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권신영 기자】국회 여성가족위원회 법안소위가 ‘경력단절여성’을 ‘경력보유여성’으로 바꾸는 법안을 의결했지만 학계·여성단체 등에서는 여성의 노동 환경을 개선하는 제도적 보완이 더 시급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23일 국회에 따르면 여성가족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는 전날 ‘경력단절여성’ 용어를 ‘경력보유여성’으로 대체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여성의 경제활동 촉진과 경력단절 예방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의결했다.
이번 개정안은 육아 등을 이유로 일을 그만뒀거나 아직 노동시장에 들어서지 못한 여성을 ‘경력단절여성’으로 분류해 온 점을 들어 낙인 효과와 부정적 편견을 해소하기 위한 취지로 제안됐다.
최근 5년간 국내 성별 임금격차 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의 2.6배로, 가장 높은 성별 임금격차를 기록했다. 지난 8월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낸 ‘성인지 통계’ 주요 내용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한국 여성은 남성보다 월평균 약 29% 적은 임금을 받았다.
이 같은 임금격차의 원인으로는 불평등한 노동시장, 질적으로 낮은 여성 고용 시장, 여성의 경력 단절 등이 지목됐다.
법안소위를 통과한 안건은 상임위 전체회의에서 다시 의결되며,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체계·자구 심사를 거치게 된다. 이후 본회의에서 전체 의원이 참여해 법안을 심의·의결한다. 가결을 위해서는 재적 의원 과반 출석과 출석 의원 과반 찬성이 필요하다. 본회의를 통과한 법안은 정부로 이송돼 대통령이 15일 이내에 공포하며, 공포 시점부터 정해진 시행일에 따라 효력이 발생한다.
다만 학계와 여성노동자단체, SNS 등지에서는 해당 법안의 용어 변경에 대해 낙인을 지우고 부정적 인식을 낮추는 데 효과가 미미할 것이라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정재훈 교수(경북행복재단 대표)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정치적 수사로서 의미는 있을지 모르겠지만 실질적으로 노동 현장에서 낙인과 부정적 편견을 해소하는 데에는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정 교수는 “용어만 바꾼다고 해서 기업이 승진이나 연금 산정에 있어서 이점을 주거나 단절된 기간을 호봉으로 쳐줄 리는 없을 것”이라며 “여성의 취업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제도에 힘을 싣는 것이 더 시급한 문제”라고 짚었다.
한국여성노동자회 김지혜 부대표는 본보에 “중요한 것은 용어가 아니라 여성들이 고용 상태를 유지하지 못하게 하는 사회적 환경”이라며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지 않고 용어만 변경한다고 해서 여성 노동자들의 노동 환경이 나아질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내부적으로 경력 보유 여성이라는 용어는 오히려 경력 단절의 원인을 가려버리는 느낌이라는 의견도 있었다”며 “사실 ‘경력’이라는 단어 자체가 이미 일을 한 적 있다는 의미 아닌가. 굳이 ‘보유’라는 수식을 덧붙이는 이유를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김 부대표는 고용은 단절될 수 있지만, 경력은 이어지는 개념이기 때문에 단절됐다고 보기 힘들다며 ‘고용 단절 여성’이라는 용어를 채택해 사용하고 있다고도 설명했다.
엑스(구 트위터)의 한 이용자는 “취지는 알겠지만 뜻이 바로 와닿지 않는다”며 “단절됐다는 것이 사실인데, 경력보유여성이라는 단어는 무슨 말인지 바로 파악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날 법안소위에서는 스토킹 방지 및 피해자 보호 관련법 개정안도 위원회 대안으로 통과됐다. 개정안은 온라인 스토킹 등으로 개인정보가 유출된 피해자가 관련 정보를 삭제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그 비용을 가해자가 부담하도록 규정했다. 아울러 교제폭력 피해자에 대한 지원 근거도 새로 마련됐다.
Copyright ⓒ 투데이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