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언론 보도를 통해 충격적인 사실이 알려졌다. 경기문화재단 창립 당시 조성된 ‘문예진흥기금’을 본래의 목적과 달리 재단의 운영비로 전용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내년도 예산 편성 과정에서 이 기금을 대폭 삭감하고 일반 예산처럼 사용하려는 계획이 추진되고 있다는 소식까지 전해졌다. 이는 문화예술계는 물론이고 도민 모두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경기문화재단은 1997년 경기도민의 문화적 삶을 풍요롭게 하고 지역 예술인의 창작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됐다. 당시 경기도가 출연한 목적성 기금을 기반으로 시작된 재단은 이 종잣돈을 직접 사용하는 대신 이자 수익을 통해 문화예술 진흥사업에 활용해 왔다. 이러한 방식은 27년간 1천억원이 넘는 재원을 창출하며 지속가능한 문화정책의 모범 사례로 평가받아 왔다.
그러나 올해 들어 경기도는 세입 부족을 이유로 이 기금을 해체하고 문화예술 진흥이 아닌 재단의 기본 운영 예산으로 사용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는 문화예술계의 미래를 포기하고 당장의 재정 부족만을 메우겠다는 단견에 불과하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 배워야 한다. 우리 선조들은 전쟁과 가난 속에서도 종자는 건드리지 않았다. 1937년 연해주에서 강제 이주당하던 고려인들조차 굶주림에 시달리면서도 다음 세대를 위한 종자만큼은 끝까지 지켜냈다. 그 종자를 바탕으로 중앙아시아의 척박한 땅에서 새로운 삶을 일궈낸 것이다. 이처럼 종자를 지키는 일은 단지 돈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보존하는 행위다.
경기문화재단 문예진흥기금은 단순한 재원이 아니다. 경기도 문화예술의 미래를 위한 씨앗이며 도민과 예술인의 지속가능한 삶과 창작을 위한 기반이다. 이 기금을 깨뜨려 당장의 재정난을 해결하려는 시도는 결국 문화의 기반을 무너뜨리고 미래 세대의 문화적 권리마저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예산이 부족하다고 해서 문화예술부터 손대는 일은 이제 멈춰야 한다. 문화는 선택이 아닌 도민 삶의 필수 요소다. 21세기, 그것도 4분의 1이 지난 이 시점에 문화예산을 줄이는 것도 모자라 그 종잣돈마저 해체하려는 발상은 개탄스럽기 그지없다.
경기도는 지금이라도 이 같은 계획을 즉각 철회하고 문화예술의 지속가능성을 해치지 않는 방향으로 예산을 재편성해야 한다. 눈앞의 위기를 이유로 문화의 미래를 희생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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