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수민의 그림으로 본 세상] Bottari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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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수민의 그림으로 본 세상] Bottari①

문화매거진 2025-09-30 17:57:3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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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자, Bottari - Mother and Son / 사진: 김수자 스튜디오 제공
▲ 김수자, Bottari - Mother and Son / 사진: 김수자 스튜디오 제공


[문화매거진=하수민 작가] 어린 시절부터 나는 탁 트여 있는 곳을 좋아하지 않았다. 사방 어딘가에서 숨겨진 시선들이 나를 관찰하고 있을 것 같은 두려움이 늘 따라다녔다. 당장 내 시야에 보이지 않더라도, 내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에서 불쑥 스며드는 기척이 있을 것 같다는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불편했다. 그래서인지 나는 사면이 막힌 좁은 공간을 선호했다. 양팔의 가동 범위 내에 벽이 있고, 외부와 통하는 출입구가 하나뿐일 때 비로소 안정을 얻을 수 있었다.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반려견과 함께 투명한 구체 안에 들어가 우주를 떠다니는 상상을 하곤 했다. 그 얇은 막은 외부 세계와의 구분을 만들어내고, 경계로서 나를 보호했다. 바깥의 우주는 알 수 없는 존재들이 잠복하고 있을 것 같은 미지의 영역이었고, 안쪽은 무한한 피난처였다.

이러한 경계에 대한 집착, 그리고 외부로부터 안전하게 고립된 나만의 세계를 만들고 싶은 욕망은 삶의 고비마다 불쑥 튀어나왔다. 당장 보이는 결과를 얻을 수 없다는 불확실함을 등에 업고 달려온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면, 나는 스스로 만든 좁은 공간이라는 피난처가 절실했다. 별일 없는 일상 속에서도 이유 없이 급습하는 불안감과 압박감으로부터 나를 지키는 방어막이 필요했던 거다.

▲ 김수자, Sewing into Walking / 사진: 김수자 스튜디오 제공
▲ 김수자, Sewing into Walking / 사진: 김수자 스튜디오 제공


김수자의 작업은 내가 상상했던 우주 속에 부유하는 투명한 구체와 매우 흡사한 형태를 보여준다. 그녀의 대표적인 연작 ‘보따리(Bottari)’는 우리의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불이나 옷가지 같은 지극히 개인적인 사물들을 천으로 싸서 묶은 것이다. 짐을 꾸리는 이 행위는 단순히 물건을 포장하는 것을 넘어선다. 천이라는 유려한 경계는 안에 담긴 개인적이고 내밀한 세계를 외부 시선으로부터 보호하고, 사적인 영역을 공적인 공간으로부터 단절시킨다.

김수자의 보따리는 자신이 만든 경계가 물리적인 벽이 아닌, 유연하고 이동 가능한 최소한의 세계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 작은 덩어리는 속박과 해방이 공존하는 모순적인 성질을 갖고 있다. 얇은 천에 의해 묶여 있는 듯 보이지만 바로 그 결속이 안쪽의 세계를 자유롭게 호흡하게 하고, 비로소 숨겨진 시선들과 예측할 수 없는 존재감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그 안에는 한 개인의 삶을 넘어 존재를 지탱하는 근원적인 에너지가 응축되어 있으며, 동시에 이동과 정착, 보호와 드러남 같은 상반된 양상을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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