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전 번역원장 대담…"세계문학 속 한국문학 분기점, 정책 방향 수립 필요"
번역 출판 양적 팽창했지만 장르 편중…"우수 번역가 양성·다양한 작품 소개해야"
독서율 낮아지는 추세에 "청소년에 문학 필수로 교육하길"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문화 예술 분야에서 상은 수고와 성취에 따른 가시적인 결과물이지만, 그보다 앞으로 중요한 과제는 내실을 다지고 작품성을 인정받는 작가들이 더 많이 나오는 거라고 생각해요."(이승우 소설가)
"노벨문학상은 한국문학의 목표가 아니라 우리가 거쳐 가야 할 중요한 관문이었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그 중요한 관문을 이제 막 통과했고, 이제부터가 중요하다고 봅니다."(곽효환 전 한국문학번역원장·시인)
지난해 10월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 알려지자 자연스레 '한국문학에 봄이 왔다'는 말이 나왔다. 그간 역량에 비해 세계 무대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한국문학이 유례없는 관심을 받는 계기였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 봄을 맞이한 한국문학은 어떤 꽃을 피우고 또 어떤 열매를 맺었을까.
한국문학을 해외에 알리기 위해 최전선에서 일해온 곽효환(58) 전 한국문학번역원장과 한강 이전에 해외에서 높은 작품성을 인정받았던 이승우 작가(66)에게 한국 문학의 현주소와 나아갈 길을 물었다.
지난 24일 서울 종로구 연합뉴스에서 만난 두 사람은 이번 대담에서 "한국문학은 지금부터가 더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 "잠깐의 잔치로 끝나느냐, 세계 속 한국문학 되느냐 분기점"
두 사람은 한국문학이 현재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는 사실에 뜻을 같이했다. 하지만 그 관심이 어떤 성격인지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곽 전 원장은 "한국문학이 해외에서 2023년에 52만부가 팔렸는데, 작년에는 120만부가 팔렸다. 이는 노벨문학상 영향으로 볼 수 있다"며 "하지만 이게 오직 '한강 특수'인지 한국문학 전반을 향한 관심인지를 정밀하게 파악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작가 역시 "오르한 파묵이 노벨문학상을 받았다고 해서 우리 독자들이 튀르키예 문학을 찾아서 읽거나 욘 포세가 상을 받았다고 노르웨이 문학이 인기를 끌지는 않았다"며 현상에 대한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곽 전 원장은 한국문학이 세계문학계 일원으로 자리 잡기 위한 정책 방향을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구체적인 정책을 준비하고 시행해야 하는데, 아직 눈에 띄는 정책이 나오진 않은 것 같다"며 "지금부터 짧게는 3, 4년 동안 세계문학 속의 한국문학으로 자리매김할지, 아니면 환희에 취해서 여기서 기뻐하고 잔치를 끝낼 것인지 분기점에 서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1980년대 홍콩 누아르 영화의 인기가 어마어마했어요. 그런데 잠깐의 인기로 끝났죠. 한국 문학도 일시적인 트렌드처럼 지나가게 둬선 안 됩니다."(곽효환 전 원장)
◇ 번역 출판 양적 팽창했지만 특정 장르 편중…"다양성 확보해야"
한국문학을 해외에 더 널리 알리려면 양질의 번역이 필요하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곽 전 원장은 번역원의 번역대학원대학 설립을 통해 우수한 번역가를 정책적으로 양성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문학 번역은 도착어(번역된 언어)가 모국어인 사람이 해야만 한다"며 "40년 전쯤 한국문학을 외국어로 옮긴 1세대 번역가들은 외국 문학을 전공한 한국인들이었기 때문에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2세대 번역은 한국인과 외국인이 팀을 이뤄 번역해 질을 높였으나 서로 호흡을 맞춰야 한다는 면에서 쉽지 않았고, 이후 정책적인 육성을 거쳐 데버라 스미스, 안톤 허, 김지영, 윤선미처럼 뛰어난 3세대 번역가들이 나온 것"이라고 되짚었다.
그는 "번역원장으로 재임하던 때 번역대학원대학 설립을 오랫동안 추진했는데 다른 대학들의 반대나 행정적인 이유로 쉽지 않았다"며 "이기주의와 관료주의를 버리고 꼭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두 사람은 나아가 번역가 자원이 한정된 상황에서 어떤 작품을 해외에 알릴지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작가는 "최근 특히 '힐링소설'이나 장르물이 예전에는 상상할 수 없던 금액에 판권을 수출한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며 "시장 수요에 의해 특정 장르 작품들이 번역된다면, 지원을 통해 다른 종류의 작품들을 번역 출간해서 한국문학의 다양한 모습을 알리면 좋겠다"고 제시했다.
실제 번역원 지원작은 한강 작품을 제외하면 대부분 '힐링소설'로 분류되는 작품과 장르물에 편중돼 있다.
출간된 시기별로 보면 대부분의 번역이 최근 발표된 작품들에 집중되는 경향도 보인다. 2000년 이전에 나온 한국문학 작품들은 아직 서구권에 상대적으로 많이 알려지지 못했다.
곽 전 원장은 "2010년대 중반까진 번역원과 대산문화재단 모두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작품을 골라서 번역해 해외에 출판했는데, 해외 독자들과의 수요 사이에 간극이 컸다"고 돌아봤다.
이어 "2010년대 중반 이후 수요자 중심으로 현지 출판사나 에이전시에 선택권을 준 결과 2020년대에는 연간 200종 넘는 한국문학 작품이 해외에 출판되는 양적 팽창을 이뤘다"고 설명했다.
다만 곽 전 원장은 "이런 양적 팽창에 따라온 부작용도 있었다"며 "문학적 가치보다 시장 수요만 우선시하면서 해외에 번역하는 작품 대부분이 '힐링소설' 또는 장르물이 됐다"고 했다.
이 작가는 "어떤 작품을 해외에 소개할지는 여러 주체의 이해관계가 얽힌 복잡한 문제지만, 번역가들이 어떤 작품을 번역할지 가이드를 제공해주는 기구가 필요하다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 "결국 독자가 많아야…문학교육, 다시 필수과목 되길"
한국의 독서율은 자꾸 하락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국민 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2022년 9월부터 2023년 8월까지 성인 중 일반 도서를 한 권이라도 읽은 사람은 43%에 그쳐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독서율 저하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다양한 영상 미디어 발전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더 많은 집중력을 요구하는 책이 국민의 일상과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 중 하나다.
시대 흐름에 따른 반작용이어서 독자를 다시 불러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두 사람은 교육 현장에서 문학을 가르쳐야 한다고 말했다.
곽 전 원장은 "교육과정이 개정돼 문학이 선택과목이 됐다"며 "문학 교육이 필수과정으로 정상화되지 않으면 문학의 기초를 회복하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지적했다.
조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출신인 이 작가 역시 "청소년기에 정신을 키우고 세계관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이 문학"이라며 청소년들이 문학을 접하도록 하는 동인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독서율이 낮은 상황에서도 최근 작은 책방들을 중심으로 독서 모임이 많이 생겨나는 것은 앞을 기대하게 하는 부분"이라며 "작은 독서 모임이 많다는 건 좋은 책을 읽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 "한국문학의 힘은 다양성…독특한 작품 얼마든지 나올 수 있어"
이 작가는 한강에 앞서 세계 문학계에 소개돼 한국 문학을 알린 작가 중 한명이다. 그의 소설 '생의 이면'과 '식물들의 사생활' 등은 이미 2000년대 초반 프랑스에 번역 출간됐고, 현지 언론에서 호평받았다. '식물들의 사생활' 초판본은 한 달 만에 매진되기도 했다.
이 작가에게 세계 시장에서 통할 한국 문학의 경쟁력이 무엇인지 묻자 "다양성"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는 "우리 작가들이 출신도 전공도 다양해서 누구도 생각할 수 없는 세계를 펼쳐 보인다"며 "한강 작품을 비롯해서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개인의 고통을 다루는 한국 문학이 해외에서 높이 평가받았는데, 이 밖에도 보여줄 것이 아직 많다"고 설명했다.
"지금 젊은 세대의 문학을 보면 주류라고 할 만한 게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굉장히 다양해요. 저는 그게 건강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한 방향으로 수렴하기보다 작가 고유의 개성에 의해 독특한 작품이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는 가능성, 그게 한국문학의 힘이라고 봅니다."(이승우 작가)
jae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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