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되면 산길과 습지는 붉은 단풍과 노란 낙엽으로 물든다. 낮은 햇살이 비추는 숲길 위에서 갑자기 가느다란 검은 선이 스르르 움직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순간적으로 등골이 서늘해지지만, 자세히 보면 크기는 40~60cm에 불과하다. 사람 키에 비하면 손목 길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 작은 뱀이다.
이 뱀의 이름은 바로 한국에서 드물게 서식하는 비바리뱀이다. 다른 뱀처럼 위협적이지 않고, 사람을 피해 조용히 사라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을철 따뜻한 햇볕 아래 몸을 드러내는 이유는 겨울잠을 앞두고 체온을 조절하기 위해서다. 우연히 마주치더라도 겁낼 필요가 없다.
제주에서 처음 발견된 희귀 기록
비바리뱀은 아열대와 온대의 습지, 낮은 산지, 물가에서 주로 살아가는 소형 뱀이다. 중국 남부와 대만, 동남아 지역에 널리 분포하는 종으로 알려져 있지만, 한국에서는 오랫동안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다 1981년 제주 한라산 성판악 사라오름 부근에서 처음 확인됐을 때 학계는 크게 주목했다. 연구자들은 이 기록이 제주라는 지역적 특수성과 맞물려 특별한 생태학적 의미를 지닌다고 평가했다.
발견 당시에는 제주 고유의 특이한 사례로 여겨졌지만, 이후 한동안 추가 보고가 없어 학계에서도 “제주에서만 제한적으로 서식하는 희귀 종”으로 인식됐다. 그러나 2016년 국립환경과학원의 ‘제2차 습지보호지역 정밀 조사’에서 경남 창녕 우포늪에서도 서식이 확인됐다.
이는 비바리뱀이 단순히 제주에 국한된 종이 아니라, 한국 내 습지 생태계와도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중요한 발견이었다. 국내 서식지가 극히 제한적이라 관찰 자체가 드물지만, 제주와 내륙을 아우르는 기록은 한국 생태계의 다양성을 증명하는 상징적인 사례로 꼽힌다.
이름의 유래와 외형적 특징
비바리뱀은 전체적으로 작은 몸집에 둥근 머리를 가지고 있다. 머리는 검은빛을 띠고 있으며, 머리 뒤쪽에서 꼬리까지 이어지는 선명한 댕기 무늬가 특징이다. 햇빛을 받으면 무늬가 더욱 또렷해져 다른 뱀과 쉽게 구별된다. 이 모습은 이름의 유래와도 연결된다. 제주 방언에서 ‘비바리’는 처녀를 뜻한다. 처음 발견된 당시 작고 연약한 모습이 처녀와 같다고 여겨져 ‘비바리뱀’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름만큼 친근하게 들리지만, 실제로는 개체 수가 적어 학술적 가치가 크다. 먹이는 곤충과 작은 양서류로, 습윤한 환경에서 먹이를 찾는 경우가 많다. 가을철 활동량이 늘어나면서 사람 눈에 띄는 경우가 생기지만, 대개는 기척을 느끼면 곧 숲속으로 사라진다.
멸종위기 야생생물 I급 지정
비바리뱀은 국내에서 매우 희귀한 종으로, 2012년 5월 31일 멸종위기 야생생물 I급으로 지정됐다. 이는 가장 높은 보호 등급으로, 포획이나 서식지 훼손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다. 개체 수가 적고 서식지가 좁아 학술적 가치가 크며, 추가 연구도 필요한 상황이다.
독성이 없어 사람을 위협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뱀이라는 이유로 피해를 보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가을 산행이나 습지 탐방에서 비바리뱀을 만난다면 건드리거나 잡지 않고 지켜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작은 몸집에도 불구하고 한국 자연의 희귀성을 보여주는 상징적 존재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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