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영국·캐나다 등 영미권 15명 이내…한국처럼 '단일 전원합의체' 중심
독일·프랑스는 100명 이상…운영 형태·헌법적 위상 달라 단순 비교 어려워
민주 "26명으로 늘려 적체해소" vs 대법 "최고법원 판결불합치 등 혼란 우려"
(서울=연합뉴스) 이미령 기자 = '대법관 증원론'을 뒷받침하는 근거 중 하나로 일각에서 프랑스·독일 모델을 거론하면서 해외 최고법원 구성에도 관심이 모인다.
미국과 영국, 캐나다 등 영미권 국가들은 대부분 우리나라처럼 대법관 수를 15명 이내로 두고 있다. 프랑스와 독일의 최고법원 법관은 100명이 넘는다. 다만, 국가별로 최고법원의 역할과 운영 방식 면에서 우리와는 차이가 있어 더욱 면밀한 비교·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대법관 수는 대법원장 포함 14명이다. 이중 실제 상고심 심리에 관여하는 것은 법원행정처장을 제외한 13명이다.
우리나라처럼 대법관 전원이 한 자리에서 토론을 거쳐 결론을 내는, 단일 전원합의체(One Bench·원 벤치) 중심 시스템을 가진 최고법원은 대체로 15명 이하로 구성된다.
미국의 최고법원인 연방대법원은 1869년부터 1명의 연방대법원장을 포함해 총 9명의 종신직 연방대법관으로 구성돼 있다.
영국 대법원에는 대법원장과 부대법원장을 포함한 12명의 대법관이 있다. 영국에선 과거 상원 상소위원회가 최고 사법기관 역할을 하다 2009년 10월 대법원이 출범했다.
일본 최고법원인 최고재판소는 1명의 최고재판소 장관을 포함해 15명의 재판관으로 구성된다. 이 중 10명은 법률가 중에서 임명해야 하지만 나머지는 비법률가도 자리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그 밖에 캐나다 대법원은 9명, 호주 대법원은 7명의 대법관을 두고 있다.
반면, 독일의 민·형사 최고법원인 연방일반법원의 법관은 150명 이상이다.
독일 연방일반법원은 우리나라와 달리 법관의 지위와 역할이 구분된다. 연방일반법원은 19개(민사 13개·형사 6개) 재판부로 구성되고 1명의 재판장이 각 재판부를 이끈다.
각 재판부에는 7∼9명의 판사가 배치되며 재판부 안에 3개의 합의체(소부)가 존재한다.
우리 전원합의체처럼 법령 해석의 통일을 위한 재판부는 대재판부제로 운영된다.
민사사건은 법원장과 각 민사재판부 판사 1명씩, 형사사건은 법원장과 각 형사재판부 판사 2명씩 대재판부를 꾸린다. 다만 대재판부는 극히 이례적으로 운용돼 2021년 기준으로 과거 10년간 민사 대재판부는 1건, 형사 대재판부는 7건을 각각 처리했다.
법원장과 두 대재판부 모든 판사가 참여하는 통합 대재판부가 다룬 사건은 2016년 1건에 불과했다.
프랑스 최고법원인 파기원은 6개 재판부(민사 3개, 상사·사회·형사 각 1개)로 구성된다.
파기원장 1명과 부장 파기원 판사 7명(6명은 재판장), 그 외 판사들을 포함해 총 200명 이상 법관이 소속돼 있다. 독일과 마찬가지로 각 재판부 안에 3∼5명으로 구성된 소부가 여러 개 있다.
법령 해석 역할은 최소 13명으로 구성된 연합부에서 담당하는데 마찬가지로 심리 건수는 매년 5건 미만으로 흔치 않다. 연합부는 파기원장과 관련 재판부의 부장 파기원 판사, 선임 파기원 판사, 그 외 판사 2명씩으로 이뤄진다.
독일과 프랑스 최고법원은 우리나라 대법원과 비교할 때 운용방식 외에 헌법적 위상 면에서도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는 헌법에 대법원에 관한 사항을 상세히 기술해 헌법기관으로서 지위와 위상을 직접 규율한다.
반면에 독일은 최고 사법기관인 연방헌법재판소가 최종심을 담당하는 연방일반법원의 상위에 존재한다.
실제 한국의 헌법에 해당하는 '독일기본법'은 연방헌재에 대해선 상세히 규정하고 있지만 연방법원에 대해선 지위, 법관 임명절차 등만 간략히 정하고 있다.
프랑스 역시 파기원 설치 근거나 지위 등에 관해 헌법이 직접 규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헌법기관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평가가 있다.
한국 대법원처럼 하나의 전원합의체를 둔 미국과 영국은 물론 독일, 프랑스 등 다수 재판부를 둔 해외 최고법원에서도 상당수가 상고 제한 제도를 둔 점도 특징이다.
미국은 모든 상고 사건에 대해 연방대법원의 상고 허가를 거친다. 특히 상고허가 신청에 대한 심리도 연방대법원의 의무가 아닌 재량사항으로 둬 폭넓은 재량권이 인정된다.
2심인 연방항소법원 간 동일한 쟁점에 대해 상반되는 판단을 한 경우, 연방대법원 차원의 판단이 필요한 중요한 연방적 쟁점에 관해 판단한 경우 등에는 상고를 허가하는데, 상고 허가 인용률은 매해 2∼3%대에 그친다.
영국 역시 모든 사건에 대해 항소법원이나 대법원의 상고 허가가 필요하다. 항소법원에 상고 허가를 신청하고, 항소법원에서 불허하는 경우 대법원에 다시 상고 허가를 신청한다.
상고 허가 기준의 핵심은 '법적 쟁점이 일반적인 공적 중요성이 있는지'다.
다수 재판부를 둔 독일에서도 민사사건은 상고 허가제를 채택하고 있다. 형사사건은 중죄에 한해 최고법원의 판단을 받을 수 있다. 일차적으로 원심법원이 상고 허가 여부를 결정하고, 원심 법원이 불허한 경우 이에 불복하는 절차를 거쳐 이뤄진다.
프랑스 파기원은 증가하는 상고 사건에 대응하고자 2002년 '상고불수리' 제도를 도입했다. 중요하지 않은 상고 사건을 선별해 이유를 달지 않는 재판으로 배제하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심리불속행 제도와 구조가 유사하다는 평가가 있다.
우리나라는 상고를 거의 무제한 허용하고 있어 대법원 사건 부담이 과중한 것이 사실이다. 지난해 대법관 1명이 처리한 상고심 건수는 평균 3천건을 넘었다.
더불어민주당은 대법관 증원을 통해 사건 부담을 줄이고 상고심 적체를 해소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민주당 사법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는 대법관 수를 현 14명에서 26명으로 늘리는 법원조직법 개정안 입법을 추진 중이다. 매년 4명씩 3년에 걸쳐 12명을 더 임명한다는 것이다. 당내 일각에서는 30명까지 늘려 전원합의체를 복수로 운용하는 방식까지 거론된다.
25일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 재판제도분과위원회 토론회에서도 여러 개 전원합의체를 운영하는 다른 나라의 사례를 들어 하나의 전합을 고집하는 부분은 설득력이 없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해외 최고법원 운용 사례를 보더라도 '신중한 설계 없이 대법관을 대폭 증원하면 하나의 전원합의체 원칙이 무너질 수 있다'는 입장이다. 최고법원 운용에 관해 치밀한 사전 검토나 공감대 없이 섣불리 개편을 시도하는 것은 자칫 큰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하급심 강화 등 상고심 문제 해결을 실질적으로 해결할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견해도 제기된다. 대법관 증원에만 몰입할 게 아니라 법적 자원과 역량을 하급심 확충에 투입해 일반 국민이 실질적으로 느끼는 재판 지연 등의 문제를 해소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결국 사실심인 1, 2심의 강화가 분쟁의 신속한 해결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지적이 법조계에서는 나온다.
최고법원의 판결이 사회적 규범을 제시하고 통일된 법리를 밝혀주는 역할을 충실히 하지 못하게 될 우려가 있다는 견해도 있다.
법워행정처는 앞서 민주당 사개특위에 낸 의견서에서 독일과 프랑스 최고법원의 이례적 대재판부·연합부 운용을 거론하며 "신중한 설계 없이 복수 전원합의체나 연합부를 도입하면 판결의 불합치 등 상당한 혼란이 생길 우려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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