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는 미성년의 자녀를 부양할 의무가 있음은 누구나 알고 있다. 법도 같은 취지로 규정한다. 즉, 민법 제913조는 친권자는 자(子)를 보호하고 교양할 의무가 있다고 규정하고, 제974조는 직계혈족은 서로 부양의 의무가 있다고 규정한다.
이러한 규정은 윤리적 선언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만일 부모가 자녀를 제대로 양육하지 않았다면 그 자녀는 부모를 상대로 양육비를 청구할 수 있다. 혼외자(법률상 혼인 관계가 없는 남녀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의 부모도 그 혼외자를 부양할 의무가 있음은 물론이다.
여기 남녀가 있고 둘 사이에서 혼외자(X)가 출생했다고 하자. 어떤 사정이 있어 생모는 생부에 대해 양육비 청구를 포기한다는 의사를 표시한 후 혼자 힘으로 어렵게 X를 양육했다. 빈곤한 유년 시절을 보내고 성인이 된 X는 생부를 상대로 과거 부양료의 지급을 청구했다. 이 사건에서 생모가 이미 생부에 대해 양육비를 포기한다는 의사를 표시했던 사실에 어떠한 법적 효력을 부여할 수 있는가. 위 사례와 유사한 사건을 심리한 대법원(2025년 9월11일 선고 2023므11758 판결)은 최근 다음과 같은 취지로 판단했다.
부모는 자녀를 공동으로 양육할 책임이 있으며 양육에 드는 비용도 원칙적으로 부모가 공동으로 부담한다. 자녀 양육의 의무는 부모 중 누가 친권을 행사하는 자인지 또 누가 양육권자이고 현실로 양육하고 있는 자인지를 물을 것 없이, 친자 관계의 본질로부터 발생하는 의무로서 자녀의 출생과 동시에 발생한다.
이혼한 부부나 혼인외 출생자의 생모, 생부 사이에서 미성년 자녀에 대한 양육비의 지급을 구할 권리는 당사자의 협의나 가정법원의 심판으로 구체적인 내용과 범위가 정해지기 전에는 추상적인 청구권일 뿐이다. 또한 당사자의 협의나 가정법원의 심판에 의해 청구권의 내용과 범위가 구체적으로 확정됐어도 그 이행기가 도래하기 전의 양육비 채권은 친족법상의 신분으로부터 독립해 처분이 가능한 완전한 재산권으로 볼 수도 없다.
따라서 당사자의 협의나 가정법원의 심판에 의해 청구권의 내용과 범위가 확정되기 전에 미리 장래의 양육비 채권을 포기하기로 하는 약정을 한 경우에도 자녀의 복리에 반해 그 포기의 효력이 자녀에게 미친다고 볼 수 없음이 원칙이다. 요컨대 설령 생모가 과거 생부에 대해 양육비 채권을 포기한다는 의사를 표시한 경우에도 그 포기의 효력은 자녀에게 미치지 않으므로, 결국 자녀(X)는 생부를 상대로 과거 부양료의 지급을 청구할 수 있다는 것이 대법원이 내린 답변이다.
남녀 사이의 사랑은 쾌락만을 추구할 수 없고 사랑의 결실이 맺어질 경우 부양의 의무가 발생하는 것이며, 이는 법률상 혼인 관계의 유무를 묻지 않는다. 부양의 의무는 도덕과 윤리의 영역을 넘어 법적 의무에 해당하므로, 부모는 그 책임을 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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