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 주도로 2023년 9월 문 연 마산면 유일 카페…마을 사랑방 역할
지난해 외지인 3천405명 포함 2만2천700명 방문…9천700만원 매출
최근 농식품부 행복농촌 만들기 콘테스트서 빈집 재생 분야 입선
[※ 편집자 주 = 저출산에 따른 인구 감소와 인구이동으로 전국에 빈집이 늘고 있습니다. 해마다 생겨나는 빈집은 미관을 해치고 안전을 위협할 뿐 아니라 우범 지대로 전락하기도 합니다. 농어촌 지역은 빈집 문제가 심각합니다. 재활용되지 못하는 빈집은 철거될 운명을 맞게 되지만, 일부에서는 도시와 마을 재생 차원에서 활용하는 사례도 늘고 있습니다. 연합뉴스는 매주 한 차례 빈집을 주민 소득원이나 마을 사랑방, 문화 공간 등으로 탈바꿈시킨 사례를 조명하고 빈집 해결을 위한 방안을 모색합니다.]
(서천=연합뉴스) 정윤덕 기자 = 1919년 3월 29일 충남 서천군 마산면 신장리 장터에서 우렁찬 "대한독립만세" 함성이 울려 퍼졌다.
박재엽·조남명·고시상 등 14명의 의사가 주축이 되고 주민 2천여명이 참여한 서천지역 대표 항일운동이었다.
106년이 지난 지금 만세운동이 벌어졌던 장터는 기념광장 겸 공영주차장이 됐고, 그 옆에는 고즈넉한 한옥 카페가 자리 잡고 있다.
카페 이름은 만세운동일인 3월 29일을 기념해 '329'다.
2023년 9월 18일 문을 연 이 카페는 인구 1천388명 중 56.3%인 781명이 65세 이상인 마산면에 처음 생긴 카페다.
젊은이들이 계속 빠져나가고 노인들이 돌아가시면서 마산면 인구는 줄고 고령화도 심각해졌다. 빈집도 점점 늘어났다.
쇠퇴 원인을 고민하던 마산면 주민자치회는 2022년부터 장기 방치된 빈집을 지역사회에서 활용하기 위한 방안을 찾기 시작했다.
마산면에는 유일한 식당으로 염소탕집이 있는데, 외지에서 손님이 방문하거나 명절 때 자식·손주들이 찾아와도 차 한잔 마시러 갈 곳이 없다는 면민들의 하소연에 서천군이 나섰다. 군은 10여년간 방치돼 있던 빈집을 사들인 뒤 건물 터와 뼈대만 남긴 채 새로 짓다시피 해 카페로 단장했다.
농림축산식품부의 농촌유휴시설 활용 창업지원사업 대상으로 선정되면서 국비 2억2천500만원도 지원받았다.
585㎡ 부지의 카페 입구에 들어서면 넓은 잔디마당이 펼쳐진다.
마당을 가로질러 본채 옆으로 돌아가면 예전에 쓰던 아궁이 위에 녹슨 가마솥이 걸려 있고, 장독대와 우물도 그대로 남아 있어 젊은이들의 레트로 감성을 자극하기 안성맞춤이다.
카페 안은 다른 일반 카페처럼 테이블과 의자가 있는 홀뿐만 아니라 좌식 탁자가 놓인 방도 별도로 마련돼 있다.
카페329를 운영하는 마산면 주민자치 사회적 협동조합의 이병도 대표는 "카페로 바뀌기 전 비어있던 집의 주인 아들이 언젠가 찾아왔는데, 완전히 탈바꿈한 모습을 보고는 너무 좋아하고 고마워하며 한참을 머물다 갔다"며 "명절 때 고향에 내려오는 자녀들도 너무 잘 꾸몄다고 반긴다"고 말했다.
노인들이 무슨 커피를 마시겠나 생각하겠지만, 지난해 카페329를 찾은 손님 중 85%인 1만9천295명이 마산면민을 비롯한 서천군민이다.
주민자치회는 25개 마을별로 돌아가며 '찾아오는 주민총회'를 카페329에서 열고, 고령자와 취약계층 주민을 카페로 데리고 와 무료로 음료를 제공하며 안부를 묻는 '카페 안부 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어린애부터 노인까지 면민들이 참여하는 '물버들 음악회'를 비롯한 주민 참여 문화프로그램도 꾸준히 마련되는 등 카페329는 마을 사랑방으로 완전히 자리 잡았다.
여기에 주말이면 주변 캠핑장과 관광지를 찾은 외지인(지난해 3천405명)들의 발길도 줄을 잇는다.
이에 지난해 카페329는 9천7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인건비와 운영비를 제외하고 800만원이 순수익으로 남았다.
올해 들어서도 5월까지 외지인 1천229명을 포함해 8천189명이 카페329를 찾았고, 3천300만원의 매출과 1천500만원의 순수익을 올렸다.
카페329의 시그니처 메뉴는 블루베리 스무디와 서천 하면 떠오르는 모시를 활용한 라테다.
특히 블루베리는 매년 6월 축제를 열 정도로 마산면의 특산물이다. 올해 축제 때 카페329는 이틀 동안에만 300만원 매출을 기록하기도 했다.
카페329는 세대를 잇는 가교 구실도 하고 있다.
한 달 전부터 카페 매니저인 엄마를 돕고 있는 김자연(35) 씨는 서울에서의 직장생활에 지쳐갈 즈음 엄마의 조언에 귀향을 결심했다.
김씨는 "엄마가 '시골 생활에 대한 걱정만 내려놓으면 훨씬 여유롭게 살 수 있다'고 해 용기를 냈는데, 어르신들이 조카나 손녀처럼 대해주셔서 너무 편하게 일하고 있다"며 "어르신들과 수다를 떠는 게 일과"라고 말했다.
카페329는 최근 농림축산식품부 주최 제12회 행복농촌 만들기 콘테스트에서 빈집 재생 분야 입선을 차지했다.
단순한 상업 공간을 넘어 주민들이 자유롭게 소통하고 모일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하며 지역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점이 높이 평가됐다.
서천군은 카페329 주변 빈집 5채 중 일부를 더 매입한 뒤 공방이나 체험학습 공간 등으로 꾸며, 일대를 특화 거리로 조성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병도 주민자치 사회적 협동조합 대표는 "귀농·귀촌 정책을 통해 농촌에 외지 청년들을 유입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지역 청년들이 떠나지 않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실제로 마산면에는 여건만 된다면 마을을 떠나지 않겠다는 청년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어 "폐가를 개조해 지역을 밝게 하는 동시에 청년들이 하고 싶은 일을 잘 할 수 있는 창업공간 등으로 활용하면 마산면이 빈집 없는 활력 넘치는 농촌, 청년과 주민이 상생하는 지속 가능 공동체가 되리라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cobr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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