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의 나라’ 일본에서 주식 투자 열풍이 일고 있다. 물가는 오르는데 금리는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무르고 있어서다. 20·30대 젊은이들 사이에서 더이상 은행에 돈을 예치하거나 집에 현금을 쌓아두는 것만으론 노후 대비는 물론 현재 일상조차 편안하게 영위할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29일(현지시간) “미국이나 유럽에선 주식 투자가 흔한 일이지만 일본에선 ‘혁명적인 변화’”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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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전통적으로 저축 성향이 강한 나라다. 총 15조달러(약 2경 1035조원)에 이르는 가계 자산의 절반 가량이 여전히 현금·예금이다. 하지만 일본은행(BOJ)에 따르면 올해 6월 기준 주식·펀드 비중이 19%로, 1990년대 버블 경제 붕괴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금융 투자를 독려하는 정부 정책이 큰 영향을 미쳤다. 일본 정부는 자국민들의 노후 자산을 2배로 늘리겠다는 목표로 지난해 신(新) 소액투자비과세제도(NISA)를 도입, 투자 수익에 대한 비과세 기간을 평생으로 늘렸다. 연간 납입한도는 120만엔에서 360만엔으로, 생애 누적 한도는 600만엔에서 1800만엔으로 각각 3배 확대했다.
이 정책은 20·30대, 특히 여성 투자자들을 주식 시장으로 대거 끌어들였다. NTT데이터 조사에 따르면 NISA 계좌를 보유한 18~29세 여성 응답자 중 3분의 1 이상이 지난해 처음 계좌를 개설했다고 답했다. 올해 3월말 기준 NISA 계좌에 누적된 투자액은 올해 3월말 기준 59조엔(약 556조 4821억원)으로 제도 개편 직전인 2023년 말보다 68% 폭증했다.
지하철 광고, 백화점 홍보까지 이어지면서 젊은층 사이에서 ‘주식 투자는 필수’라는 인식이 빠르게 퍼지고 있다. 지난달 도쿄증권거래소에서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투자 세미나’가 열리는가 하면, 투자 교육 플랫폼 ‘쉬머니’(Shemoney)의 공동 창업자 마쓰오 마리의 여성 대상 부동산 강연에는 정원 30명에 신청자가 200명이 넘게 몰리기도 했다.
이외에도 ‘포모’(FOMO·소외 공포)가 투자 분위기 조성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하기와라 사야카는 “2022년 출산을 계기로 매달 조금씩 투자하기 시작했다. 보너스를 받으면 조금 더 투자한다. 집값이 가파르게 올라 하루라도 빨리 사야하는데, 주변 모두가 같은 고민을 갖고 있다. 다들 ‘지금 투자하지 않으면 늦을 수 있다’는 절박한 분위기가 느껴진다”고 말했다.
일본의 주식 투자 붐은 금융업계에도 큰 기회로 작용하고 있다. 미쓰비시UFJ, 미즈호 등 대형은행들은 물론, 라쿠텐·마네크스 등 온라인 증권사들이 수수료를 기반으로 급성장하고 있다. 예컨대 라쿠텐증권의 NISA 계좌 수는 지난해보다 18% 늘어난 653만개를 넘어섰다.
이에 일본 정부는 지난달 18세 미만 미성년자에게도 NISA 계좌 개설을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모건스탠리는 이러한 일본의 상황에 대해 “1970년대 미국과 닮아 있다. 당시 미국 가계는 높은 인플레이션에 은행 예금 대신 401(k) 등 투자상품으로 눈을 돌렸다”고 짚었다.
블룸버그는 “오랜 기간 은행 예금에 자산을 묻어뒀던 부모 세대와 달리, 아직 초기 단계지만 새로운 자산 형성 전략을 모색하는 젊은 세대 움직임이 뚜렷하다”며 “일본 가계에 세대 교체 바람이 불면서 일본 금융시장에도 지각변동이 감지된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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