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녹음 압수는 영장주의 원칙 위반…별건 뇌물 혐의는 무죄
보직 임용 약속·뇌물은 유죄…불법 선거운동은 '면소' 판결
(춘천=연합뉴스) 박영서 기자 = 강원도 교육계에 큰 충격을 안긴 신경호 교육감의 불법선거운동과 뇌물수수 혐의를 둘러싼 2년여 간의 치열한 법정 공방이 '당선무효형'에 해당하는 징역형 선고로 1라운드가 끝이 났다.
검찰과 신 교육감을 비롯한 피고인들 간 치열한 법리 다툼에 대한 1심의 판단은 양측 모두에게 '숙제'를 남겼다.
신 교육감이 판결 선고 직후 즉각 항소하겠다는 뜻을 밝혔으며, 검찰 역시 1심의 일부 무죄 판단에 불복해 항소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여러 쟁점에 대해 1심 재판부가 내린 판단에 관심이 쏠린다.
◇ 통화녹음 파일 압수 두고 "적법" vs "위법"…1심은 '위법' 판단
피고인들은 재판 초기부터 "이 사건의 핵심 증거로 활용된 전 교육청 대변인 이모씨의 '휴대전화 녹음파일'에 대한 검찰의 수집은 위법"이라고 주장했다.
압수수색영장 기재 혐의사실과 무관한 전자정보로서, 영장주의 원칙을 위반하여 수집했다는 주장을 폈다.
검찰은 추가로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아 통화녹음 파일을 압수했다는 점을 들어 적법하다고 맞섰다.
양측 주장을 살핀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주장이 옳다고 봤다.
첫 압수수색 영장에 적힌 혐의사실은 ▲ 전 대변인 이모씨(당시 사립학교 교사)의 전직 교사 한모씨에 대한 이익제공 의사표시의 점 ▲ 이모씨가 신 교육감의 공약 개발, 토론회 준비 등을 지원하여 사립학교 교원의 직무와 관련해 선거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점 ▲ 이씨와 신 교육감이 한씨로부터 숙박권과 금품을 수수했다는 점이었다.
재판부는 검찰이 첫 압수수색 영장에 적힌 혐의사실과 무관한 신 교육감이 이씨로부터 당선 시 대변인 임용을 대가로 1천만원을 수수했다는 내용이 담긴 통화녹음까지 압수한 것은 위법하다고 봤다.
마찬가지로 철원지역 초등학교 교장, 건축업자, 컴퓨터장비업자가 신 교육감에게 금품을 건넸다는 별건 금품수수 혐의에 대한 통화녹음 압수도 위법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에 따라 해당 혐의들에 대해서는 모두 무죄로 판단했다.
◇ "당선되면 보직 주겠다" 혐의는 유죄…정치자금 및 뇌물 수수 인정
재판부가 통화녹음 파일을 위법하게 수집한 증거라고 판단함에 따라 신 교육감은 5건의 뇌물수수 혐의 중 4건은 무죄를 받았지만 1건에 대해서는 유죄를 선고받았다.
바로 전직 교사인 한씨가 건넨 현금 500만원과 73만원 상당의 리조트 숙박권이다.
재판부는 신 교육감이 이씨와 짜고 선거운동과 관련해 한씨에게 보직 임용을 약속했고, 한씨가 이를 승낙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씨가 한씨에게 '교육감 선거 출마계획이 있는 신경호를 도와달라'고 말하며, 신 교육감이 당선되면 자리를 줄 수 있다는 취지로 체육고 교장, 학생연수원장 등 보직을 거론한 점을 유죄 판단 근거로 삼았다.
또 신 교육감이 이씨로부터 한씨를 소개받을 당시 '한씨가 태백에 있는 리조트에 근무하고 있으나 춘천에서 근무하기를 희망한다'는 말을 들었고, 신 교육감 이후 한씨와 그의 배우자가 있는 가운데 한씨의 보직에 관해 '걱정하지 말라'는 취지의 말을 한 점도 유죄 판단 근거가 됐다.
결정적으로 한씨는 피고인 중에서 유일하게 모든 혐의를 인정하며 신 교육감의 뇌물수수 혐의를 검찰에 알렸던 인물로서 수사기관에서부터 법정에 이르기까지 줄곧 자신에 뇌물을 건넨 사실을 인정했다.
결국 재판부는 한씨가 건넨 현금과 리조트 숙박권은 신 교육감의 정치활동을 위해 제공한 '정치자금'이자 '뇌물'에 해당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 불법 선거운동은 무죄…공소시효 지난 신 교육감은 '면소'
다만 재판부는 신 교육감과 이씨가 공모해 불법 사조직(선거운동 단체채팅방)을 설립해 선거운동을 한 혐의에 대해서는 합리적인 의심이 없는 정도의 증명이 있다고 볼 수 없다며 무죄를 내렸다.
이씨가 채팅방 참여자들에게 선거운동을 독려하는 뜻으로 읽힐 수 있는 글을 쓰긴 했지만, 신 교육감의 선거사무장 A씨로부터 제재당한 사정 등을 살펴봐도 이씨가 채팅방을 운영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봤다.
채팅방이 개설된 2021년 7월 이후 약 6개월이 지났을 때 구성원들에게 인터넷을 통한 선거운동을 독려하거나 인터넷을 통한 선거운동이 실제로 이뤄졌다는 사정만으로는 채팅방이 개설 당시부터 신 교육감의 입후보부터 선거운동을 위한 준비행위를 넘어 선거운동을 위해 설립됐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한 신 교육감의 경우 이미 공소시효가 완성된 뒤에 기소가 되었으므로 면소로 판결했다.
검찰은 수사 당시 사조직 설립 범행에 대한 공소시효가 지나기 하루 전인 2022년 11월 30일에 이씨를 기소하면서 공소사실 중 일부에 '신 교육감이 공모관계에 있다'는 내용을 포함, 신 교육감의 공소시효 진행을 정지시켰다.
그러나 재판부는 불법 사조직에 해당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씨를 신 교육감의 공범으로 볼 수도 없는 이상, 공범이 아닌 이씨에 대한 공소제기로 신 교육감의 공소시효 정지는 인정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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