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뿌리째 흔들어”…H-1B 수수료 인상이 불러온 파장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왼쪽)과 함께 백악관 집무실에서 행정명령에 서명하기 전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미국에 100만달러를 투자하면 영주권과 시민권 취득경로를 제공하는 ‘트럼프 골드카드’ 신설과 H-1B 비자 신청 수수료를 10만 달러로 인상하는 두 건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사진=게티이미지)

[이데일리 정다슬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H-1B 신규 비자 신청 수수료를 10만 달러로 대폭 인상하면서 인도 IT 업계가 직격탄을 맞았다. 인도 아웃소싱 대기업들의 미국 의존도가 높은 만큼, 현지 프로젝트 차질과 수익성 악화 우려가 커지면서 일본 기술주는 21일(현지시간) 일제 하락했다.

23일(현지시간) 블룸버그 등에 따르면 타타컨설턴시서비스(TCS) 주가는 장중 한때 3.4% 하락해 두 달 만의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인포시스는 3.9% 떨어졌고, 테크 마힌드라는 6.5% 급락했다. LTI마인드트리와 엠파시스 등 중형 IT 기업 주가도 한때 6% 하락했다.

인도 IT 서비스 업계는 글로벌 무역갈등으로 고객들의 기술 지출이 줄면서 이미 타격을 입은 상태였다. 올해 들어 IT 업종 지수는 15% 넘게 빠진 반면, 인도 대표 주가지수 니프티50(Nifty50)은 7% 상승했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주 행정명령을 통해 H-1B 비자 신청 수수료를 약 1000달러에서 10만 달러로 올리는 조치를 단행하며 인도 IT 아웃소싱 기업들의 비즈니스 모델의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H-1B는 매년 추첨을 통해 6만5000개의 일반 비자와 미국 석사 졸업자 대상 2만개의 추가 비자를 발급하는데, 인도 기업들이 주요 수혜자로 꼽힌다. 실제로 인도 출신 근로자는 2023 회계연도 H-1B 수혜자의 72%를 차지했다. 특히 이미 비자의존도를 상당수 줄인 HCL테크놀로지나 인포시스 등 대형 IT 기업에 비해 중소형 IT 기업들의 충격이 클 것이란 설명이다.

전 테크 마힌드라의 최고경영자(CEO)이자 현재 인공지능(AI)회사를 운영하는 찬더 프라카시 구르나니는 “이번 조치는 ‘지정학적 세력권 전쟁’”이라고 밝혔다. 그는 “미국이 전하는 메시지는 ‘유학생은 환영받지 못하고 외국인 근로자도 환영받지 못한다. 우리는 원하는 규칙을 부과할 것이고, 그것들을 일관되게 유지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에 양질의 일자리를 유지하려는 이번 조치가 역효과를 낼 가능성도 지목된다. 미국 기업들의 비용을 높이고, 이들이 인도에 ‘글로벌 역량 센터(GCC)’를 더욱 확대하도록 밀어붙일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골드만삭스, JP모건체이스, 모건스탠리 등이 이미 인도에 대규모 GCC를 운영 중이다.

블룸버그 인텔리전스 애널리스트인 아누라그 라나와 앤드루 지라드는 “기업들이 고비용의 미국 현지 모델을 택하거나, 대부분의 업무를 인도 등 해외에서 처리하는 저비용 오프쇼어 모델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엠케이 증권의 마다비 아로라는 “서비스 수출이 글로벌 무역·기술 전쟁에 본격적으로 휘말렸다”며 “단기 충격은 제한적일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 IT 기업 밸류에이션에 위험 프리미엄이 붙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