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김효인 기자】 보험 가입 경로가 전속 설계사에 국한됐던 시대는 저물고 있다. 온라인 플랫폼, 카드사 쇼핑몰, 자회사형 법인보험대리점(GA)에 이어 다음 달부터는 병원·약국·요양시설 등 생활 현장에서 바로 가입할 수 있는 ‘간단보험대리점’까지 허용된다. 소비자 접근성이 획기적으로 높아지는 한편, 불완전판매와 책임 불명확성이라는 새로운 리스크가 동반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시행세칙 개정을 통해 그동안 손해보험 상품에만 국한됐던 간단보험대리점 판매를 생명보험과 제3보험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요양병원에서는 상해보험, 병원에서는 질병보험을 직접 판매할 수 있게 된다. 금융당국이 지난해 보험개혁회의에서 ‘생활 밀착형 보험 확대’를 천명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더 쉽게, 가볍게…생활 속 파고드는 보험 채널
간단보험대리점은 특정 재화를 판매하는 사업자가 관련 소액·단기 보험상품을 함께 판매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보험료가 저렴하고 구조가 단순해 설명이 비교적 간단한 상품이 대상이다. 당국은 이를 통해 소비자가 생활 속에서 손쉽게 필요한 보험에 가입하고, 보험사는 새로운 판매 경로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보험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간단보험대리점은 잠재적 수요를 끌어내 생활밀착형 시장 확대를 이끌 수 있다”며 “비전속 조직까지 아우르는 전사적 채널 운영 전략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보험사들의 대응도 빨라지고 있다. 대형 생보사는 수천 명 규모 전속 설계사를 자회사형 GA로 전환하며 조직 개편에 나섰고, GA 업계는 상담 라운지와 전용 앱을 연계한 하이브리드 영업을 확장 중이다. 카드사들은 자체 쇼핑몰에서 포인트 적립과 맞춤형 추천 기능을 내세워 MZ세대를 겨냥한다.
특히 간단보험대리점은 ‘생활밀착형’이라는 점에서 기존 GA·카드사 채널과 차별화된다. 병원이나 약국·요양시설에서 즉시 가입할 수 있는 구조는 보험 가입률 정체와 인구구조 변화로 어려움을 겪는 업계에 새로운 활로가 될 수 있다는 평가다.
소비자 선택권과 분쟁 리스크…동전의 양면
다만 채널 확장은 곧 분쟁 가능성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 금융감독원 집계에 따르면, 최근 3년간 보험 민원의 상당수가 불완전판매와 설명의무 위반에서 발생했다. 가입 과정이 간편해질수록 상품 내용을 충분히 숙지하지 못한 채 계약을 체결할 위험이 높아지는 셈이다.
금액과 기간이 짧은 간단보험일수록 소비자가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으나, 보험금 지급 단계에서 분쟁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크다.
보험연구원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멀티채널 확산은 불가피한 흐름이지만, 판매 주체가 다양해질수록 계약 책임 소재가 모호해진다”며 “특히 플랫폼 기반 판매와 간단보험은 정보 비대칭성, 분쟁 발생 시 책임 주체 모호성이 핵심 과제”라고 분석했다.
전문가들도 비슷한 우려를 제기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판매 채널 확대 자체는 긍정적이지만, 소비자는 문제가 생기면 창구가 아니라 보험사를 찾는다”며 “책임 구조가 불명확하면 오히려 브랜드 신뢰를 해칠 수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올해 말부터 시행되는 ‘제3자 리스크 가이드라인’도 보험사 부담을 키울 전망이다. GA 내부통제뿐 아니라 새로 편입되는 간단보험대리점 관리 범위까지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간단보험은 소액 상품이라 동일한 수준의 관리가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전사적 리스크 관리 체계에서는 일정 부분 책임이 불가피하다.
이에 따라 업계는 자체적인 내부통제 강화에 착수했다. 생명보험협회와 손해보험협회는 채널별 판매 가이드라인을 재정비 중이며, 온라인 판매 시 필수 고지사항과 확인 절차를 표준화하고 있다. 일부 보험사는 AI 기반 상담 모니터링 시스템을 도입해 설계사 설명 과정을 분석하고, 온라인 채널에는 전자서명 전 확인 절차를 추가하는 등 불완전판매 차단 장치를 강화하고 있다.
한 금융보험학과 교수는 “보험 판매 채널 다변화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지만, 소비자 신뢰를 확보하지 못하면 오히려 시장 성장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며 “분쟁 발생 시 책임 주체 명확화와 가이드라인 정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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