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김지혜 기자] 우리나라 금융·외환시장이 다른 신흥국 평균보다 대외 충격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행은 시장의 깊이가 상대적으로 얕아 글로벌 리스크 확대 시 변동성이 더 크게 확대된다고 진단하며, 외환시장 구조 개선과 국제지수 편입 등을 통한 제도적 보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국은행이 22일 공개한 '금융·외환시장 심도를 고려한 정책대응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17개국을 대상으로 글로벌 위험회피 심리가 확대될 때 금융·외환시장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측정한 결과 우리나라는 신흥국 평균보다 민감도가 높게 나타났다. 조사 대상은 한국을 포함해 변동환율제를 운영하는 9개 신흥국과 8개 주요 선진국이었다. 분석 기간은 2004년부터 2024년까지 약 20년에 걸쳐 이뤄졌다.
한은은 글로벌 리스크 충격을 나타내는 지표로 '글로벌 위험회피 지수'를 사용했으며, 금융·외환시장의 반응 지표로는 'UIP(유위험 금리평형) 프리미엄'을 활용했다. UIP 프리미엄은 국내 경제주체가 대외 차입을 할 때 글로벌 투자자에게 지불해야 하는 추가 비용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글로벌 불안이 확대되면 자국 통화 가치가 하락하고 시장 금리가 상승하면서 UIP 프리미엄이 커지게 된다.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글로벌 충격 반응 계수는 2.11%포인트로, 신흥국 평균(1.68%포인트)보다 높았다. 이는 한국 금융·외환시장이 글로벌 불확실성이 확대될 때 더 큰 폭으로 흔들린다는 뜻이다. 특히 UIP 프리미엄이 다른 신흥국보다 빠르고 크게 확대되는 경향이 확인됐다. 한국은행은 이러한 현상이 우리 금융·외환시장의 심도가 충분히 깊지 않다는 사실을 방증한다고 분석했다.
시장 심도는 자산 매매가 활발히 이뤄지고 유동성이 풍부해 외부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한은은 보고서에서 "금융·외환시장의 심도가 얕은 국가는 글로벌 리스크 충격 시 실물 부문도 더 크게 위축된다"며 "외환 변동성이 커지면 투자와 소비가 둔화되고 금융비용이 증가해 경기 전반에 부담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은은 이러한 취약성을 완화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보고서는 "대외 충격이 국내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려면 금융·외환시장의 심도 개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정부가 현재 추진 중인 외환시장 구조 개선 방안과 2026년 예정된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이 심도 제고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외환시장 구조 개선 방안은 외환시장 개장 시간을 글로벌 수준으로 확대하고, 역외 원화거래 허용을 추진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 통해 해외 투자자의 원화 접근성을 높이고 거래 참여를 다변화해 시장 유동성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또한 세계 3대 채권지수 가운데 하나인 WGBI 편입이 현실화되면 국내 국채에 대한 해외 수요가 확대돼 외환시장 안정성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전문가들은 이번 분석이 우리 금융시장의 구조적 취약성을 드러낸 것이라고 평가한다. 한 금융연구원 관계자는 "한국은 대외 의존도가 높은 경제 구조와 짧은 외환시장 거래 시간, 제한된 유동성 때문에 글로벌 충격에 상대적으로 더 민감하다"며 "외환시장 개방 확대와 금융자산 투자기반 다변화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개방 확대 과정에서 자본 유출입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에 따라 외환당국의 시장 모니터링 강화와 거시건전성 정책 보완이 함께 추진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 다른 경제 전문가는 "WGBI 편입은 분명 외국인 자금 유입을 늘려 시장 심도를 높일 수 있지만, 글로벌 금리 변동과 위험회피 심리 확대 시 자금이 대거 빠져나가는 역효과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보고서는 한국 금융·외환시장의 현주소를 객관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글로벌 충격이 잦아지는 불확실성 환경에서 한국 시장의 변동성이 신흥국 평균보다 크다는 점은 정책 대응의 우선순위를 시사한다. 단기적으로는 외환시장 안정화를 위한 미시적 정책이 필요하고, 중장기적으로는 금융시장 인프라 확충과 국제 금융허브로서의 신뢰도 제고가 요구된다.
한국은행이 제시한 과제처럼 외환시장 구조 개선과 WGBI 편입이 현실화될 경우 시장 심도는 한층 강화될 수 있다. 궁극적으로는 글로벌 충격에 덜 흔들리는 금융·외환시장 체질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며, 이는 한국 경제의 대외 신뢰도와 안정성을 높이는 데 직결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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