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위험의 외주화'는 틀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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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멱칼럼]'위험의 외주화'는 틀린 말이다

이데일리 2025-09-26 05:00: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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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 ‘위험의 외주화’가 당연한 말처럼 널리 사용되고 있다. 심지어는 정부 문서, 판결문에서조차 외주(도급)는 위험하다고 전제하며 버젓이 사용할 정도다. 과연 위험을 외주화해 사고가 나는 걸까. 그렇지 않다. 위험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사고가 나는 것이다.



일을 외주하지 않고 직접 한다고 위험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위험을 관리하지 않으면 외주 여부에 관계없이 사고가 날 수 있다. ‘위험의 외주화’가 현실을 오도하는 잘못된 표현인 이유다. 이 표현은 외주는 곧 위험이라는 도그마로 정작 중요한 ‘위험의 관리’를 놓친다는 점에서 이념 편향적인 용어라고 할 수 있다.

외주는 분업의 일종이다. 외주하지 않고는 경제를 영위할 수 없다. 따라서 외주를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분업과 경제활동을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선진외국에선 외주 자체가 나쁜 안전을 초래한다고 보지 않는다. 외주를 경제발전의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보고 외주에 따른 ‘안전관리 불량’이 나쁘다는 인식하에 이를 실효성 있게 규제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모든 사물에는 양면이 있듯이 외주에도 빛과 그림자가 있다. 어떤 사물에 부작용이 있다고 그것을 아예 없애는 것이 어리석은 생각이듯 부작용 발생 가능성을 이유로 외주 자체를 악마화하는 건 단선적이다. 외주에 대한 이런 잘못된 시각이 외주에 대한 터무니없는 규제와 과잉 제재로 이어지고 있어 그 폐해가 심각하다.

모든 사람의 책임은 그 누구의 책임도 아니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의무주체의 지위와 역할에 따라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부과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책임을 제대로 이행할 수 없다는 원칙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외주화는 나쁘다’는 프레임에서 이 원칙은 맥없이 무너지고 있다. 우리나라 안전법의 도급규제는 이 원칙을 무시하고 도급인(원청)과 수급인(하청), 하수급인(재하청)에 중첩적으로 책임이 있는 것인 양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겉으론 의무주체에게 강한 책임을 부과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누구의 책임인지 헷갈려 우왕좌왕하는 일이 다반사다.

그렇다 보니 도급규제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고 지킬 수도 없는 누더기 규제가 되고 말았다. 도급인인지 건설공사발주자인지 도급인의 책임인지 수급인의 책임인지, 도급인의 책임이라면 그 범위는 어떻게 되는지 전문가뿐만 아니라 주무부처조차 답변하지 못한다. 사실 국회와 행정기관들도 도급규제를 지키지 않고 있다. 이런 규제를 기업에 준수하라고 강제하고 비준수를 이유로 전 세계 유례없는 초강도 중복제재를 하는 건 그 자체가 악이자 국가에 의해 저질러지는 범죄나 다름없다. 정작 하청 노동자 재해 예방에도 도움이 되지 못할 건 쉽게 예상할 수 있다.

도급규제의 불합리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업무를 도급받아 재차 도급을 주는 사람은 법적으로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 최초로 도급을 준 자와 최말단 수급인에게만 책임이 부과되기 때문이다. 잘못된 법이 (재)하도급을 조장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상태에서 사고 원인을 제대로 따지지도 않고 도급인(원청) 책임 묻기에 혈안인 것은 불의하고 책임원칙에 위배되기도 한다. 정부가 이 사실을 모른다면 지적 태만이고 알고서도 외면한다면 비겁하고 무책임한 것이다.

정부가 말로는 글로벌 스탠더드와 선진국 기준을 강조하면서 외주 문제에 대해 보편적 기준에 따라 법의 예측 가능성과 이행 가능성을 확보할 생각을 하지 않는 건 이율배반적이다. 권위주의 국가가 즐겨 사용하는 엄벌만을 보편적 기준으로 생각하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위험의 외주화와 같은 이념적 구호에 취해 엉성하고 조잡한 도급규제를 방치하고 쏟아내는 건 ‘고비용 저효과’ 산업안전으로 가는 지름길이자 하청 노동자 보호에 ‘진정성’이 없다는 방증이다. 말의 성찬만으론 현실의 얽히고설킨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정부의 책임 있는 대응을 가리고 문제를 더 꼬이게 할 뿐이다. 이념이 현실을 외면하면 내세우는 의도와 전혀 다른 결과로 되갚는다는 점을 역사에서 배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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