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노규민 기자] "엄마가 된 2년 동안 다른 세상에 살았습니다. '하루'의 행복을 '육아' 하면서 처음 느꼈죠. 어쩌면 제일 고통스럽다고 생각했던 '연기'가 제일 쉬웠던 일이 돼 버렸어요. 엄마들은 정말 대단합니다."
박찬욱 감독 신작 영화 '어쩔수가없다'로 7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서 '밥 잘 해주는 예쁜 엄마'로 돌아온 손예진이 이렇게 말했다.
지난 23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손예진을 만났다. '어쩔수가없다' 에피소드 외에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날 손예진은 그 어느 때보다 에너지가 넘쳤다. "현장이 이렇게 즐겁다는 걸 몸소 느낀다"며 마치 절친과 수다 떨 듯 신나게 인터뷰에 임했고, 시종 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는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존재(아들)를 만났고, 지난 2년 동안 아이를 위해 에너지 200%를 쏟았다"라며 "육아가 정말 힘든 일임을 느꼈다. 신경 쓸 일이 한두 개가 아니고, 매일 다크서클이 내려와 있었다. 그러니 복귀해서 얼마나 리프레시가 됐겠나. 현장 나가는 차에만 올라타고 행복했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영화 '어쩔수가없다'는 '다 이뤘다'고 느낄 만큼 삶이 만족스러웠던 회사원 만수(이병헌)가 덜컥 해고된 후, 아내 미리(손예진)와 두 자식을 지키기 위해, 어렵게 장만한 집을 지켜내기 위해, 재취업을 향한 자신만의 전쟁을 준비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극 중 손예진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도 굳건하게 가족의 중심을 지키는 아내 '미리' 역으로 열연했다. 손예진은 "처음 '어쩔수가없다' 대본을 받았을 때 분량을 떠나서 캐릭터가 가진 임팩트가 모호했다. '이것을 꼭 해야 할까'와 '잘 할 수 있을까'를 먼저 고민했다. 분량 이야기를 해서 죄송하지만, 제가 표현할 것이 별로 없겠다 싶을 정도의 캐릭터였다. 그런데도 박찬욱 감독님이랑 꼭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밝혔다.
이어 손예진은 "박 감독님을 만나 '한다 안 한다'를 직접 이야기하지 않았다. 당시 감독님은 제가 안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하신 것 같더라"라고 떠올렸다. 그러면서 손예진은 "제가 출연해야 하는 명분을 만들어 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라며 "나중에 '이 캐릭터를 연기 해야만 했다'는 이야기 듣고 싶은, 배우로서 욕심이 생기더라"라고 했다.
또 손예진은 "감독님이 입바른 소리를 못 하는 스타일이다. 처음부터 '조연'이고, '만수'(이병헌)가 이끌어가는 이야기라고 말씀하시더라. 어쨌든 '왜 했어?'라는 이야기만 듣지 않게 해달라고 강조 했다"라며 "이후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애쓰셨다. '미리'에게 없던 과거도 만들고, 흐름 속에서 흘러가는 인물로 바꾸셨다"고 덧붙였다.
박찬욱 감독과의 첫 호흡이 그 어느 때보다 힘들면서도 행복했다고 전했다. 손예진은 "역시 집요하시다. 허투루 하는 것이 1도 없다. 생각하지 못한 포인트에서 디렉팅을 주신다"라며 "첫 촬영, 첫 대사부터 멘붕이 왔다. '당신 좋아하나 봐. 비싼 장어를 다 보내고'라는 대사만 수차례 했다. 저는 '장어'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장어'를 강조하지 말라고 하시더라. 사람이 기존에 써 왔던 말투가 있지 않나. 순간적으로 바꾸기가 쉽지 않았다. 더군다나 몇 년 만에 촬영하니 더 긴장됐고, 더운 데다가 식은땀까지 줄줄 흐르더라. 첫 촬영을 하면서 '감독님이 앞으로도 이렇게 디렉팅 하면 난 죽었다'고 생각했다"고 떠올렸다.
이어 손예진은 "그러나 겪어보니 또 다른 재미가 있었다. 제가 해석한 걸 감독님이 받아줬을 땐 정말 행복했다. 마치 숙제 검사받은 느낌이었다"라며 "저뿐만이 아니라 모든 배우가 다 똑같았다. 감독님이 디테일하게 디렉팅 하면 이병헌 선배가 요리조리 다 바꿨고, 늘 그런 모습을 지켜봤다"고 했다.
계속해서 '어쩔수가없다'의 명장면 중 하나인 '고추잠자리' 신에 관해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극 중 '만수'와 '범모'(이성민), '아라'(염혜란)가 뒤엉키고, 조용필의 '고추잠자리' 음악이 울려 퍼지는 장면이다.
손예진은 "대본에는 '음악 소리가 너무 커서 대사가 잘 들리지 않는다'는 지문이 나온 정도였다. 극적인 상황에서 어떻게 찍힐지 너무 궁금했다"라며 "그 장면을 보면서 진짜 크게 웃었다. 특히 이성민 선배 대사가 너무 웃기다. 어제 영화를 4번째 봤는데 안 웃었던 장면에서 웃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성민, 염혜란, 그리고 박희순 선배까지, 그들의 연기를 보면서 '역시다'라고 생각했다. 기대를 뛰어넘더라"며 감탄했다.
손예진은 2022년 동갑내기 배우 현빈과 결혼해 같은 해 11월 아들을 출산했다. 이에 실제로 엄마가 된 손예진은 '어쩔수가없다'에서 자신이 연기한 '미리'에 깊이 공감했다. 인터뷰 내내 "엄마가 돼 봐서 알겠더라"는 표현을 여러 차례 했다.
그러면서 '미리' 캐릭터에 남다른 애정을 드러냈다. 손예진은 "어느 날 우연히 SNS를 봤다. 실제 가장이 아내한테 '실직했어'라고 털어놓더라. 그랬더니 와이프가 '말 못 해서 힘들었겠네'라고 툭 던지는데 너무 눈물이 났다"라며 "저의 영화에서 그 대사가 나오지 않나. 사실 원래 대사가 아니었는데 SNS를 본 이후 감독님께 말씀드려서 바뀐 거다. 그 대사를 특히 남자분들이 좋아하시더라"라고 말했다.
이어 "보통 엄마들은 겉으로 괜찮은 척하지만 '어떡하지'라며 공과금부터 걱정하지 않나. '말 못 해서 힘들었겠네'라는 대사가 정말 '마음을 울리더라. '미리'는 그런 사람이다. 긍정적이고 밝은 사람이다. 또 식탁에서 모두를 앉혀 놓고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을 전하는 것처럼 합리적이다. 그런 '미리'가 부럽기도 했다. 저는 그런 성격이 아니다. 쿨하지 못하고, 늘 계획대로 이루어져야 마음이 편해진다. 계획되지 않은 상태에서 유연하고, 타격감을 덜 받는 '미리'를 보면서 대리만족했다"고 전했다.
앞서 지난 22일 '어쩔수가없다' VIP 시사회가 열렸다. 손예진 남편인 배우 현빈, 이병헌 아내 이민정 등이 영화를 봤다. 손예진은 '현빈이 영화를 보고 칭찬을 해줬냐'는 질문에 "우리 사이에 칭찬 따윈 없다. 수고했다 정도만 말 해줬다. 굉장히 쿨한 사이다"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또 "시사회에 와준 손님들과 대화 하느라 현빈 씨와 깊이 있는 이야기를 못 나눴다"라며 "오늘 '뭐가 좋았는지, 뭐가 아쉬웠는지 이야기해 볼 것"이라고 말했다.
손예진-현빈 부부와 이병헌-이민정 부부는 평소 절친 사이다. 손예진은 "이민정과도 따로 이야기를 안 해봤다"고 했다. 그러면서 "배우 임시완이 현빈 씨에게 '이병헌과 부부 연기 하는 걸 보고 어땠냐'고 묻더라. 연기는 연기뿐, 그렇다고 저와 이병헌 선배가 진한 부부 연기를 한 것도 아니지 않나. 이민정 반응을 들으면 제 인스타에 쓰겠다"고 웃으며 말했다.
'엄마'가 된 이후의 변화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그는 "'엄마가 돼 깊어졌다' '아픈 만큼 성숙해졌다' 라고 스스로 말하긴 어렵다. 보는 분들이 느껴져야 한다. 다만 시야가 달라지긴 했다"고 했다.
손예진은 "그동안 프로의 세계에서 '나를 갉아먹더라도 다 던져서라도 해야 한다'며 연기에 임했다. 배우로서 책임감이 커서 그랬지만 스스로 힘들게 하는 일이었다. 아이가 생긴 이후에는 심적으로 '여유'가 생겼다고 해야 할까"라고 말했다.
이어 "'하루'의 행복을 육아하면서 처음 느꼈다. 아침에 일어나서 밤에 잠들 때까지 육아로 시작해서 육아로 끝났다. 하루하루가 미션이더라. 아이가 밥을 잘 먹는지, 화장실엔 잘 가는지, 열은 안 나는지, 하루를 무사히 넘기는 게 행복하다는 걸 알게 됐다. 그러면서 일에 대한 소중함이 커지더라. '나를 들들 볶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자신을 한 번 더 내려놨는데, 그런 것들이 아마 연기적으로도 묻어나오지 않을까 싶다"며 웃었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서 어느덧 '밥 잘 해주는 예쁜 엄마'가 됐다. 손예진은 세월이 흘러 '어쩔 수 없이' 연기할 수 있는 캐릭터에 한계가 올 수 있는 것에 '고민'이 있다고 인정했다.
손예진은 "배우들은 멜로에 대한 로망이 있다. 저 또한 끊임없이 멜로를 하고 싶다. 하지만 과연 제게 좋은 멜로가 들어올까 하는 걱정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희애 선배처럼 '밀회' 같은 멜로도 할 수 있고 '사랑의 불시착' 같은 멜로를 또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클래식' 같은 영화에서 나이 많은 역할을 할 수도 있지 않나. 그때그때 나이에 맞는 멜로를 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했다.
손예진은 "'밀도'가 다를 것이라고 본다. 과거 '비밀은 없다'나 '연애시대' 같은 작품을 할 때는 상상 속에서 연기를 만들어 냈다"라며 "이제 그런 작품을 한다면 조금 더 밀도 있게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손예진은 "극장 영화는 '추억'이다. 요즘 극장을 많이 안 찾아 주시는 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이다"라며 "극장 불이 꺼졌을 때 오롯이 영화에 집중하는 그 행복한 시간을 만끽하셨으면 좋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뉴스컬처 노규민 presskm@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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