎으로 길쭉하고, 살은 젤리처럼 부드럽다. 구이나 조림에는 적합하지 않지만, 국물 요리로는 좋은 재료다. 지방 함량이 낮아 열량이 적고, 단백질이 풍부해 체력 보충에 도움이 된다.
칼슘, 인, 마그네슘 같은 미네랄도 많아 뼈를 지키는 데 효과적이다. 무엇보다 해장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조선 후기 정약전이 집필한《자산어보》에는 곰치가 술병을 고친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데, 이는 오래전부터 곰치가 숙취 해소에 쓰였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천덕꾸러기에서 귀한 몸값으로
곰치가 재평가받게 된 계기는 명태의 부재였다. 1980년대 이후 동해안의 명태 어획량이 급격히 줄면서 어민들은 대체 어종을 찾기 시작했다. 대구, 도루묵 역시 어획량이 감소하자 선택지는 좁아졌다. 이때 곰치가 다시 주목받았다. 부드러운 살코기와 맑은 국물이 결합한 곰치국은 겨울철 해장 요리로 안성맞춤이었다. 특히 주당들 사이에서는 술자리를 마무리하는 국으로 인기를 얻었다.
과거 버려지던 곰치는 시장에서 제대로 된 값도 받지 못했지만, 1990년대 들어 수요가 늘면서 가격이 오르기 시작했다. 강원도 삼척, 동해, 속초 같은 지역에서는 곰치국 전문 식당이 늘었고, 겨울철 관광객들이 일부러 찾을 정도로 인지도가 높아졌다. 예전에는 잡히면 다시 던져버렸던 물고기가 이제는 어획 즉시 경매장으로 직행한다. 없어서 못 팔 정도로 귀해진 덕분에 붙은 별명이 바로 ‘금치’다. 천대받던 물고기가 귀한 대접을 받기까지 불과 몇십 년이 걸리지 않았다.
곰치의 맛을 살리는 조리법
곰치를 제대로 즐기려면 국이 제격이다. 살이 흐물흐물해 구이나 찜으로는 형태를 유지하기 어렵지만, 국물 요리에서는 오히려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살이 국물에 녹아들면서 부드럽고 시원한 맛을 낸다. 강원도 동해안에서는 맑은 곰치국이 기본이다. 잡은 곰치를 손질해 무와 함께 끓이면 담백한 맛이 살아난다. 묵은지를 넣으면 칼칼하면서도 깊은 국물이 완성된다. 이른바 김치 곰치국은 삼척 지역을 중심으로 명성을 떨쳤다.
곰치국은 해장 요리로도 유명하다. 국물이 시원하고 느끼함이 없어 술 마신 다음 날 속을 풀기에 좋다. 부드러운 살코기는 노인이나 아이들이 먹기에도 부담이 없다. 최근에는 곰치 탕수육 같은 변형 요리도 등장하고 있다. 곰치살을 튀김옷에 입혀 바싹하게 튀긴 뒤 소스를 얹는 방식인데, 부드러운 속살과 바삭한 식감이 어우러져 색다른 맛을 낸다.
곰치를 집에서 요리할 때는 반드시 신선한 상태에서 손질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장과 아가미를 깨끗이 제거하고 흐르는 물에 여러 번 헹궈야 비린내가 남지 않는다. 살이 워낙 연해 오래 끓이면 흐트러지므로 불 조절에 신경 써야 한다. 보관할 때는 내장을 제거한 뒤 냉동실에 넣어두면 한 달 정도는 무난하다.
Copyright ⓒ 위키푸디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