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로] 대통령의 배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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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로] 대통령의 배우자

연합뉴스 2025-09-25 07:25: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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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출되지 않은 私人, 권력으로 인식돼선 안 돼

사각지대 두면 불행 반복…행사 동반 역할 넘는 건 과유불급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선임기자 = 전임 대통령 배우자를 둘러싼 소식으로 연일 세상이 떠들썩하다. 파면된 윤석열 전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가 역대 영부인 중 처음 법정 구속된 채 재판을 받고 있어서다. 그는 여러 비리 혐의를 소명해야 하는 처지다. 남편의 재임 시절엔 'V0'이란 신조어가 생길 만큼 논란의 중심에 서 있기도 했다.

V0이란 말이 세간에 나돌던 시절에 의미를 물어보니 대통령을 지칭하는 은어 'V'보다 상위에 있는 존재라는 답을 들었다. 'V'는 'VIP'(요인)를 줄여 내부에서 쓰는 은어인데, 과거 영부인을 가리켜 'V2'란 말을 쓴 적은 있었으나 V0이라니. '설마 그럴 리가' 했고, 지금도 사실이 아니길 바란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재판이 어떻게 결론 날지 예단하고 특정인을 단죄해선 안 된다. 그러나 적어도 김 여사가 주변의 계속된 경고음에도 여러 문제 소지를 끊임없이 만들어낸 건 부인하기 어렵다.

자살예방 활동차 마포대교 순찰하던 김건희 여사 자살예방 활동차 마포대교 순찰하던 김건희 여사

윤석열 전 대통령 재임 시절인 2024년 9월 10일 김건희 여사가 '세계 자살 예방의 날'을 맞아 서울 마포대교에서 경찰과 함께 마포대교를 순찰하던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대통령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역대 대통령 배우자가 문제가 된 게 처음은 아니다. 진영을 막론하고 여러 대통령 배우자가 각종 비자금, 게이트, 뇌물 수수 의혹 등에 휘말려 수사나 내사를 받았다. 그렇다면 분명히 대통령 배우자란 지위에 구조적 허점이 있다고 보고 근본적 해법을 마련하는 게 옳다. 때마다 반복되는 문제를 놔두고 방치하는 건 불행 재발을 알면서 기다리는 격이다. 이건 당사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국격 문제다.

사실 오랫동안 이 문제를 풀 해법들이 제시됐으나 시각차 속에 논란만 이어져 왔다. 우리나라는 대통령 배우자의 공식 지위와 법적 책임을 규정할 제도가 없으니 법규 제정으로 이를 명확히 하자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선출된 권력이 아닌 일반인에게 법적 지위를 부여하는 것 자체가 법 정신과 원리에 어긋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비슷한 맥락에서 대통령 배우자를 관리할 대통령실 제2부속실 필요성 여부를 놓고도 찬반이 있었다.

복잡할수록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문제를 단순화하고 가장 중요한 대원칙을 우선하면 합의점을 찾을 수 있다. 대원칙은 민주정에서 국가 원수 배우자는 선출된 권력이 아니므로 법적 권한이 전무한 일반인이라는 것이다. 사적 혼인 관계에 따른 배우자일 뿐 왕비도, 대공도 아니다. 대통령 가족으로서 예우, 의전, 경호를 받을 법적 근거만 있을 뿐, 이는 주어진 권력이 아니다. 그렇다면 민주 정부는 그가 혹시 대통령의 권한을 업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는지 감시하고 견제하는 임무만 수행하면 된다.

역대 영부인이 업무용으로 썼던 청와대 무궁화실 역대 영부인이 업무용으로 썼던 청와대 무궁화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배포 DB 금지]

이렇게 하면 문제가 쉬워진다. 대통령 배우자는 꼭 필요한 공식 의전 활동 외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아무 일도 안 해야 한다. 사실 원래도 이렇게 규정돼 있는데 불필요한 일정을 만들거나 안 만나도 될 사람을 만나 탈 나는 사례를 수없이 봐왔다. 안 해야 하거나 안 해도 될 일들을 없애면 대부분 문제가 해결된다. 국민의 소중한 혈세가 불요하게 쓰이는 것도 줄일 수 있다. 대통령 배우자가 해야 할 외부 활동은 국제외교 무대와 국가 행사 등에 동반하는 것뿐이다. 특히 정상외교는 서구 문화와 관례에 따라 배우자 동반이 필수이고, 배우자끼리 모이는 일정이 별도로 마련되기도 하니 배우자 역할이 사실상 유일하게 중요하다.

대통령 배우자의 노출 빈도를 줄이고 별도 일정을 없애면 굳이 대통령실 내에 별도 전담 기구를 운용할 필요도 사라진다. 배우자 의전, 경호, 관리 등은 각각 원래 역할을 맡은 기구에서 충분히 소화할 수 있다. 다만 배우자가 비선에서 국정에 영향력을 미칠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남는다. 특히 가장 관심 있고 민감한 '인사' 문제에 개입할 여지를 차단할 방안이 필요하다. 대통령도 인간이다. 권력자는 외롭다. 따라서 가장 가까이 생활하는 배우자 말에 영향을 아예 안 받긴 어려울 듯하다. 그러니 더욱 제도적으로 대통령 가족의 인사 개입을 최소화할 방안 하나만큼은 구축돼 있어야 한다.

지금 당장 이런 변화를 만들자는 건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차기 정권부터라도 배우자 지위와 역할을 제한할 원칙이 분명히 서도록 미리 준비해야 한다. 요약하자면 최우선 원칙은 대통령 배우자를 담당하는 정부 기구는 배우자가 공적 업무에 관여하는 걸 지원하는 기능보다 최대한 그런 일에서 멀어지도록 관리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것이다. 국내외 의전행사 동반자 역할 외에는 배우자 별도 일정을 만들지 않고, 배우자가 국정에 개입할 여지를 차단해야 한다. 이러면 별도 관리 기구도 불필요해진다. 임기 내 배우자의 동향과 접촉 인사 등을 관리하는 역할은 민정수석실 등에서 맡을 수 있다.

청와대 내부에 걸린 역대 영부인 사진 청와대 내부에 걸린 역대 영부인 사진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배포 DB 금지]

lesli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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