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정혜련 작가] 지난 18일, 서울의 새로운 교통수단인 ‘한강버스’가 정식으로 운항을 시작했다. 마곡에서 잠실까지 이어지는 노선은 망원, 여의도, 옥수, 압구정, 뚝섬 등 일곱 개의 선착장을 지나며 도시를 가로지르는 또 하나의 길을 만들어냈다.
그중 한 곳은 내가 작업실을 두고 있는 사각사각플레이스 근처에 자리하고 있다. 평소에도 강을 바라보며 그림을 그리고 작품 구상을 이어왔던 나에게는 더없이 반가운 변화다. 한강은 오랫동안 서울 사람들의 삶의 배경이자 휴식처였다. 하지만 동시에 거대한 강은 도시와 도시를 나누는 경계로도 작용했다. 자동차와 지하철이 강을 건너며 양쪽을 연결해 주었지만, 물길 자체가 ‘이동의 길’이 된 적은 드물었다. 이번에 출발한 한강버스는 그 흐름을 뒤집는다. 강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우리가 오가는 ‘길’이자 도시를 묶는 또 하나의 축이 되는 것이다.
작업실에서 캔버스를 마주하다 보면 늘 ‘흐름’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곤 한다. 물감이 번지고, 붓이 그리는 궤적이 서로 얽히며 하나의 장면을 완성하는 것처럼 사람들의 삶도 여러 결들이 만나 큰 흐름을 만들어낸다. 한강버스가 강 위를 오가는 풍경은 마치 새로운 붓질처럼 보인다. 이전에는 없던 선이 한강 위에 그려지고, 그 선을 따라 사람들의 시간이 이어진다.
특히 사각사각플레이스 주변 선착장은 나에게 특별하다. 작품을 구상하다 답답할 때면 한강 산책로를 걸으며 마음을 환기하곤 했는데, 이제는 그 길 위에 또 다른 움직임이 생겼다. 출퇴근길 시민들, 강변을 찾은 관광객들, 혹은 잠시 풍경을 즐기려는 이들이 강을 가로지르며 서로 스쳐 지나간다. 같은 강을 바라보지만, 각자가 품은 이야기와 목적은 모두 다르다. 이 다채로운 만남은 예술가에게 더없이 소중한 영감의 원천이 된다.
서울은 늘 빠르게 달리는 도시다. 빽빽한 도로 위, 꽉 찬 지하철 속에서 사람들은 속도를 따라잡느라 숨 가쁘다. 그와 달리 강 위를 달리는 한강버스는 느린 듯하면서도 확실하게 목적지에 도착한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은 끊임없이 바뀌지만, 그 안에서 우리는 잠시 멈춰 숨을 고를 수 있다.
예술이란 결국 일상의 속도를 비틀어 다른 감각을 열어 주는 일인데, 한강버스가 시민들에게 선사하는 경험 또한 예술적이다. 앞으로 나는 작업실 근처 선착장을 통해 자주 한강버스를 타 보려 한다. 그림을 그리고 난 뒤 강 위를 달리며 작품 구상을 정리하거나, 새로운 프로젝트의 단서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도시와 자연, 속도와 여유, 일상과 예술이 교차하는 이 경험은 분명 나의 작업에도 새로운 색을 불어넣을 것이다.
한강버스는 단순한 교통수단을 넘어 서울이 품고 있는 가능성의 또 다른 상징이다. 도시를 나누던 경계가 길이 되고, 풍경이 통로가 된다. 강 위를 오가는 이 배들이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실어 나를지, 예술가로서 그리고 서울시민으로서 기대가 크다. 사각사각플레이스에서 시작되는 나의 하루가 이제는 한강버스와 함께 더 멀리, 더 깊이 흘러가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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