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락] 기후위기 대응과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글로벌 규제가 강화되면서 전통적으로 탄소 배출이 많은 철강업계가 거센 압박에 직면하고 있다.
제품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에 비용을 부과하는 유럽연합(EU) 탄소국경제도(CBAM)가 내년부터 본격 시행되는 까닭이다.
여기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재집권과 동시에 철강 제품에 50% 고율 관세를 부과한 조치가 겹치면서, 국내 철강업계는 수출 시장에서 ‘이중고(二重苦)’를 겪고 있다.
미국의 경우 현지 공장 설립으로 일정 부분 회피할 여지가 있지만, EU의 탄소국경제도는 사실상 피할 수 없는 제도여서 부담은 더욱 가중될 전망이다.
<뉴스락>뉴스락>은 'EU판 관세'로 불리는 탄소국경제도의 시행을 앞두고, 국내 철강업계가 처한 현실과 향후 대응 전략을 짚어본다.
EU CBAM 3개월 앞...국내 철강업계 비상
EU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가 내년부터 본격 시행되면서 국내 철강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CBAM은 2021년 7월 유럽연합(EU)이 발표한 제도로, 제품 생산 과정에서 발생한 탄소 배출량에 따라 추가 비용을 부과하는 탈탄소 전략이다.
철강·시멘트·알루미늄 등 주요 수입 제품의 생산과정에서 발생한 온실가스 배출량을 기준으로 ‘탄소 비용’을 매기는 방식이다.
EU 역내 기업들은 이미 배출권거래제(ETS)를 통해 탄소 배출에 따른 비용을 부담해 왔다.
그러나 규제가 약한 국가에서 생산된 제품은 사실상 탄소 비용 없이 저가로 유럽 시장에 수출되면서 역내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형평성 문제가 제기됐다.
이에 따라 EU는 자국 기업 보호와 동시에 전 세계 산업계의 탈탄소화를 촉진하고, 규제가 느슨한 국가로 생산 거점을 이전하는 이른바 ‘탄소 누출’ 문제를 차단하기 위해 CBAM을 도입했다.
이 제도는 이미 2023년 10월 1일부터 전환기(임시 운영)에 들어갔다. 현재는 수입업자가 제품 생산 과정에서 발생한 탄소 배출량을 EU에 보고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지만, 2026년 1월 1일부터 정식 시행되면 배출량에 따라 ‘CBAM 인증서’를 구매·제출해야 한다.
정식 시행까지 석 달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국내 철강업계는 미국의 고율 관세에 더해 CBAM 인증서 구매 부담까지 겹쳐, 이중 리스크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한 철강업계 관계자는 "국내에서는 여전히 석탄 고로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를 전면 저탄소 설비로 전환하려면 막대한 비용이 소요돼 기업 입장에서는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철강업계 ‘수천억 부담’ 현실화... 포스코, 유럽 수출 비중 17%로 '직격타'
국내 철강업계의 유럽향 수출 규모가 늘어나는 가운데, CBAM 시행은 국내 철강업계의 어깨를 짓누른다.
CBAM이 시행되는 내년부터 탄소배출량 신고와 더불어 인증서까지 구매해야 한다.
유럽 기준 탄소배출권 가격은 1tCO2eq(이산화탄소 환산톤)당 75유로(한화로 약 12만 2033원)다. 석탄고로 방식의 경우 철강제품 1톤을 생산하는데 2tCO2eq의 탄소가 배출돼 150유로로 환산하고, 전기로는 0.4tCO2eq로 30유로로 계산된다.
<뉴스락>뉴스락>이 국내 철강업계가 지난해 유럽 수출 물량 기준으로 탄소 배출권 금액을 추산해보니, 약 1억5080만 유로(약 2461억810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철강의 유럽향 수출은 381만 4641톤이다. 이를 석탄 고로와 전기로 생산방식으로 각각 환산해 보면, 4548만 유로(742억 4610만원), 1억 532만 유로(1719억 3490만원)다.
올해 상반기만해도 수출물량은 170만 8491톤으로 약 1012억9662만원 어치의 CBAM인증서를 구매해야한다.
특히 유럽 수출 물량이 많은 포스코가 직격타를 맞을 것으로 분석된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포스코의 전체 매출 대비 유럽 수출 비중은 17%에 달한다. 현대제철 4.31%, 동국제강 9.02%(유럽을 포함한 해외수출 비중), 세아제강 3.31%로 등 경쟁사 대비 약 3~4배 차이를 보였다.
저탄소 전환 '속도'... 포스코·현대제철·동국제강 '총력전'
국내 철강업계들도 글로벌 친환경 경쟁력 갖추기에 급급하다. 일제히 저탄소 설비 투자와 연구개발을 가속화하고 있다.
포스코는 CBAM과 같은 국제 무역·환경 규제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포스코는 2022년 말부터 CBAM 대응 TF를 꾸려 유럽 시장 및 고객사들과의 벨류체인 전반에서 필수 정보를 수집하고 역할을 나눠 대비중이다.
또 경국 포항제철소 2파이넥스(FINEX) 공장을 연말에 폐쇄하며 수소를 환원체를 활용한 'HyREX(하이렉스)' 기술 개발에 속도를 올리고 있다. 이 기술은 기존 석탄을 이용해 철광석에서 쇳물을 뽑아내던 방식에서 탈피해 수소 환원채를 활용한다. 이로써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획기적으로 줄이겠다는 구상이다.
기존 고로 설비를 2050년까지 단계적으로 하이렉스나 유사한 저탄소 설비로 전환한다는 중장기 목표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전기로(EAF) 설비 확대 역시 병행중이며, 정부 및 산업부 등과의 협력 체계도 구축했다.
고준형 포스코경영연구원은 "탈탄소 기술발전이 가속화되면서 현재 주류 제법들이 대체 혹은 전환될 전망"이라며 "향후 철강업 미래 경쟁 우위는 연원료 저가소싱과 에너지효율 설비 확보에 좌우될 것"이라고 밝혔다.
현대제철은 전기로 방식 비중 확대 및 제품군의 저탄소화 전략을 추진중이다.
예컨대 자동차용 강판을 탄소 저감 공정으로 전환하고, 당진제철소 열연 박판 공장을 '탄소 저감 자동차강판' 생산 공장으로 개조해 내년 상반기부터 가동을 확대할 계획이다.
또한 현대제철은 EPD(Environmental Product Declaration, 친환경 제품 선언)인증을 받은 제품군을 늘려 특징 있는 저탄소 제품 포트폴리오를 강화하고 있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정부의 탄소 배출 목표치가 나오면 그에 맞춰 탄소 저감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며 "현재도 탄소배출량 감축을 위해서 전기로 방식 전환을 계속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동국제강 역시 'Steel for Green' 등의 중장기 프로젝트를 내세우며 탄소 배출 감축을 도모하고 있다.
동국제강은 2030년까지 탄소배출량을 2018년대비 약 10%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설정하고, 전기로 중심의 공정 전환 연구를 2028년까지 완료하겠다 밝혔다. 이에 더해 친환경 제품 개발에도 힘쓰고 있으며, 고철 재활용 및 에너지 효율 설비 확보 등이 주요 대응 과제 중 하나다.
현재 '하이퍼 전기로' 연구 개발에 속도를 올리고 있다. 해당 기술은 기존 전기로의 한계를 극복해 고로 수준의 품질과 생산성을 확보하면서 탄소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차세대 전기로다.
동국제강 관계자는 "하이퍼 전기로와 에코아크 전기로 개발에 몰두해 탄소배출 저감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업계에서는 정부의 지원 없이 기업들의 자구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한 업계 관계자는"HyREX 같은 수소환원제철은 상용화까지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필요하고, 전기로 전환도 고철 수급·전력, 비용·재생에너지 확보 등 난관이 있다"며 "결국 정부의 정책 지원 없이는 CBAM 대응에서 경쟁우위를 확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부 TF·K-스틸법 가동...한국 철강산업의 막판 시험대
국회도 철강업계 위기 대응에 나섰다.
지난 8월 발의된 'K-스틸법(가칭, 철강산업 경쟁력 강화 및 녹색철강 전환 지원법)'은 글로벌 규제와 내수 침체라는 이중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포괄적 지원책을 담고 있다.
이 법안은 ▲대통령을 위원장으로 하는 철강산업경쟁력강화특별위원회 설치 ▲5년 단위 기본계획 및 연도별 실행계획 수립 ▲녹색철강 기술 개발 및 특구 지정 ▲원료 및 전력 기반 확충 ▲불공정 무역 대응 ▲공공조달 시 녹색철강 우선 구매 ▲세제 혜택 및 보조금 지원 등을 망라한다.
범정부 차원의 종합 지원체계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만, 제도 시행을 불과 몇 개월 앞두고 마련된 만큼 ‘뒷북 대응’이라는 비판도 적지 않다.
산업통상자원부 역시 올해 1월부터 철강 산업 경쟁력 강화 TF팀을 가동해 설비 통폐합, 자발적 감산, 저탄소 설비 전환 인센티브 등 구조조정과 녹색 전환 방안을 동시에 논의 중이다.
조만간 발표될 개편안에는 ▲노후 고로(용광로) 감축 ▲전기로 전환 확대 ▲수소환원제철 기술 적용 로드맵 등이 포함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EU CBAM은 이미 2023년 전환기가 시작됐는데, 한국 정부가 TF를 꾸린 건 2025년 들어서”라며 준비 시점이 늦었다는 지적을 쏟아낸다.
무엇보다 정부 대책이 행정적 안내와 제도적 틀에 머물러 있어, 정작 필요한 설비 교체 투자 자금·전력요금 지원·R&D 보조금 같은 실질적 지원은 미흡하다는 우려가 크다.
익명을 요청한 철강업체 고위 임원은 "EU는 이미 2년 전부터 전환기를 운영해 왔다"며 "한국은 이제야 TF를 꾸리고 법안을 발의하는 수준이니, 업계 입장에서는 너무 늦은 대응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한 에너지·기후정책 전문연구원 역시 "국내 철강사들은 설비 교체와 친환경 전환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야 하지만, 정부 지원은 아직 선언적 수준"이라며 "실질적 재정 지원책이 빠지면 기업 가치는 오히려 훼손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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