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 끝에 금강약돌을 독점반입조건으로 계약하고 남포항에서 인천으로 들여왔다. 신덕샘물은 물류, 자금, 유통 등에 자신이 없었고 개성인삼은 규제품목이라 반입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금강약돌을 선택한 것이다.
그런데 금강약돌 반입이 예기치 않게 신문에 실려 버렸다. 처음 보도한 중앙일보 김시래 기자와는 지금까지도 의형제가 되어 형. 아우 하며 살고 있다. 금강약돌이 맺어준 소중한 인연이 아닐 수 없다.
당시 국내 분위기는 북한에서 지푸라기 하나만 들여와도 언론에서 촉각을 곤두세우고 지대한 관심을 기울이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보도가 나가면 북한에선 그걸 문제 삼고 거래를 중단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곤 했다.
하지만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에서 언론이 갖는 순기능을 설득하니 처음하곤 달리 차츰 이해하고 넘어가게 됐다. 이후 다른 반입품이 기사가 나가도 불만 제기는 했지만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다.
이후 국내에 없는 북한의 화석, 광물표본, 식물표본 등을 주문받아 들여와 납품했고 한번은 전국 순회 전시를 목적으로 북한산 수석 2천500여 점을 들여오기도 했다.
그런데 동업하자던 사람한테 속아서 사업이 무산되는 바람에 고민하다‘좋은 일이나 한번 하자’싶어 수석 전량을 추석 명절에 실향민들에게 하루 500점씩 닷새동안 현대백화점 무역지점에서 무료로 나눠 드렸다.
그런데 요는 조선일보에서 본 기사를 바탕으로 금강약돌을 반입은 했는데 문제는 어디에 써야 할지 모른다는 거였다. 그래서 금강약돌을 한국 실정에 맞게 적용시킬 만한 품목으로 찾느라 무진애을 쓰며 고생을 했다.
처음에는 우림돌을 만들었으나 판매가 신통치 않았고 1998년에는 금강산관광에 투입된 금강호등 관광선에서‘금강약돌비누’로도 만들어 팔았다, 배게, 사우나용 몰타르, 돌구이 전문점용 돌 등으로 팔기도 해보고 이것저것에 적용해 보려 시도를 많이 했다.
그러다 우연히‘금강약돌 황토매트’를 만들어 홈쇼핑에 팔았는데 이게 대히트를 쳤다.‘금강약돌 황토매트’로 인해 회사도 알려지고 비약적으로 성장해 나갔다. 1년 만에 100억 원이 넘게 매출을 올렸고 매트가 좋다는 입소문이 교포사회에도 퍼져 미국에 수출도 하게 되었다. 북한의 자원과 우리의 기술이 만나 수출을 달성했다는 자부심도 느꼈다. 이후 지속적으로 외형이 늘어나 2000년도엔 수백억대 매출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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