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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원고 A주식회사가 피고 B씨를 상대로 낸 공사대금 청구 소송에서 “피고의 대리인이 공사대금 미지급 사실을 인정해 채무를 승인했다는 사실만으로 곧바로 시효완성 사실을 알면서 그로 인한 법적 이익을 받지 않겠다는 의사표시를 했다고 추정할 수 없다”며 원심을 파기하고 창원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3일 밝혔다.
원고 A사는 2013년 8월 1일 피고 B씨로부터 공사대금 10억1200만원 규모 숙박시설 신축공사를 도급받아 같은 해 12월 26일 공사를 완료했다. 피고는 공사대금 중 9억6050만원을 지급했지만 나머지 5150만원은 지급하지 않았다.
A사는 2019년 10월경 B씨에게 미지급 공사대금 5150만원과 지연손해금을 청구했다. 공사대금 채권의 소멸시효 기간이 3년인 점을 고려하면 이미 시효가 완성된 상태였다.
B씨는 공사대금 채권이 시효로 소멸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A사는 B씨가 소멸시효 이후 채무에 여러 차례 사과하고 채무 미지급을 인정함으로써 시효이익(시효가 지나 B씨가 채무를 갚지 않아도 되는 권리)을 포기했다고 맞섰다.
1심은 B씨에게 A사가 청구한 5150만원과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1심 재판부는 B씨가 공사대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B씨는 불복해 항소했지만 2심은 이를 기각했다. 2심 재판부는 “채무자가 소멸시효 완성 후 채무를 승인했다면 시효 완성의 사실을 알고 그 이익을 포기한 것이라고 추정된다”는 기존 법리를 적용했다.
2심은 B씨 측 대리인이 2023년 11월 11일 원고 A사 대표이사에게 공사대금 5150만원을 지급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여러 차례 사과한 점을 주목했다. 2심 재판부는 “피고는 공사대금채권 5150만원을 미지급했다는 사실을 인정함으로써 채무를 승인했고, 공사대금을 미지급한 것에 대해 여러 차례 사과함으로써 시효이익을 포기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소멸시효 중단사유인 채무승인과 시효이익 포기를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채무승인은 소멸시효 완성 전에 채무자가 상대방의 권리나 자신의 채무가 있음을 알고 있다는 뜻을 표시하는 관념의 통지다. 반면 시효이익 포기는 소멸시효 완성 후 채무자가 소멸시효 완성을 알면서 이로 인한 법적 이익을 받지 않겠다는 효과의사를 표시하는 의사표시다.
대법원은 “시효이익 포기는 단순히 채무에 관한 인식을 표시하는 것을 넘어, 자신에게 법적으로 보장된 시효이익의 포기라는 법적 효과를 의욕하는 효과의사의 표시가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구체적으로 피고 대리인이 공사대금 미지급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했더라도, 그 행위의 진정한 의도가 시효이익 포기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봤다. 또한 시효완성 사실을 알면서 사과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원심은 채무승인을 하거나 채권자에게 사과한 사실로부터 곧바로 시효완성 사실을 알고도 그 이익을 포기한 것으로 보아 피고의 소멸시효 완성 주장을 배척했다”며 “이러한 원심판단에는 시효이익 포기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판결은 지난 7월 24일 선고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기초한 것으로, 시효이익 포기에 대한 대법원의 엄격한 기준을 보여준다. 단순한 채무 인정이나 사과만으로는 시효이익을 포기했다고 볼 수 없으며, 명확한 효과의사가 표시되어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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