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NEWS=박수남 기자] 한때 대한민국 모바일 혁명의 상징이었던 기업이 있었다. 선도적이고 혁신적인 스타트업으로 시작해 전 국민의 소통 방식을 바꾼 ‘국민 메신저’를 탄생시킨 카카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카카오는 법적 분쟁과 전략적 혼란, 그리고 대중의 불신이라는 안개 속에 갇힌 형국이다. 이 비극적 추락의 시작점은 창업자 김범수 경영쇄신위원장이 SM엔터테인먼트 인수 과정에서 벌인 시세조종 혐의다. 검찰이 징역 15년을 구형한 이 사건은 단순한 개인의 일탈을 넘어, 카카오가 앓고 있는 시스템적 위기의 정점을 드러내는 극적인 상징이다.
카카오의 위기는 단편적인 실수들의 나열이 아닌,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교수가 주창한 ‘혁신가의 딜레마(The Innovator's Dilemma)’의 전형적인 사례로 분석할 수 있다. 카카오의 폭발적 성장을 이끌었던 바로 그 성공 방정식 (분권화된 인수합병(M&A) 중심의 확장과 플랫폼 지배력 강화) 이 이제는 다음 기술의 파도, 특히 인공지능(AI) 시대를 항해하는 데 발목을 잡는 경직된 족쇄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카카오는 미래 생존에 필수적인 파괴적 혁신 대신, 기존의 성공에 안주하며 현재의 캐시카우를 유지하는 데 급급한 ‘성공의 함정’에 빠져있다.
카카오의 ‘원죄’로 불리는 쪼개기 상장부터, 이것이 어떻게 전략적·기술적 파편화로 이어졌는지, AI 군비 경쟁에서 치명적인 격차를 만든 이유는 무엇인지, 그리고 이 모든 문제의 뿌리에 있는 지배구조의 딜레마는 무엇인지에 대한 심층적 모색이 필요한 시점이다. 마지막으로, 글로벌 테크 기업들의 성공적인 턴어라운드 사례를 통해 카카오가 희망의 길을 찾을 수 있을지 그 가능성을 모색해 본다.
쪼개기 상장 위에 세워진 왕국
카카오 왕국의 균열은 화려한 축포 속에서 시작되었다. 2020년 카카오게임즈를 시작으로 2021년 카카오뱅크와 카카오페이가 연이어 증시에 입성하며, 시장은 ‘카카오 공동체’의 가치에 열광했다. 표면적으로 이 전략은 각 사업 부문의 잠재적 가치를 시장에서 제대로 평가받고, 성장에 필요한 자본을 효율적으로 조달하기 위한 합리적인 선택처럼 보였다. 특히 공식적인 지주회사 체제가 부재하여 자회사에 대한 효율적인 자금 지원이 어려웠던 카카오의 독특한 기업 구조 속에서, 쪼개기 상장은 성장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명분을 얻었다.
그러나 이 전략은 ‘더블카운팅 디스카운트(double-counting discount)’라는 치명적인 부작용을 잉태하고 있었다. 알짜 자회사들이 독립적으로 상장되면서, 이들의 가치가 모회사인 카카오의 기업가치에서 할인되어 반영되는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모회사의 핵심 성장 동력이었던 사업들이 별도의 주식으로 거래되자, 투자자들은 더 이상 카카오 본사 주식에 온전한 프리미엄을 부여하지 않았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아래 표에서 보듯, 상장 초기 시장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자회사들의 주가는 최고점 대비 폭락을 거듭하며 투자자들에게 막대한 손실을 안겼다. 카카오페이 주가는 한때 최고가의 20분의 1 토막까지 추락했으며, ‘은행주 대장’으로 불렸던 카카오뱅크는 상장 1년 만에 주가가 70% 가까이 폭락하며 공모가를 하회하는 굴욕을 겪었다. 이는 모회사 카카오의 주가에도 연쇄적인 하락 압력으로 작용하며, ‘카카오 왕국’ 전체의 시가총액이 증발하는 결과를 낳았다. 쪼개기 상장 전략이 단기적인 자금 확보에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장기적인 주주가치 측면에서는 명백한 실패였음을 데이터가 증명하고 있다.
거버넌스의 실패
쪼개기 상장은 단순한 가치 평가의 문제를 넘어, 카카오의 지배구조와 내부 통제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그 정점은 이른바 ‘먹튀(eat and run)’ 스캔들이었다. 카카오페이 상장 불과 한 달 만에, 당시 카카오 본사의 차기 대표로 내정되었던 류영준 대표를 포함한 경영진 8명이 스톡옵션으로 받은 주식 900억 원어치를 대량 매도해 막대한 차익을 챙긴 사건은 대중의 분노에 불을 지폈다.
이 사건은 소액주주들의 이익을 희생시켜 경영진의 배를 불렸다는 비판을 넘어, 카카오 그룹 전반의 도덕적 해이를 상징하는 사건으로 각인되었다. CEO스코어의 분석에 따르면, 최근 2년 6개월간 카카오 그룹 임원들이 스톡옵션 행사로 얻은 이익은 2,560억 원에 달했다. 참여연대와 같은 시민단체들은 경영진의 부도덕한 행위를 견제하지 못한 이사회의 책임 방기를 강하게 질타하며, 이는 명백한 내부 통제 시스템의 붕괴라고 지적했다. 결국 이 사태는 ‘카카오페이 먹튀 방지법’이라는 법안 발의로까지 이어지며, 카카오의 신뢰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이처럼 쪼개기 상장은 단순한 자금 조달 전략이 아니었다. 이는 카카오의 근본적인 지배구조 취약성에서 비롯된 ‘원죄’였다. 적절한 지주회사 구조 없이 무리하게 성장을 추구한 결과, 각 자회사는 공동체의 장기적 비전보다 개별 IPO의 성공에만 매몰되는 유인이 생겼다. 이는 조직 전체에 ‘사일로(silo) 문화’를 고착시키는 시발점이 되었고, 결국 전략적 시너지 실패와 AI 경쟁력 약화, 그리고 거버넌스 위기라는 모든 문제의 뿌리가 되었다. 하나의 잘못된 전략적 선택이 조직의 문화, 기술, 그리고 미래 비전 전체를 오염시킨 것이다.
시너지라는 환상
카카오톡이라는 압도적인 플랫폼 위에 다양한 서비스를 얹는 카카오의 전략은 ‘슈퍼앱(Super App)’ 모델을 지향하는 것처럼 보였다. 슈퍼앱의 핵심은 단순히 여러 서비스를 한데 모으는 ‘집합’이 아니라, 서비스 간 유기적 결합을 통해 1+1이 3이 되는 ‘통합’의 시너지를 창출하는 데 있다. 그러나 카카오의 서비스들은 거대한 군도(群島)처럼 존재했다. 하나의 바다(카카오톡)를 공유하지만, 각 섬은 서로 연결되지 않은 채 고립되어 있었다.
그 실패 사례는 명확하다. 1조 8,700억 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인수한 음원 플랫폼 멜론은 카카오톡과의 유의미한 시너지를 창출하지 못한 채 유튜브 뮤직에 시장 점유율을 잠식당하고 있다. 심지어 서비스 통합 과정의 미숙함으로 사용자들에게 요금이 이중 청구되는 문제까지 발생했다. 카카오톡 플랫폼을 활용해 손쉽게 즐길 수 있도록 기획했던 카카오게임즈의 ‘스낵게임’ 역시 수익성 악화로 7년 만에 서비스를 종료하며 시너지 창출의 어려움을 드러냈다. 사용자 경험(UX) 역시 파편화되어, 이용자들은 카카오라는 하나의 생태계를 여행하는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회사들이 만든 서비스를 개별적으로 방문하는 듯한 단절감을 느껴야 했다.
이러한 전략적, 기술적 파편화가 낳은 필연적 귀결은 2022년 10월 SK C&C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 사건이었다. 이 화재로 카카오톡을 비롯한 대부분의 카카오 서비스가 수일간 마비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충격적인 사실은, 같은 데이터센터를 사용했던 경쟁사 네이버는 이중화된 백업 시스템 덕분에 거의 아무런 서비스 중단도 겪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사건은 카카오 내부의 깊은 문제를 수면 위로 드러냈다. 카카오가 자체적으로 발표한 원인 분석 보고서는 충격적이었다. 이미지나 영상 같은 대용량 데이터를 저장하는 오브젝트 스토리지의 메타 정보 시스템과 보안키 저장소 등 핵심 인프라가 판교 데이터센터 한 곳에서만 이중화되어 있었을 뿐, 다른 데이터센터와의 상호 백업 체계가 구축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이는 단순히 기술적 실수를 넘어, 각 서비스가 개별적으로 인프라를 운영하며 전사적인 재해 복구 전략을 통합하지 못한, 조직적 사일로가 낳은 참사였다.
사일로 문화
결국 모든 문제의 근원은 조직 문화에 있었다. 민첩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했던 ‘사내독립기업(CIC, Company-in-Company)’ 제도는 오히려 부서 간의 벽을 높이고 내부 경쟁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M&A를 통한 무분별한 확장은 통일된 비전 없이 각기 다른 문화를 가진 조직들을 무질서하게 엮어놓은 ‘문어발식 조직문화’를 낳았고, 이는 창업자조차 그룹 전체에 일관된 영향력을 행사하기 어려운 구조를 만들었다.
이는 체계적인 생태계 구축에 성공한 네이버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네이버는 ‘프로젝트 꽃’과 같은 장기적인 비전을 바탕으로 스마트스토어, 네이버페이, 검색, 광고, 데이터 분석 등 자사의 서비스들을 촘촘하게 연결했다. 판매자(SME)와 창작자들이 네이버의 도구를 활용해 성장하고, 그 성장이 다시 네이버 플랫폼의 가치를 높이는 강력한 선순환 구조를 설계한 것이다.
카카오에 있어 방대한 사용자 데이터는 최고의 자산이 되어야 했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 각 서비스에 갇힌 ‘데이터 사일로(Data Silo)’는 진정한 의미의 통합 고객 분석과 개인화된 서비스 제공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이는 현대 슈퍼앱의 핵심 경쟁력인 AI 기반 개인화 트렌드에서 뒤처지는 결정적 원인이 되었다. 2022년의 화재는 이 데이터가 전략적 자산이 아니라, 파편화되어 관리되지 못하는 거대한 ‘부채’이자 단일 장애점(Single Point of Failure)이었음을 증명했다. 카카오의 군도는 시너지를 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하나의 섬이 무너지자 전체가 침몰하는 구조적 취약성을 안고 있었던 것이다.
AI 군비 경쟁
AI 시대의 패권은 장기적이고 꾸준한 연구개발(R&D) 투자에서 나온다. 이 지점에서 네이버와 카카오의 전략적 차이는 극명하게 드러난다. 네이버는 매년 매출의 20% 이상을 R&D에 쏟아부으며, 2025년 상반기에만 사상 처음으로 1조 원을 돌파하는 등 AI 기술 확보에 사활을 걸었다. 한 해 R&D 비용이 1조 8,579억 원에 달하기도 했다.
반면, 카카오의 R&D 투자는 규모 면에서 작았을 뿐만 아니라 일관성도 부족했다. 최근 투자를 늘리고는 있지만, 이는 경쟁사에 뒤처졌다는 위기감에 따른 반응에 가까웠다. 일례로 한 해 AI 기술 개발 및 서비스 출시에 투자한 금액은 1,500억 원 수준으로, 매출 대비 2%에 불과했다. 이는 AI를 미래를 위한 근본적인 투자로 보는 네이버와, 기존 서비스를 보조하는 기능적 투자로 보는 카카오의 시각차를 보여준다.
이러한 투자 격차는 결국 전략적 참사로 이어졌다. 카카오는 정부가 추진하는 ‘국가대표 AI’ 혹은 ‘소버린 AI(Sovereign AI)’ 모델 개발 프로젝트에서 탈락하는 충격적인 결과를 맞았다. 탈락의 이유는 카카오의 AI 전략의 본질을 꿰뚫는다. 정부와 업계는 카카오가 자체적인 ‘프롬 스크래치(From Scratch, 맨 처음부터)’ 개발 역량이 부족하고, 오픈AI와 같은 외부 기술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고 평가했다. 이는 국가적 기술 주권 확보라는 프로젝트의 목표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었다. 이 사건은 카카오의 AI 기술력에 대한 시장의 신뢰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고, 향후 B2B 및 공공 AI 시장에서의 경쟁력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기술 경쟁력의 핵심인 인재 확보에서도 빨간불이 켜졌다. 카카오의 초거대 AI 모델 ‘KoGPT’ 개발을 이끌었던 김일두 대표를 비롯한 카카오브레인의 핵심 개발자들이 회사를 떠나 자체 스타트업을 창업하는 등 인재 유출이 가속화되었다. 이는 카카오의 장기적인 AI 비전에 대한 내부의 불신이 반영된 결과로 해석될 수 있다.
기술적으로도 카카오의 AI 모델 ‘카나나(Kanana)’는 네이버의 ‘하이퍼클로바X’에 비해 뚜렷한 우위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특정 한국어 성능 평가에서는 선전하기도 했지만 , 전반적인 기술의 깊이, B2B 상용화 전략의 명확성, 그리고 모델의 규모 면에서 하이퍼클로바X가 한발 앞서 있다는 것이 시장의 중론이다.
위기에 직면한 정신아 신임 대표는 오픈AI와의 전격적인 파트너십을 돌파구로 제시했다. 이는 세계 최고의 AI 기술을 신속하게 서비스에 접목하려는 영리한 전략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면에는 비판적인 질문이 존재한다. 이는 과연 동등한 기술 기업 간의 전략적 제휴인가, 아니면 자체적인 파운데이션 모델 경쟁에서 뒤처졌음을 인정하고 기술 종속의 길을 택한 것인가? 이 파트너십은 카카오가 장기적으로 데이터 주권을 지키고 독자적인 AI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을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남긴다. 시장이 이 발표에 미지근한 반응을 보인 것은 이러한 불확실성을 반영한다.
이 모든 상황은 ‘혁신가의 딜레마’ 이론으로 설명될 수 있다. 카카오의 AI 전략은 철저히 ‘존속적 혁신(Sustaining Innovation)’에 머물러 있다. AI를 활용해 카카오톡 선물 추천, 메시지 요약 등 기존 서비스를 개선하고 현재 고객의 편의성을 높이는 데 집중하는 것이다. 반면 네이버는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을 추구한다. 하이퍼클로바X라는 기반 기술 플랫폼을 구축하여 B2B 솔루션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고, 국가적인 기술 생태계를 주도하려 한다. 시장 선도 기업인 카카오는 기존 플랫폼을 최적화하는 데 매몰되어, AI라는 차세대 기술의 근본적인 패러다임 변화를 주도할 기회를 놓치고 있다. 오픈AI와의 협력은 이러한 딜레마를 극복하기 위한 선택이라기보다, 스스로 파괴적 기술의 ‘생산자’가 아닌 ‘소비자’가 되기로 결정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거버넌스 딜레마
카카오 위기의 본질은 결국 지배구조(거버넌스) 문제로 귀결된다. SM엔터테인먼트 인수전에서 하이브의 공개매수를 방해하기 위해 2,400억 원을 투입해 시세를 조종했다는 혐의는 창업자 김범수 위원장의 리더십과 그룹 전체의 윤리 의식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검찰이 징역 15년이라는 중형을 구형한 것은 사안의 심각성을 방증한다.
이는 단순히 한 개인의 법적 리스크를 넘어, 그룹 전체를 뒤흔드는 ‘창업자 리스크’로 확산되고 있다. 구형 소식이 전해진 직후 카카오의 시가총액은 약 1조 원이 증발했으며, 투자 심리는 급격히 위축되었다. 더 나아가, 만약 김 위원장이 유죄 판결을 받을 경우, 금융 관련법 위반으로 인해 카카오가 카카오뱅크의 대주주 자격을 유지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치명적인 리스크까지 부상했다.
카카오의 지배구조는 급성장한 기업의 규모에 걸맞지 않게 여전히 스타트업 시절의 구조에 머물러 있다. 김범수 위원장이 지분 100%를 소유한 개인 회사 ‘케이큐브홀딩스’가 카카오의 2대 주주로서 사실상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불투명한 지배구조는 오랫동안 문제로 지적되어 왔다. 이는 공식적인 지주회사가 받는 규제와 투명성 의무를 회피하면서 실질적인 지배력을 행사하는 통로가 되었다.
서류상으로 카카오 이사회는 사외이사 과반수 요건을 충족하는 등 형식적 독립성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쪼개기 상장 과정에서의 경영진 ‘먹튀’ 사태부터 SM 시세조종 의혹에 이르기까지, 이사회가 과연 경영진과 창업자로부터 독립적으로 의사결정을 내리고 실질적인 견제 역할을 수행했는지에 대해서는 깊은 의문이 남는다. 한국ESG기준원(KCGS) 등 외부 기관으로부터 A등급의 ESG 평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 현실에서 반복되는 법적·윤리적 논란은 카카오의 ESG 경영이 내재된 문화가 아닌, 평가를 위한 ‘체크리스트’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낳는다.
카카오는 스타트업의 거버넌스에서 상장 대기업 집단의 거버넌스로 전환하는 데 실패했다. 과거 카카오의 성공 신화였던 ‘신뢰, 충돌, 헌신(신충헌)’이라는 수평적 조직 문화는, 그룹의 규모가 커지고 이해관계가 복잡해지면서 오히려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고 중앙의 통제가 미치지 않는 ‘지방 분권형’ 위기를 초래하는 원인이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거버넌스 부채(Governance Debt)’라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기술 부채가 빠른 개발을 위해 남겨둔 코드의 문제점이 나중에 더 큰 비용을 초래하듯, 카카오는 성장에 급급한 나머지 거버넌스 측면에서 수많은 ‘부채’를 쌓아왔다. 케이큐브홀딩스를 통한 불투명한 지배구조, 주주가치를 희생시킨 쪼개기 상장, 창업자 중심의 비공식적 의사결정 구조 등이 바로 그 부채다. 이제 SM 사태를 기점으로 그동안 쌓아온 부채에 대한 값비싼 ‘이자’가 청구되고 있는 것이다. 이 부채를 청산하는 것은 단순히 CEO를 교체하는 수준을 넘어, 그룹의 지배구조 전체를 근본적으로 재설계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요구한다.
카카오가 직면한 위기는 단일한 원인으로 설명할 수 없다. 그것은 근본적인 지배구조의 실패에서 시작되어 파편화된 전략, 고립된 조직 문화, 그리고 뒤처진 기술 로드맵으로 이어진 복합적인 문제의 총체다. 과거의 성공 방정식에 갇혀버린 카카오는, 스타트업의 몸으로 거인이 되어버린 채 스스로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주저앉은 형국이다. 이 거인이 다시 일어서기 위해서는 외부에서 그 해답을 찾아야 한다.
마이크로소프트 모델 – 문화적, 전략적 리부트
사티아 나델라 CEO 부임 이전의 마이크로소프트는 오늘날 카카오의 모습과 닮아 있었다. 부서 간 극심한 경쟁과 사일로 문화로 혁신의 동력을 잃고, 모바일 시대의 흐름을 놓친 채 과거의 영광에 안주하던 공룡이었다. 나델라의 턴어라운드는 카카오에게 세 가지 중요한 교훈을 준다.
첫째, 문화적 대전환이다. 나델라는 ‘모든 것을 안다(know-it-all)’는 오만한 문화를 ‘모든 것을 배운다(learn-it-all)’는 겸손한 성장 마인셋으로 바꾸며 조직의 벽을 허물었다. 이는 카카오의 파편화된 문화를 치유할 수 있는 핵심적인 처방이다.
둘째, 명확한 전략적 구심점이다. ‘모바일 퍼스트, 클라우드 퍼스트(Mobile First, Cloud First)’라는 강력하고 단순한 비전은 흩어져 있던 조직의 역량을 한 방향으로 결집시켰다. 카카오 역시 ‘AI’라는 모호한 구호를 넘어, 조직 전체를 관통하는 명확한 전략적 닻이 절실하다.
셋째, 데이터 통합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성공적인 디지털 전환의 중심에는 파편화된 데이터를 통합 플랫폼으로 모으는 작업이 있었다. 이는 카카오가 기술적으로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다.
애플 모델 – 급진적 단순함의 힘
1997년 파산 직전의 애플로 돌아온 스티브 잡스가 마주한 것은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제품 라인업이었다. 그의 해결책은 급진적일 정도로 단순했다. 그는 유명한 2x2 매트릭스(소비자용/전문가용, 데스크톱/포터블)를 통해 기존 제품의 70%를 단칼에 잘라내고, 오직 4개의 핵심 제품에만 집중했다.
100개가 넘는 계열사를 거느린 카카오에게도 이러한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카카오 생태계의 본질을 구성하는 핵심적인 네 개의 기둥은 과연 무엇인가? 이 질문에 답하는 과정은 전략적 혼돈을 뚫고 나아갈 우선순위 설정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카카오의 재도약을 위해서는 고통스럽지만 근본적인 수술이 불가피하다.
거버넌스 개혁: 케이큐브홀딩스를 통한 옥상옥 지배구조를 해소하고, 투명한 상장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는 것이 첫걸음이다. 또한, 창업자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실질적인 견제와 조언을 제공할 수 있는 진정으로 독립적인 이사회 의장을 선임해야 한다.
전략적 통합: 정신아 대표는 ‘클라우드 퍼스트’와 같이 명확하고 단일한 전략적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AI 네이티브 커뮤니케이션’이든, ‘생활 밀착형 서비스 플랫폼’이든, 그 비전을 중심으로 비핵심 자산을 과감히 정리하고 남은 서비스 간의 깊은 통합을 이뤄내야 한다. 이를 위해 전사적 통합 데이터 플랫폼 구축은 최우선 과제가 되어야 한다.
‘기술 및 거버넌스 부채’ 상환: 엔지니어링 및 경영 자원의 상당 부분을 시스템 전체의 이중화 구축, 데이터 스택 통합, 엄격한 내부 통제 시스템 도입 등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할당해야 한다. 이는 단기적인 성과를 희생하더라도 반드시 치러야 할 비용이다.
카카오는 지금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과거의 성공 방정식을 파괴하고, '국민 앱'이라는 왕관의 무게를 견디며 진정한 '테크 자이언트'로 거듭날 용기가 있는가? 아니면 혁신가의 딜레마 속에서 서서히 잊혀가는 거인의 초상으로 남을 것인가? 그 답은 이제 카카오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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