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을 맞이하는 사람의 마음은 바람의 관습을 잘 수용한다. 차려놓은 음식을 쉽게 먹듯이, 수고한 자의 짐을 내려놓듯이 선물처럼 가을이 안겼다. 밤이 길어지는 것과 함께 긴 겨울도 이어질 것이다.
지난 여름 남수동 어느 공터에서 풀들이 무성한 키 작은 집을 그렸다. 숨 쉬기조차 힘들었던 한여름의 일기다. 낡은 양철지붕의 벽돌집을 보며 그곳에 더욱 가족과 이웃의 깊은 유대와 사랑이 풀잎처럼 우거짐을 느꼈다. 가족이 한 방에서 먹고 자고 했던 추억을 우리는 모두 캥거루 주머니처럼 지니고 있다. 비좁은 공간일수록 가족애는 직접적이고 진하다.
사랑이란 단어를 다시 한번 꺼내 본다. 사랑이 뭐길래 우리의 마음을 송두리째 착취하는 것일까. 사랑이 밥 먹여 주는 건 아니지만 사랑은 먹지 않아도 배부르다. 인생은 써도 사랑은 달다. 사랑의 슬픔은 타지마할을 만들고 사랑의 기쁨은 궁전을 이룬다. 사랑은 존경이고 맑은 성정이지만 배신도 있고 나약하기도 하다. 사랑을 앓다가 떠난 브람스, 사랑을 잃고 죽은 모딜리아니를 죽음으로 따른 잔느, 사랑의 묘약은 불가능한 꿈이다.
김남조 시인은 사랑을 담은 시 ‘편지’를 이렇게 썼다. “그대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대만큼 나를 외롭게 한 이도 없었다. 이 생각을 하면 내가 꼭 울게 된다....” 사랑의 종말은 외롭고, 외로움 때문에 우리는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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