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들녘은 곡식이 누렇게 익어가며 수확을 기다린다. 벼 이삭이 고개를 숙인 논두렁을 걷다 보면 예전에는 발길이 닿는 곳마다 곤충이 튀어 오르던 모습이 떠오른다. 풀숲을 헤치면 이리저리 날아오르던 메뚜기는 어린 시절의 놀이이자 농촌의 풍경을 생생하게 채우던 존재였다. 어른들에겐 곡식을 갉아 먹는 성가신 해충이었지만, 동시에 귀한 단백질을 공급해 주는 식재료였다.
추수철이 다가오는 지금, 들판에서의 메뚜기 기척은 한결 줄었다. 과거에는 한 발자국만 움직여도 수십 마리가 튀어 오르곤 했지만, 이제는 눈을 크게 뜨고 찾아야 한다. 농약이 보편화되면서 논과 밭의 곤충 개체 수는 급격히 감소했고, 제초제로 관리된 논두렁에는 알을 낳을 자리조차 사라졌다. 기후 변화로 인한 집중호우와 가뭄도 메뚜기의 생존을 위협했다.
가을은 논두렁에서 풀잎을 뜯던 메뚜기들이 성충으로 자라 뛰어다니며 마지막 생을 이어가는 계절이다. 하지만 들판에서 흔히 보이던 그 작은 곤충의 모습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메뚜기 생김새와 생태
메뚜기는 곤충강 메뚜기과에 속하는 초식성 곤충이다. 몸길이는 대체로 3~5cm 정도이며, 머리와 가슴은 단단한 외골격으로 덮여 있다. 뒷다리는 길고 튼튼해 순간적으로 멀리 뛸 수 있고, 날개를 펼치면 짧은 비행도 가능하다. 몸 색은 초록이나 갈색이 많으며, 주변 환경에 따라 위장 효과를 얻는다.
생태적으로는 낮 동안 활발히 활동하며 벼, 보리, 옥수수, 콩, 각종 풀을 먹는다. 번식력도 강하다. 암컷은 땅속에 알주머니를 묻는데, 한 번에 수십 개에서 수백 개까지 낳는다. 여름철 알이 부화하면 어린 개체가 무리를 지어 자라며, 가을까지 수를 크게 불린다.
조선시대 기록에서도 메뚜기는 농사를 위협하는 존재로 자주 등장한다. 메뚜기 떼가 들판을 덮어 곡식을 갉아 먹으면 흉년이 찾아왔고, 당시 백성들은 이를 천재지변처럼 받아들였다. 그러나 같은 곤충이 식재료로도 쓰였다. 단백질과 칼슘이 풍부한 메뚜기는 고기를 구하기 힘들던 시절 중요한 보충 식량이었다. 지금도 일부 지역에서는 메뚜기 조림이나 튀김을 판매하며 옛 먹거리 문화를 이어가고 있다.
왜 점점 보기 힘들어졌을까
메뚜기는 원래 논과 밭, 풀밭 같은 개방된 공간에서 서식했다. 논두렁 잡초는 알을 낳는 장소였고, 곡식과 풀은 먹이가 됐다. 예전 농촌 풍경은 메뚜기에게 최적의 환경이었다. 그러나 농약과 제초제 보급으로 상황이 달라졌다. 잡초가 사라지고 흙이 굳으면서 알을 묻을 수 있는 공간이 줄어든 것이다. 하천 정비와 농업기계 사용 증가도 메뚜기의 서식 환경을 크게 축소했다.
현재 메뚜기는 법적으로 보호받는 멸종위기종은 아니다. 여전히 일부 지역에서는 비교적 쉽게 발견되기도 한다. 하지만 전국적으로 개체 수가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특히 아이들이 마음껏 메뚜기를 잡던 시골 풍경은 이제 찾아보기 힘들다. 친환경 농법을 택한 논에서는 가끔 메뚜기가 무리를 지어 뛰는 모습이 관찰되지만, 전체적으로는 과거에 비해 개체 밀도가 확연히 낮아졌다.
연구자들은 메뚜기 감소를 단순한 한 종의 문제로 보지 않는다. 메뚜기를 비롯해 잠자리, 나비, 방아벌레 같은 곤충이 동시에 줄고 있기 때문이다.
메뚜기를 만난다면
오늘날 메뚜기는 친환경 농법을 유지하는 논, 제초제를 쓰지 않는 풀밭, 관리가 덜 된 습지 주변에서 가끔 볼 수 있다. 잡히는 즉시 뛰어오르는 힘찬 뒷다리 움직임은 여전히 생명력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예전처럼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수십 마리가 튀어 오르는 광경은 보기 어렵다.
메뚜기를 만났을 때 잡아 먹는 문화는 이제 거의 사라졌다. 다만 일부 지역 축제나 장터에서는 메뚜기튀김을 판매하며 옛 방식을 체험할 수 있다. 메뚜기를 식용으로 삼는 것은 옛날 먹거리 차원을 넘어 미래 식량 자원 연구와도 연결된다. 실제로 국제사회는 곤충 단백질을 대안 식량으로 주목하고 있고, 메뚜기는 대표적인 후보로 꼽힌다.
메뚜기를 다시 풍경 속에서 자주 만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농업 방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농약 의존도를 낮추고, 잡초와 논두렁 생태계를 일정 부분 복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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