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젠지 세대에게 있어 흡연은 또래 문화로 자리잡았다. 지난 1일(현지시간) 영국 옥스퍼드 처웰 고등학교에서 만난 3학년 학생들은 베이핑이 또래끼리 즐기는 규범처럼 자리잡았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흡연이 나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담배 냄새가 덜하고 부모에게 발각되지 않는 용이성 등의 이유로 베이핑을 ‘덜 나쁜 선택’으로 정당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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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연은 고등학교와 대학을 가리지 않고 흔하다. 다만 연초가 아닌 전자담배가 ‘대세’로 자리잡았다. 옥스포드 소재 대학서 법학을 공부하고 있는 플로라(19세)는 “가끔 사용해봤지만 정기적으로 하지는 않는다”면서 “청년층 사이에서 전자담배가 담배보다 더 흔하다”고 설명했다. 헝가리 이민 2세인 플로라는 “헝가리 가족들은 아직 전통적인 흡연이 더 많은데, 영국은 전자담배가 화려하고 다양한 맛(과일·사탕류)으로 젊은 층을 겨냥해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고 전했다.
이러한 전자담배는 흡연과 마약 중독 문제를 일으키는 주된 원인이다. 이들은 베이핑으로만 끝나지 않고 좀 더 자극적인 기호품을 찾게 된다. 영국 런던 대학서 유전학을 공부하고 있는 이민 2세 은주(23세)는 “전자담배도 엄청나게 심각하고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어린 학생들도 쉽게 접근한다”면서 “담배·전자담배·위드(마리화나) 모두 다 구하려면 쉽게 구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영국 정부는 최근 일회용 전자담배 판매를 금지했지만, 청소년·청년 흡연율 감소에 영향을 주진 못했다는 비판이 현지에서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전통적으로 영국이 흡연에 관대한 문화가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폴 유 런던 대학 데이터분석학과 교수는 “영국은 개인 자유를 중시해 국가적 규제에 소극적”이라며 “오히려 영구 NHS(국민의료보험)는 연초 담배보다 베이핑을 권장한다”고 전했다.
영국의 젠지 세대는 스트레스와 외로움으로 인해 흡연과 마리화나에 더욱 빠져들고 있다. 영국 케임브릿지 대학서 약학을 공부하고 있는 피터 브래들리(20세)는 “흡연은 아주 흔하다. 고등학교 때도 그렇고 대학교에서는 더 자주 보였는데, 대학교에서는 특히 마리화나가 흔하다”면서 “학업 스트레스와 외로움 때문에 (흡연과 마리화나)에 중독된다”고 했다. 현지 언론에서는 자기 계발에 몰두할수록 흡연과 마리화나에 노출되는 경향이 강하다고 보도한다.
◇‘소통하지만 고립되는’ SNS 중독…4명 중 한 명 정신질환 앓아
SNS 중독 또한 영국 청년들이 겪는 문제 중 하나다. 영국 가디언지는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SNS 추천 알고리즘과 끝없는 스크롤로 주의를 붙잡는 설계가 과의존을 유도(도파민 루프)한다고 비판하면서 SNS에 중독된 영국 10대 청소년은 자살 행동 위험이 약 2배 높게 나타났다고 보도한 바 있다.
처윌 고등학교 학생들은 인스타그램(릴스)와 유튜브(쇼츠) 중독성과 시간 잠식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인플루언서의 극단적인 발언을 어른이면 걸러 듣지만 청소년은 취약하다”고 우려했다. 이를 막기 위해 영국은 지난달부터 ‘어린이·청소년이 SNS 도파민 루프에 걸려든다’는 경고와 함께 ‘온라인 안전법(Online Safety Act)’의 아동 보호 규정(연령확인·유해콘텐츠 차단 등)을 본격적으로 시행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한국에서 영어선생으로 근무 중인 브로인(25세)은 “영국 정부의 단순한 ‘시간 제한’ 같은 규제는 효과가 제한적”이라며 “인터넷은 생활 전반에 퍼져 있어 단순 차단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하며 ‘무조건 금지’보다는 이유와 한계를 알려주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SNS는 도시뿐만 아니라 지방 청년에게도 상대적 박탈감과 고립감을 심어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은주는 “SNS로만 정보를 습득하다 보니 가치관이 부정적으로 변하거나 상대적 빈곤감을 느낄 수 있다”면서 “지역에서 남아 있는 것 자체를 싫어하거나 고립돼 있다고 느끼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다만 지역에 남아 있는 청년들이 SNS와 경제적인 영향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되면 생각보다 만족감을 느끼고 있다는 반론도 제기됐다. 폴 유 교수는 “돈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다면 지방 청년들이 소외감을 느낄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대부분 만족하며 지내기도 한다”면서 “대부분 지방 소재 학교에서 런던만이 사람 사는 도시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특히 SNS 중독은 영국 청년 건강을 좀먹는 요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과거라면 따돌림당하는 청소년도 현실에서 친구를 찾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온라인에서만 소통하고 인터넷에서 유입되는 극단적 메시지에 더 쉽게 휩쓸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미 영국 청년들의 정신 건강은 심각한 수준이다. 지난해 NHS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16~24세 청년 4명 중 한 명이 우울증 등 정신건강 질환을 앓고 있다고 조사됐다. 2014년 약 18.9%에서 2024년 25.8%로 10년간 약 6.9%포인트 증가했다. NHS 진료·치료 대기지연이 심해 많은 어린이·청소년이 적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상태며 일부는 NHS를 건너뛰고 영리의료서비스를 이용, 상담비로만 수십만원을 내기도 한다.
대학 내에선 무료 상담 프로그램 등이 있어 접근성이 좋지만, 이마저도 불충분하거나 약값이 부족해 치료가 중단되는 사례도 있다. 실제로 영국 내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하고 있는 아론(20세) 친구 중 일부는 매주 복용해야 하는 약을 계속 먹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는 “내 친구들 중 정신 질환이 없는 사람은 거의 없어 보인다”면서 “학교에서 상담을 무료로 제공하지만 약값은 본인이 내야 하는데 한 주에 10파운드(약 1만 8770원)을 내야한다”고 말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통역 도움=고현실 옥스퍼드 한국인 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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