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정책 이관 무산에 기재부 ‘뒤숭숭’…“‘방구석 여포’의 참패”

[세종=이데일리 강신우 기자] 정부가 구상했던 기획재정부 분리 2단계 로드맵이 사실상 백지화하자 기재부 안팎이 술렁이고 있다.

애초 로드맵은 내년 초 기재부를 재정경제부(재경부)와 예산정책처(예산처)로 먼저 분리하고 금융 정책 기능은 향후 금융감독위원회설치법안(금감위설치법)이 통과한 후 재경부에 넘기는 구상이었지만, 야당 반대에 더해 금융위와 금감원의 반발이 거세지자 철회 방향으로 급선회했다.

(사진=연합뉴스)

25일 관가에 따르면 정부와 여당이 이날 오전 정부조직개편안의 하나로 추진한 ‘금감위설치법’을 철회하기로 결정하자, 기재부 내부망에는 ‘방구석 여포의 참패’ ‘우리도 파업하고 노조활동을 해야한다’는 등의 자조섞인 비판이 글이 수두룩 올라왔다.

한 기재부 공무원은 “새 정부의 기재부에 맞게 경제정책방향이나 예산안을 짜면 뭐하느냐”며 “‘방구석 여포’라는 말처럼 일만 하다가 조직 확장이나 승진 같은 실속은 하나도 못 챙기는 것이 개탄스럽다”고 푸념했다. 또 다른 공무원은 “금융위나 금감원은 열심히 노조 활동을 하니까 원상복구된 것인데 우리는 뭐하고 있느냐”고 했다.

정부는 내년 1월 2일부터 기재부 조직개편을 시행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금융위이 금융정책 기능을 재경부로 이관하기 위해선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이 위원장인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금감위설치법이 처리돼야 확정 가능하다. 이에 따라 여권에선 기재부를 재경부와 예산처로 먼저 분리하고 금융 정책 기능 조정은 차후 법안을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을 통해 수 개월 후 처리하잔 구상이었다.

그러나 국민의힘이 정부조직법 필리버스터를 예고하는 데다 금융위와 금융감독원을 개편하고 금감위를 설치하는 방안을 두고는 이해 당사자들의 거센 반대까지 이어지자 현행 체제를 유지하기로 선회했다.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이날 국회에서 긴급 고위 당정대 회의 후 브리핑을 열고 “당정대는 당초 신속처리안건으로 처리하려 했던 금융위 정책·감독 기능 분리 및 금융소비자원 신설 등을 이번 정부 조직 개편에 담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상황이 이렇자 예산정책 기능은 물론 기대했던 금융정책 기능 이관마저 무산되자 재경부의 기능이 크게 약화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기재부는 이에 언론 공지를 통해 “경제정책 총괄 조정기능을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해 나가겠다”며 “민생경제 회복과 초혁신경제 구축을 흔들림없이 추진할 수 있도록 재정·금융당국과도 긴밀하게 소통하겠다”고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기재부 내부에서도 불만이 속출하는 등 뒤숭숭한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기재부 한 공무원은 내부망을 통해 “예산도 없으면 조정기능은 결국 총리실이 가져갈 것”이라며 “예산도 금융도 없는데 뭘 어떻게 강화하겠다는 건지 이해를 못하겠다. 암담하다”고 했다.

한편 당정대는 이번 정부조직안 수정안과 관련해 전날 오후부터 긴급한 논의를 거쳤으며,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이 현재 미국 방문 중인 이재명 대통령에게 관련 내용을 보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정애 정책위의장은 금융감독 체계 개편이 전면 백지화인지, 아니면 추후 재추진하는지에 대해선 “거기까지 논의하기에는 시간이 촉박했다”며 “추후 어떻게 진행할지는 고민해야 한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