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이기심의 시대..사회적 약자 배려한 퇴계 '섬김 리더십'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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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이기심의 시대..사회적 약자 배려한 퇴계 '섬김 리더십' 절실"

이데일리 2025-09-23 05:30: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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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 따뜻함을 전해온 예종석 한양대 명예교수가 대한민국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명사들과의 릴레이 인터뷰를 진행합니다. 그들의 경험을 통해 얻은 교훈을 공유함으로써 독자들에게 깊이 있는 통찰과 영감을 제공하겠습니다. <편집자 주>

김병일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이 살구색 두루마기 차림으로 이데일리를 찾아 환하게 미소짓고 있다. (사진=김태형 기자)


[대담=예종석 명예대기자(한양대 명예교수)·정리=이지현 기자] 고운 살구색 두루마기를 두른 선비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수백년 전 조선왕조의 선비가 현대로 건너온 느낌이었다. 김병일(80)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은 “예부터 의식주 중에 ‘의(衣)’를 우선순위에 뒀다”며 ‘의관정제(衣冠整齊)’에 담긴 의미를 하나씩 풀어냈다.

‘짐승도 살 집이 있고 먹을 것도 먹지만 옷을 입지 않는다’는 말은 예부터 내려오는 말이다. 인간과 동물의 본질적 차이를 설명하며 인간이 단순히 의식주만으로 사는 존재가 아니라 부끄러움을 알고 예의와 도리를 실천하는 존재임을 강조하는 의미가 담겼다.

김병일 이사장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서양과 우리나라의 의관 차이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서양은 모자를 바깥에서 쓰고 실내에서 벗지만 우리나라의 모자(갓, 정자관 등)를 실내에서도 썼다. 여기에 소매 폭이 매우 넓은 도포, 두루마기 등도 실외뿐만 아니라 실내에서도 제대로 갖춰 입고 항시 매무시를 바르게 했다. 이것이 일상생활 속에서도 지켜야 할 기본예절이었다.” 옷은 단순히 입는 것을 넘어 인품과 마음가짐을 투영하는 도구로서 역할을 해온 것이다. 단 이때 신발은 집안에서 신지 않았다. 서양에서는 집 안에서도 신발을 신는다. 우리 문화와 큰 차이가 있다.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 일화가 있다. 1999년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남편 필립 공과 경북 안동 하회마을 충효당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여왕은 충효당을 오르며 신발을 벗었다. 우리 눈에는 특별할 것이 없는 모습에 BBC, 로이터, AP 등과 같은 외신은 놀라워하며 전세계에 이 소식을 타전했다. 영국에서는 검은색 구두 착용이 예의다 보니 여왕의 벗은 발은 한 번도 외부에 공개된 적이 없어서다.

김 이사장은 “당시 집주인이 한옥의 안채에 신발을 신고 들어가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하니 여왕도 신발을 벗은 것”이라며 “이처럼 문화가 상충할 때도 있는데 이 부분을 우리가 알고 어떤 방법이든 조화롭게 하면 된다. 당시 여왕이 올라가기 편하게 만들었던 디딤돌 위 나무 대는 지금까지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고 귀띔했다.

선조의 지혜에 재미있는 스토리까지 더해지니 눈이 반짝, 귀가 쫑긋해졌다.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며 그를 바라보니 그의 면면은 꼭 안동에서 나고 자란 훈장님이었다. 34년간 대한민국 살림살이를 책임져온 정통경제관료로서의 이미지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같은 반응에 그는 껄껄 웃으며 “도산서원에서 변화가 시작됐다”고 했다.

사실 그는 1971년 행정고시 합격 후 2005년까지 34년간 통계청장, 조달청장, 기획예산처 장관 등을 역임했다. 대부분의 고위직 경제관료들은 대학이나 대형 로펌으로 자리를 옮기는 게 다반사다. 하지만 그는 처음부터 다른 길을 선택했다. 무보수 비상근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 벌써 17년이나 됐다. “공직을 그만두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고 염원해왔다. 그리고 공직에서 나오자마자 바로 한문서당에 등록했다. 건강을 위해 마라톤도 시작했다.” 앞으로 내 인생은 내가 원하는 대로 살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런데 퇴계 선생의 아름다운 이야기는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놨다.

김병일 도산서원 이사장이 예종석의 파워인터뷰에서 퇴계 선생의 정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김태형 기자)


-어떻게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을 맡게 됐나.

△많은 분이 의아해한다. 경제 관료로 34~35년을 보내며 일시적 풍요를 추구했던 내가, 어떻게 정신적 분야에 오게 됐는지 궁금해한다. 사실 대학에서 사학을 전공했고 공직에 있을 때도 시간이 나면 역사책을 읽고 답사도 다녔다. 석사 논문도 조선왕조 청백리 연구였다. 퇴계 탄신 500주년 기념행사에도 참여했다. 퇴임 후에도 도산서원과 퇴계 종택을 자주 찾았다. 그러다 2007년쯤 이사장 제안을 받았다. 미술관람을 좋아하는 것과 미술관장을 맡는 건 다른 문제가 아닌가. 당시에 은퇴하자마자 나에게 충실하고자 사서삼경을 공부했다. 육체적으로 건강을 챙기려고 마라톤 풀코스도 뛰어봤다. 당시 이런 곳에 푹 빠져 있으니 오라고 해도 갈 수 없어 고사했다. 그런데 2008년에 다리를 심하게 다쳐 꼼짝을 못하게 됐고, 당시 수련원에서 쾌유를 비는 난을 보내시곤 궐석 이사회를 거쳐 이사장으로 선임했더라. 1년에 한두 차례 오면 된다고 하면서 도와달라고 했다. 돈이 크게 생기는 자리라면 끝내 안 갈 수 있지만, 봉사하는 곳인데 더는 거절할 수 없어서 수락했다.

-지금은 ‘퇴계 전도사’로 통할 정도로 전문가가 되셨다.

△60대 중반부터 퇴계 선생을 공부했기에 전문가라 하긴 어렵지만 ‘퇴계 전도사’라는 말은 감사히 받겠다. 처음 제의할 땐 1년에 한두 차례만 오면 된다고 했다. 그런데 ‘면장도 알아야 한다’는 말이 있지 않나. 그래서 나도 현장에 내려가서 퇴계 종손과 함께 기거하며 퇴계 선생의 일화를 가까이서 듣고 삶의 자취를 더듬으면서 큰 감동과 신선한 충격을 받고 있다. 특히 퇴계 선생은 큰 학자로만 알았는데 배운 것을 그대로 실천하려고 굉장히 노력하며 70년을 사신 분이었다. 그에 견줘 내 삶을 돌아보면 부끄럽고 후회가 많이 된다.

유학(儒學)은 공경(敬)의 실천을 통해 자신의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남을 존중하며 예의를 갖추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이는 단순한 형식이 아니라 상대방이 자신이 존중받는다고 느끼게 하는 말투와 행동, 그리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까지 포함한다.

퇴계 선생이 경상도 가부장 사회에서 아내를 지극 정성껏 대했던 일하는 유명하다. 첫 번째 부인 허씨와 사별한 뒤 안동 권씨와 재혼했는데 권씨는 집안의 연이은 참화(조부는 갑자사화로 사사, 부친 권질은 유배)로 인해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아 결혼 당시 정신이 온전치 못한 상태였다. 권질은 퇴계의 인품을 믿고 “자네가 아니면 내 딸을 맡아줄 사람이 없다”며 딸을 부탁했고 퇴계는 흔쾌히 이를 받아들였다. 결혼 후 권씨는 여러 번 실수했지만 퇴계는 아내를 꾸짖지 않고 오히려 감싸주었다. 제사상에 올릴 배를 권씨가 미리 치마 속에 숨겼을 때 형수가 이를 나무라자 퇴계는 “조상님께서도 손자며느리의 행동을 귀엽게 여기실 것”이라며 아내를 두둔했다. 또 상가에 입고 갈 도포를 권씨가 빨간 천으로 기워주자 퇴계는 아무런 내색 없이 그대로 입고 나가며 “붉은색은 복을 부르는 것”이라며 아내의 실수를 덮어줬다.

이런 배려는 아내뿐이 아니었다. 며느리, 하인에게까지 이르렀다. 며느리는 자신이 죽어서도 시아버지를 모시겠으니 시아버지 산소 아래에 묻어달라고 했다는 일화도 있다. 퇴계 선생은 집안에선 가족을 포근하게 품고 바깥에선 제자를 존중하는 분이었다. 이런 얘기를 매일 같이 듣다 보니 퇴계 선생이 한없이 존경스럽고 나는 부끄러워졌다.

-참 아름다운 이야기다.

△퇴계 선생은 사랑으로 충만한 삶을 살았다. 모든 대상을 사랑으로 바로잡으려 했다. 아름다운 노래는 자꾸 듣고 싶은 것처럼 퇴계 선생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자꾸 듣고 싶어져 주 2회가 아닌 주중 대부분을 안동에서 머물고 있다. 함께 내려온 아내도 퇴계 선생도 훌륭하지만 선조의 인생을 그대로 이어받은 80대 종손의 삶도 그 미소도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모습이라며 감동했다. 그래서 결심을 했다. 앞으로 나의 남은 삶도, 나보다 더 오래 살 사람들, 중요한 역할을 할 사람들이 지난날의 나처럼 살지 않고 퇴계처럼 자신도 다른 사람들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겠다고.

-퇴계 관련 책도 여러 권 저술했다. 퇴계정신의 핵심은 무엇인가.

△ 퇴계정신의 핵심은 ‘경(敬)’이다. 단순한 예의나 격식이 아니라 마음을 한 곳에 집중하고 늘 깨어서 자신과 타인을 존중하며 모든 행동과 생각을 삼가고 엄숙하게 하는 태도다.

퇴계 선생이 선조에게 올린 ‘성학십도(聖學十圖)’ 중 8도에 해당하는 ‘심학도(心學圖)’에서는 몸을 움직이는 게 마음이라고 했다. 마음이라는 것이 한 사람의 몸을 컨트롤한다. 그리고 마음을 주재하는 것은 ‘경’이다. 공손한 마음의 바탕에는 ‘경’이 있어야 한다. 모든 존재를 공경하고 자기 수양을 통해 나뿐만이 아닌 다른 사람도 완성시켜야 한다. 퇴계 선생의 소망은 착한 사람이 많아지는 것이었다. 이건 우리 가문을 잘 되게 하는 것과 엄청나게 차이가 있다.

그리고 끝내는 ‘지행병진(知行竝進)’이다. 주자(朱子)는 “앎이 먼저고 실천이 뒤따르지만 실천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퇴계 선생은 이를 계승하면서도 앎과 실천이 항상 함께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는 것을 반드시 아름답게 행동하라는 것이다.

퇴계 선생이 21세기에 더 주목받는 이유는 ‘지시하는 리더십’이 아닌 이같은 ‘섬김의 리더십’이기 때문이다. 요즘 사람들은 너무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 무릎을 꿇리려고 하다가 망신당한 사람도 얼마나 많은가. 이기주의와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한 오늘날 퇴계 정신에 입각한 인성교육과 섬김의 리더십이 인간성을 회복하는 길이다. 퇴계 선생을 현대와 연결하는 일을 하다 보니 매년 책을 한 권씩 정리하게 된다.

김병일 이사장은 “공직자는 부처 조직 차원에서 벗어나 국가와 국민을 위한 관점에서 일을 해야하지 않을까 싶다”고 조언했다. (사진=김태형 기자)


-도산서원은.

△서원은 조선시대 선비를 양성하기 위해 설립된 조선시대 사립학교다. 공립학교가 출세지향적으로 타락하니 제대로 된 선비를 육성하기 위해 새로운 교육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해서 서원이 만들어졌다. 솔선수범하는 선비 양성소를 만들려다 보니 롤모델을 정해야 했다. 지역별 연고가 있는 훌륭한 선현을 사당에 모시고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젊은이를 모아 의식개혁을 했다. 현인을 존중해 떠받들고 선비를 길러 백성을 감동하게 하는 게 주된 일이었다. 사립학교의 시작은 주세붕 선생이 했지만 이후 퇴계 선생이 소수서원 등을 만들며 확장에 힘썼다. 훌륭한 인물을 탄생한 곳에는 서원을 만들도록 강력히 촉구해 당시 18개 서원 중 11곳이 퇴계 선생과 인연을 맺은 곳이었다.

본인은 직접 도산서당을 열어 10년간 후학을 가르쳤다. 직접 설계하고 머물던 공간이었다. 세 칸 반짜리 공간에서 선생의 검소함을 배울 수 있다. 방 이름은 완락재(玩樂齋)다. 책을 장난감같이 즐겁게 본다는 의미다. 공부를 재미있어해야 평생공부가 되는 것이다. 퇴계 선생의 사후 채취와 정신이 살아 숨 쉬는 교육의 현장에 제자들이 사당을 만들어 위패를 모시고 그 앞에 공부하는 공간을 만들어 지금의 서원이 됐다.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에서는 누가 배우나.

△학생과 성인 모두가 대상이다. 인성교육과 선비정신을 중심으로 연간 20만명 이상이 수련에 참여하고 있다. 6월 10일 기준 누적 163만명이 수련을 받았다. 인성교육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기에 연령과 수준에 따라 반복적으로 수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최근엔 ‘찾아가는 선비수련’ 등 다양한 방식으로 교육을 확대하고 있다.

-지금 퇴계를 알아야 하는 이유는.

△퇴계 선생은 오늘날 우리가 겪는 불안과 갈등, 이기심의 시대에 지혜의 보고를 열어준다. 우리 사회는 풍요와 자유를 누리지만 행복은 멀어지고 자살률은 OECD 1위다. 원인은 이기심과 돈 중심의 가치관이다. 퇴계는 남을 배려하고 공동체를 중시하는 삶, 예의와 염치를 강조했다. 인공지능(AI) 시대,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따뜻한 마음과 인성이 더욱 중요해졌다. 아름다운 인성을 갖추는 것이 우리 모두의 과제다.

-퇴계가 살아계신다면 요즘의 세태를 어떻게 볼까.

△퇴계 선생은 조선시대에도 현실을 걱정했다. 지금의 각자도생과 공동체 해체를 안타까워하실 거다. 리더의 솔선수범과 민심의 순화가 중요하다고 강조하셨을 거다. 모든 이가 인격을 닦고 착한 사람이 많아지길 바랐던 퇴계의 정신이 지금 더욱 절실하다.

김병일 이사장이 예종석 명예대기자(한양대 명예교수)와 대담하고 있다. (사진=김태형 기자)


-팔순의 건강비법은.

△젊을 때부터 약골이었지만 규칙적인 운동과 산책, 스트레칭, 근력 운동을 꾸준히 해왔다. 도산서원에 내려가 자연과 퇴계의 가르침을 가까이하며 몸과 마음을 단련한다. 매일 자신을 성찰하고, 퇴계의 말씀을 되새기며 건강과 평안을 얻고 있다. 생활 자체가 건강 교실이다.

-이젠 모든 것이 퇴계 선생과 연결됐다.

△내가 좀 바뀐 거 같다. 도산서원에 오지 않았다면 지금 같지 않았을 거다. 고향이 경상도인데다 2대 독자다. 공직에서 나온 이후에 집에 있으면서 통하지도 않는 내 주장을 많이 했다. 공직에서 굳어진 스타일로 사람들을 대했다면 내가 이렇게 앉아 있을 수가 없었을 거다. 숯이 백목(白木)이 되겠느냐마는 계속 물을 부으면 숯도 깨끗해지지 않겠나. 거기에 콩나물을 두면 물은 다 흘러가지만 콩나물은 자란다.

■김병일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 △1945년 상주 △서울대 사학과 △서울대 행정대학원 △행시 10회 △경제기획원 예산총괄과장 △통계청장 △조달청장 △기획예산처 차관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 △기획예산처 장관 △한국국학진흥원장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 △도산서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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