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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혜영 작가의 단편 ‘이윽고 밤이 다시’의 주인공 장이수는 늦은 밤 한 통의 전화를 받고 밤을 지새운다. 정체불명의 전화에 장이수는 자신이 과거에 저지른 실수들을 하나씩 되새긴다. 다시 전화가 오진 않지만, 장이수의 평범했던 일상은 이미 산산조각이 났다.
많은 것을 곱씹게 하는 소설이다. 우리도 장이수처럼 과거의 실수를 잊고 평온한 일상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편 작가는 최근 이데일리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우리들의 실패와 불안은 과거라는 기나긴 터널에서 스스로를 매몰시키는 데서 기인하는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데뷔 후 처음 발표하는 ‘짧은소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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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 작가가 새 소설집 ‘어른의 미래’로 돌아왔다. ‘이윽고 밤이 다시’는 이번 소설집에 수록된 11편의 단편 중 하나다. 편 작가는 소설집 ‘아오이가든’, ‘저녁의 구애’, 장편소설 ‘홀’ 등을 통해 ‘한국형 서스펜스’로 주목받았다. ‘홀’은 한국 최초로 미국 문학상 셜리 잭슨상을 수상했으며, 김지운 감독이 영화화를 결정해 화제가 됐다.
이번 소설집엔 ‘짧은소설집’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기존 단편보다 조금 더 짧은, 그래서 더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소설들이 수록돼 있다. 편 작가가 2000년 데뷔 후 처음 발표하는 ‘짧은 소설집’이기도 하다. 그는 “그동안 청탁을 받아 발표해온 짧은 소설을 ‘보너스 트랙’처럼 묶은 소설집”이라며 “비교적 긴장감 넘치는 이야기들로, 초기 소설의 서늘하고 단호한 면모를 그리워하는 독자를 위한 특별편이다”고 소개했다.
편 작가의 작품들은 평온한 일상에 생겨난 균열과 이로 인해 인물들이 겪는 불안과 긴장을 주로 다룬다. 그의 작품을 수식하기 위해 ‘서스펜스’라는 단어가 따라다니는 이유다. 그는 “일상에서의 흔들림과 작은 붕괴를 두려워하는 모습으로부터 발생하는 긴장과 서스펜스가 서사의 구동력이 될 때가 많다”며 “뭔가를 잃을까 불안해하는 인물들의 긴장감을 지켜보는 일 만큼이나 그들의 삶에 남은 회한이나 고독감을 존중하고 있다. 서스펜스는 그러한 양가적인 감정을 지켜보기에 효과적인 장치”라고 설명했다.
그의 말처럼 이번 소설집에 수록된 단편들은 짧으면서도 서늘하다. 그 속에 담긴 한국 사회의 단면은 더욱 날카롭게 다가온다. 기초생활수급자 가정의 이야기가 넌지시 담겨 있는 ‘냉장고’, 임대 아파트 차별 문제를 꼬집는 ‘어른의 호의’ 등이 그러하다.
편 작가는 “소설 속 인물들에게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모습이 내재돼 있기 마련이다. 혐오와 차별, 계급과 불평등, 양극화 같은 문제들이 작품에서 드러나는 것도 그러한 맥락”이라며 “독자들이 때에 따라 인물의 선택을 지지하거나 혹은 반감을 갖는 것은 서로 다른 세대, 계층의 삶을 체험함으로써 공감하고 이해를 확장시키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냉소적인 시선만 담긴 것은 아니다. 후반부에 실린 ‘신발이 마를 동안’과 ‘아는 사람’은 불안과 긴장 속에서도 평온한 일상이 회복될 수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편 작가는 “인물에 대한 안쓰러움에 지고 말아 다소 결이 다른 작품이 됐다”며 “‘신발이 마를 동안’은 누군가를 맹렬히 미워하는 것으로 한 시기를 보낸 사람에게 남은 물기 같은 사랑에 대해, ‘아는 사람’은 낯 모르는 사람에게서 얻는 뜻밖의 온기에 대해 담고 싶었다”고 밝혔다.
◇내년엔 일곱 번째 소설집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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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소설집에는 표제작이 없다. 편 작가가 처음 생각했던 제목은 ‘누구라도 그러하듯이’였다. 11편의 단편소설 속 이야기가 우리 모두에게 언제든지 생길 수 있는 긴장과 불안을 다뤘다는 점에서다. 그러나 다소 평이한 제목으로 고민하던 중 편집자의 제안으로 ‘어른의 미래’를 소설집 제목으로 정했다.
편 작가는 “교정을 보는 동안 ‘이제는 지나간 일이었다’고 되뇌는 주인공들이 많다는 걸 깨달았다. 마치 그 순간이 지나면 과거가 완전히 사라져버리는 것이라는 듯 안도하는 소설 속 인물들에게 합당한 제목”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나간 시간이 인물들에게 균열을 만들고, 그것은 또 다른 과거가 돼 다가올 시간을 간섭할 것”이라며 “제목에 쓰인 ‘미래’는 ‘과거’와 동일한 시간인지도 모른다”고 부연했다.
이번 소설집 초판 한정 사인본에는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밴드 들국화의 노래 ‘걱정말아요 그대’의 가사다. 편 작가는 “소설 속 인물들의 실패가 지나온 시간에서 비롯된 점이 많다 보니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만들며 살아가자는 의미로 그렇게 적었다”며 “독자가 아닌 소설 속 인물들에게 남긴 메시지 같다”고 웃었다. 차기작 집필 계획에 대해선 “내년에 일곱 번째 소설집을 묶을 예정”이라며 “지난해 1년간 ‘문학과사회’에 연재한 장편소설도 퇴고해 내후년쯤 출간하려고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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