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실험미술 궤적 쫓는 이강소 회고전 '곡수지유: 실험은 계속된다'
'닭 퍼포먼스'부터 최신 연작 '바람이 분다'까지…130여 점 공개
(대구=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실험미술의 거장으로 꼽히는 원로작가 이강소(82)의 회고전 '곡수지유: 실험은 계속된다'가 대구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그는 여든이 넘은 원로지만 왕성하게 활동하는 '현역' 작가 중 한 명이다. 지난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열었고, 지난 12일부터는 프랑스 파리 타데우스 로팍 파리 지점에서 개인전을 이어가고 있다.
이번 회고전 제목인 곡수지유는 흐르는 물 위에 술잔을 띄우고, 잔이 지나기 전에 시를 짓던 동양의 풍류에서 나온 말이다. 물 위에 술잔이 끊임없이 흐르듯 작가의 실험 정신도 계속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번 회고전은 작가의 최근 연작에서 시작해 1970년대 실험미술의 역사와 회화, 조각 작업 등 130여점을 통해 작가의 예술 세계를 쫓아간다.
2022년 시작한 회화 연작 '바람이 분다'는 기존의 무채색 회화에서 벗어나 화려한 색채를 선보인다. '청명' 연작에 화려한 색을 더한 듯, 화면 위를 빠른 붓질로 굵게 가르며 오리와 배 모양 등 작가 특유의 상징들이 등장한다.
작가의 대표작인 '닭 퍼포먼스'도 재현했다.
1975년 제9회 파리 비엔날레에 참여한 작가는 당시 전시장 중앙에 모이통을 놓고 닭을 긴 줄로 묶었다. 모이통 주변에는 석고 가루를 뿌렸다. 이를 통해 3일간 닭이 돌아다닌 흔적이 남도록 했고, 이를 작품으로 선언했다. 이 작업은 당시 큰 화제가 되면서 프랑스 국영 TV에도 소개됐다.
'페인팅 78-1'은 투명한 유리에 겹겹이 붓질을 더하는 과정을 기록한 영상 작품이다. 1977년 대구에서 낡은 캠코더로 만든 약 30분 길이의 이 작업은 회화를 '완성된 결과'가 아닌 '그려지는 과정'으로 바라보게 한다.
전시장 한편에는 대표 회화 연작 '허'(虛)와 조각 작품만을 모아 전시했다.
'허'는 흰 캔버스에 힘 있는 획과 오리 기호만 배치해, 여백 속 긴장감을 드러낸다. 제목이 없는 조각 작품은 벽돌 모양으로 주무른 흙을 아무렇게나 던져 쌓은 모양이다.
작가의 작품 외에도 '신체제', 한국아방가르드협회(AG), '에꼴드서울', 대구현대미술제 등 작가가 참여하고 주도했던 여러 미술 운동이나 행사 등에서 작가의 활동이 담긴 기록 자료들도 볼 수 있다.
전시를 다 보고 나오면 1973년 서울 명동화랑에서 열렸던 작가의 첫 개인전 '소멸'을 재현한 공간이 펼쳐진다. 당시 작가는 전시장에 그림을 거는 대신 실제 선술집에서 가져온 낡은 탁자와 의자를 가져다 놓고 관람객들에게 막걸리를 팔았다.
미술관은 로비에 관람객들이 자유롭게 앉아서 쉴 수 있는 탁자와 의자를 놓았고, '낙지볶음, 조개탕, 돼지갈비' 등 메뉴를 적어 놓은 입간판을 세웠다.
전시를 기획한 이정민 학예연구사는 "이강소의 예술은 반세기 동안 이어진 실험과 확장의 여정"이라며 "이번 전시는 그 궤적 속에서 탄생한 작품 세계를 폭넓게 선보이고 대작들이 지닌 깊이와 울림을 체감할 수 있는 자리"라고 설명했다.
전시는 내년 2월 22일까지.
laecorp@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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