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와 협상서 실익·다자주의 체제 수호 이미지 동시에 챙기려는 행보
美 주도 WTO 개혁 드라이브 속도날까…印·사우디 등에도 포기 압박 가능성
(서울=연합뉴스) 권숙희 기자 =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서 개발도상국에 부여되는 특별대우 혜택을 새로 요구하지 않겠다고 밝힌 것은 미국과의 무역협상을 염두에 둔 포석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또 중국이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라는 미국의 요구에 6년 만에 부응한 것처럼 일단은 보이지만 개도국 지위 자체는 유지할 것이라고 선을 그은 만큼 미국이 주장하는 WTO 개혁 드라이브에 실제로 얼마나 속도가 붙을지는 미지수다.
24일 블룸버그통신은 중국이 개도국이 받는 무역 혜택을 앞으로 포기하겠다고 선언한 데 대해 "WTO 개혁 합의에서 미중 간 쟁점이 됐던 걸림돌을 하나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스스로를 개발도상국이라고 규정한 중국의 지위 문제가 WTO 개혁 협상을 지연시켜온 쟁점 중 하나였다고 블룸버그는 덧붙였다.
WTO 규정상 각국은 다양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개도국 지위를 스스로 부여할 수 있다.
개도국 특혜란 보조금과 관세 등에서 협정마다 유예, 완화, 예외 등을 적용받는 것으로 관련 조항은 150여개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 2위 경제대국임에도 중국은 그간 스스로를 세계에서 가장 큰 개도국이라고 칭해왔다.
미국은 중국과 같은 국가가 개도국 혜택을 누리는 것이 WTO 개혁의 장애물이며 의미 있는 개혁을 위해서는 중국이 개도국 지위를 포기해야 한다고 요구해왔다.
이를 수용한 듯 중국은 이번에 개도국 특별대우 혜택을 새로이 요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중국은 책임감 있는 개발도상국임을 동시에 강조했다.
미국과의 이견을 줄여 협상에서의 실익을 놓치지 않으면서 다자주의 체제 수호를 외쳐온 대국으로서의 결단을 보여줘 국제적 이미지 또한 챙기려는 행보로 풀이된다.
다만 중국의 이번 발표가 실질적 효과를 불러오기에는 이미 늦은 감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아시아소사이어티정책연구소(ASPI)의 웬디 커틀러 부회장은 블룸버그통신에 "WTO의 협상 어젠다가 부재하고 개혁 속도가 느린 점을 감안하면 중국 측 발표는 환영할만하지만 실질적 효과를 낼 여지는 크지 않다"면서 "다만 중국이 다자무역체제 수호를 주장하는 데에는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국 측의 이번 결정으로 인도나 사우디아라비아와 같은 국가들에 대한 개도국 지위 포기 압박이 더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앞서 이날 리창 중국 국무원 총리는 미국 뉴욕에서 열린 세계개발구상(GDI) 고위급 회의에서 "현재와 미래의 모든 WTO 협상에서 더 이상 새로운 특별 및 차등 대우를 추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고 로이터통신과 중국 관영 신화통신 등이 보했다.
리 총리는 제80차 유엔 총회 참석을 위해 미국을 방문 중이며, 이번 발언은 이와 별도로 중국이 주재한 회의에서 나왔다.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 WTO 사무총장은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수년간 노고의 결실"이라며 "이 문제에 대한 중국의 리더십에 박수를 보낸다"고 게시했다.
이날 발표에 대해 리청강 중국 상무부 국제무역담판대표 겸 부부장(차관)은 공식 브리핑을 통해 중국의 개도국 지위와 정체성은 변하지 않았다면서 관련 국가들과 개혁을 함께 추진하겠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suk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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