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위협 맞서 국방비 증액 나서며 복지·해외원조 예산 삭감
"두 예산 대립, 정치적 위험"…"사회 안전망 해치면 국내 평화 잃어"
(파리=연합뉴스) 송진원 특파원 =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미국의 군사적 지원은 불확실해지면서 유럽 각국이 국방과 복지의 갈림길에 섰다고 프랑스 일간 르몽드가 30일(현지시간) 분석했다.
유럽 국가들은 지난 6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서 '나토 군사 역량 목표'를 이행하기 위해 연간 국내총생산(GDP)의 최소 3.5%를 핵심 국방 수요에 투입하기로 했다.
또 GDP의 최대 1.5%를 핵심 인프라 보호, 네트워크 방어, 방위산업 기반 강화 등에 제출하기로 합의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요구한 '5%'를 맞췄다.
문제는 돈이다. 기존 공공 지출 비중을 유지하면서 국방 예산을 증액하기란 쉽지 않은 만큼 유럽 각국 정부는 회계 장부 조정을 모색 중이다.
독일이 대표적이다. 독일 연방정부는 지난 6월 국방비를 지난해 520억 유로(82조원)에서 올해 624억 유로(98조4천억원), 2029년 1천529억 유로(240조9천억원)로 늘리는 내용이 포함된 올해 예산안과 중기 재정계획을 의결했다. 독일은 인프라에도 2045년까지 5천억 유로(약 824조원)를 쓴다는 계획이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는 지난달 말 복지 분야에 대해 "현재 우리가 누리는 복지 국가는 더 이상 경제 생산으로 재정을 감당할 수 없다"며 사회 제도 개혁 필요성을 언급했다. 현재 이를 위한 위원회가 활동 중이며 연말까지 권고안을 제출할 예정이다.
프랑스도 유사한 예산안을 그리고 있다. 직전 프랑수아 바이루 총리는 심각한 재정 적자를 이유로 440억 유로(약 66조원)의 예산 절감안을 내놓으면서도 국방 예산만 예외적으로 증액한다고 발표했다가 야권의 반발에 부딪힌 바 있다.
핀란드 역시 긴축 정책으로 개발 원조가 축소되고 난민 수용이 제한되며 대학 예산이 동결된 반면, 국방 예산은 4년 만에 거의 배로 증가했다.
영국도 복잡한 예산 방정식을 풀어야 한다. 지난 2월 말 키어 스타머 총리는 국방 예산을 충당하기 위해 해외 개발 원조를 대폭 삭감하겠다고 발표했다. 당시 스타머 총리는 "이 투자(국방)는 어려운 선택을 통해서만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며 "현시점에서 영국 국민의 방위와 안보가 최우선"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국방과 복지 지출을 대립시키는 건 정치적으로 위험하다는 전문가들의 주장이 있다.
유럽 복지국가·사회정책 분야에서 영향력 있는 학자 안톤 헤메레이크, 마노스 마차가니스는 지난 4월 온라인 저널 '소셜 유럽'을 통해 이 대립에 대해 "정치적으로 해롭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런 대립이 반유럽연합(EU) 포퓰리스트들과 유럽 반대 세력에 의해 어떻게 이용될 수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다"고 우려했다. 예를 들어 정치적 스펙트럼의 양극단에 존재할 수 있는 친푸틴 세력이 특정 국가의 사회 복지 예산 삭감을 비난하며 러시아의 위협을 축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에 따라 "유럽은 국방, 복지 둘 다 지불할 수 있고 그래야 한다"고 촉구했다.
폴란드 은행 벨로반크의 경제학자 피오트르 아라크도 같은 의견이다.
그는 "국방비 증액에 반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국방과 사회복지를 대립시키는 건 허상의 딜레마"라고 경고했다. 그는 "사회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하면 불만 세력이 등장해 결국 극단주의자들이 권력을 잡게 될 것"이라며 프랑스와 독일의 극우 세력 지지율이 오르는 상황을 언급했다.
물론 지출 삭감 없이 모든 분야의 재원을 조달해야 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런던 싱크탱크 재정연구소의 한 보고서는 영국이 GDP의 3.5%를 국방에 할당하려면 "정부가 경찰, 국경 경찰, 사법부, 교도소에 지출하는 모든 예산을 전액 삭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캐피털 이코노믹스의 경제학자 앤드루 캐닝햄은 유럽 정부들의 국방 관련 약속에 대해 재정적 여유가 있는 독일이나 역동적 성장률을 보이는 폴란드를 제외하면 "이런 발표들 대부분은 실현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어떤 경우든 선택은 어렵다.
클라이드 카루아나 몰타 재무장관은 지난 22일 국방 예산 증액은 "필요하다"면서도 사회 안전망을 해체하는 방식이라면 "해외 전투는 이기지만 국내에서는 평화를 잃은 상황을 마주할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즉, 심화하는 불평등과 사회적 불안이 우리가 지키려 하는 유럽 통합 프로젝트를 훼손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s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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