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김진영 기자] 삼성·SK·LG가 올가을 나란히 신입 채용 확대에 나섰다. 정부의 청년 고용 확대 기조와 맞물린 행보지만, 단순한 일자리 확충이라기보다 미래 산업 인재를 선점하려는 전략적 성격이 강하다. 미국과 중국이 반도체·AI·배터리 분야에서 국가 역량을 총동원해 맞붙는 상황에서, 국내 대기업들도 전략 사업군 인재 확보에 속도를 내며 ‘인재 전쟁’에 뛰어들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18일 삼성은 오는 2029년까지 6만명을 신규 채용하겠다고 밝혔다. 5년간 연평균 1만2000명 규모로 반도체·바이오·AI 등 핵심 사업군에 인력을 집중 투입한다는 계획이다. 평택 반도체 캠퍼스 증설, 바이오 5공장 가동, 차세대 AI 반도체 개발 등 굵직한 프로젝트가 잇따르면서 사실상 그룹 차원의 정기 공채 부활에 가깝다는 해석이다.
SK도 하반기 4000명을 포함해 연간 8000명을 뽑는다. 선발 분야는 반도체와 AI, 디지털 전환(DX) 등 신사업이 중심이다. 해외 생산거점 확충과 대규모 투자 프로젝트가 동시에 진행되는 만큼 인재 확보 없이는 실행력이 흔들릴 수 있다는 판단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LG전자는 또 다른 행보를 보였다. 지난 22일까지 R&D·소프트웨어·로봇·통신 등 다양한 부문에서 신입사원을 모집했지만, 동시에 전사 차원의 희망퇴직을 병행했다. 기존 TV 사업부에 국한됐던 희망퇴직 제도를 생활가전·전장·에코솔루션 등으로 확대했다.
채용 확대와 희망퇴직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업계에서는 LG의 행보를 단순한 청년 채용이 아니라 ‘세대교체와 인력 재편’ 전략으로 보고 있다. 신규 인력을 투입하는 동시에 기존 인력을 줄여 비용 구조를 개선하고 조직 체질을 바꾸려는 의도가 깔린 것으로 풀이 된다.
다만, 일각에선 실제 고용 확대 효과가 제한적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청년 채용 규모가 늘더라도 순 고용 효과가 크지 않으면 사회적 고용 안정성과는 거리가 있다는 우려다.
이에 대해 LG전자는 구조조정 성격과는 거리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회사 관계자는 이뉴스투데이와의 통화에서 “기업이 돈이 없어서 희망퇴직을 진행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새로운 인재를 들이기 위한 하나의 방안일 뿐 전반적 조직 체질을 선순환 구조로 만들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대규모 채용 기조에는 글로벌 환경의 압박이 작용하고 있다.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반도체지원법(CHIPS)을 통해 보조금 수혜 조건으로 현지 고용과 기술 투자를 의무화했고, 중국도 국책 자금을 앞세워 반도체·AI 인력을 흡수하며 경쟁에 속도를 내고 있다. 여기에 생성형 AI 확산으로 고급 인력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사람 없이는 기술도, 해외 투자도 불가능하다는 위기감이 산업계 전반에 퍼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국 내부에서도 인재 이탈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해 미국에서 EB1·EB2 비자를 취득한 한국인은 5800명 수준에 이르렀다. 고급 인재 유출이 현실로 드러난 셈이다. AI 인재 순유출 역시 인구 1만 명당 –0.36명으로 OECD 38개국 중 35위에 머물렀다. 한국이 사실상 인재 순유출국으로 평가되는 배경이다.
이재명 정부의 청년 고용 확대 기조도 채용 확대를 뒷받침하는 정책 환경으로 작용한다. 국회가 ‘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 특별법’ 처리에 속도를 내 정기국회 통과를 추진 중이고, 정부는 인재 양성 드라이브를 강화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1월 ‘민관공동투자 반도체 고급인력양성(R&D)’ 사업을 공고, 과기정통부도 2월 AI 반도체 인재 양성·경쟁력 강화 사업을 잇달아 발표했다.
고용지표와 전망에서도 신산업이 고용을 견인할 것이란 시그널이 확인된다. 한국고용정보원은 지난해 하반기 전망에서 반도체 업종의 일자리 증가를 제시했고, 고용노동부는 2027년까지 AI·클라우드 등 신기술 분야에서 수만 명의 인력 부족이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봤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채용 확대는 청년 일자리 창출이라는 사회적 의미를 넘어 반도체·AI·바이오 같은 전략 산업의 인재를 선점하기 위한 경쟁”이라며 “삼성과 SK의 대규모 채용은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정면 대응이고, LG전자의 희망퇴직 병행은 조직 체질 개선 차원의 선택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인재 확보 여부가 향후 10년 한국 산업 경쟁력을 좌우할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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