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부터 화려한 ‘빅토리아 시대’. 빅토리아 여왕의 긴 통치 아래 산업혁명과 경제 발전이 맞물리며 영국은 그야말로 제국의 황금기를 누렸다. 사회 전반이 변화하며 부흥한 시대였기에, 사람들의 옷차림 역시 그에 맞게 달라졌다. 패션이 단순히 멋을 내는 차원을 넘어 품격과 신분을 보여주는 수단으로 발전한 것. 자연스럽게 빅토리아 시대의 의복은 과장된 모습으로 진화했다. 우선 당대 여성들은 허리를 꽉 조이고 풍성한 벨 라인의 드레스 자락을 휘날리며 다녔다. 그 밖에도 옷차림에는 장식적인 요소가 한가득이었다. 벨벳과 실크, 새틴 등 고급스럽고 우아한 드레스에는 러플과 레이스가 섬세하게 장식됐다. 머리 위에는 화려한 모자와 깃털 장식을 더해 한층 웅장한 분위기를 자아냈고, 장갑을 낀 손에는 부채가 빠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빅토리아 시대 여성들의 스타일을 완성한 건 레이어드였다. 여러 겹의 속치마와 페티코트, 크리놀린, 코르셋 위에 드레스를 겹겹이 입어 풍성하고 극적인 실루엣을 만들었다. 거리마다 차려입은 여성들의 모습은 하나의 행렬처럼 화려함을 뽐냈다. 절정에 치솟았던 빅토리아적 아름다움은 예술가와 디자이너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오늘날까지 우리 곁에 맴돌고 있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담은 빅토리언 스타일을 우리는 영화 속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데, 지난해 개봉한 영화 〈가여운 것들 Poor Things〉에서는 배우 엠마 스톤이 퍼프 슬리브와 하이넥 블라우스, 부풀린 시폰 드레스 등 빅토리아 무드 특유의 장식적 요소를 과감하게 표현한 룩을 입고 등장했으며, 이는 패션 신에서도 크게 회자됐다. 또 넷플릭스 인기 시리즈 〈브리저튼 Brigerton〉에서는 고전적이고 사랑스러운 분위기가 강조됐는데, 이는 ‘레전시코어(Regencycore)’라는 새로운 패션 키워드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그리고 이번 시즌, 빅토리아 무드가 또 한 번 패션 신을 장악했다. 가장 먼저 디올 컬렉션에서 빅토리아 시대의 영향을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코르셋과 레이스, 러플을 컬렉션 곳곳에 활용하고, 크림과 블랙 컬러를 메인으로 활용해 아름답고 고전적인 분위기를 완성했다. 여기에 티셔츠와 가죽 스커트 같은 아이템을 매치해 현대 감각을 주입한 것도 특징이다. 한편, 무게감 있는 빅토리아풍의 패션을 고스란히 담아낸 맥퀸 컬렉션에서는 션 맥기르의 재능을 다시 한 번 엿볼 수 있었다. 드라마틱한 하이넥 칼라를 중심으로 부풀린 실루엣과 레이어드, 고딕 자수 디테일까지 담아낸 컬렉션은 빅토리아 코드를 완벽히 구현하며 화려하고 근엄한 시대의 아우라를 고스란히 펼쳐냈다.
샤넬 역시 레이스 라운드 칼라를 컬렉션에 적용해 클래식한 트위드 룩에 빅토리아 무드를 더했다. 그런가 하면 앞에서 언급한 ‘레전시코어’가 강하게 떠오른 하우스도 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셰미나 카말리의 합류로 주목받는 끌로에. 하늘하늘한 레이스와 시폰, 실크 소재를 활용한 몽환적인 롱 드레스를 대거 선보였다. 발렌티노 쇼에서도 알레산드로 미켈레 특유의 로맨티시즘과 화려함 속에 빅토리아 코드가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그 밖에 페티코트 드레스에 과감한 로 라이즈를 적용한 생 로랑, 매혹적인 레드 컬러 벨벳 드레스를 선보인 버버리, 승마 코드를 더한 코트 세트업을 보여준 랄프 로렌, 최근 풍선처럼 부풀린 실루엣을 즐기는 마크 제이콥스까지. 빅토리아 시대의 화려함은 디자이너들의 각기 다른 해석을 통해 이번 시즌 트렌드로 자리매김했다. 찬바람과 함께 빅토리아 시대의 낭만이 돌아왔다. 현대적인 해석을 보여준 이번 시즌 디자이너들의 아이디어를 참고해, 스타일링에 빅토리아 무드를 한 스푼 넣어보는 건 어떨는지. 조금의 도전 정신만 있으면 충분히 가능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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