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이상명 기자] 미국과의 관세 협상 이후 지속되는 불확실성 속에서 국내 재계가 전략 산업 관세 완화와 비자 제도 개선을 강력히 요청하고 나섰다.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가 22일 개최한 국제통상위원회에서는 국내 주요 기업 대표들과 통상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한미 간 무역 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실질적인 방안들이 집중 논의됐다. 이번 회의는 정부와 기업 간 소통 창구 역할을 하면서 기업들의 목소리를 정부에 전달하는 자리로서 의미가 크다.
대한상의 국제통상위원회는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을 초청해 한미 간 관세 협상 이후 현안과 과제를 점검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 회의에는 이계인 포스코인터내셔널 대표, 박일준 대한상의 상근부회장, 김동욱 삼성전자 부사장, 염성진 SK수펙스추구협의회 부사장, 김동욱 현대자동차 부사장 등 대기업 주요 인사들이 참석해 무역 환경 변화에 따른 기업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했다.
이계인 국제통상위원장은 인사말에서 "미국의 잇따른 관세 조치와 통상정책 변화로 인해 한국 기업들은 상당한 긴장 상태에 놓여 있다"면서도 "한미 정상회담과 관세협상을 통해 불확실성 일부가 해소됐지만 미국 내 한국인 근로자 비자 문제 등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언제든 발생할 수 있어 기업들이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기업들은 특히 조선, 원자력 등 미국 내 공급망이 완전하게 구축되지 않은 전략 산업에서 관세 부담이 국내 산업 경쟁력을 크게 저해할 것이라 우려하며 조속한 관세 유예와 면제를 정부에 강력히 건의했다. 이들 산업은 미국 내 생산 여력이 부족해 국내 공급망이 이를 보완하는 역할을 맡고 있어 관세 장벽 완화 없이는 글로벌 경쟁에서 불리해질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또한 반도체를 비롯한 주요 품목에 대한 세부 관세 확대가 예고된 상황에서 가격 경쟁력 약화 우려가 커지는 만큼, 정부가 품목별 관세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대응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는 요구도 제기됐다. 특히 국내 기업들의 대미 투자가 늘어나는 만큼, 인력과 비자 관련 제도 개선도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한 참석 기업 관계자는 "미국 현지에서 초기 운영 인력을 확보하는 데 있어 ESTA나 B1 비자는 실제 근무에 제한이 크고, H-1B 비자는 쿼터 제한과 복잡한 발급 절차 때문에 현장 인력 수급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마스가(MASGA) 프로젝트 등 전략 산업 전문 인력에 대해 별도 비자 신설과 쿼터 확대, 발급 절차 단축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김종덕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무역통상안보실장은 "미국의 통상정책이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 일방주의적 성격을 띠고 있어, 관세와 무역 규제의 불확실성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크다"며 "이런 불확실성은 글로벌 무역 위축과 환율 변동성 확대를 야기할 수 있어 기업들은 단기적 대응뿐 아니라 공급망 다변화와 생산성 향상 등 중장기 전략 마련에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대한상의 국제통상본부 윤철민 본부장은 "대한상의는 기업들의 목소리를 정부와 정책 결정자에게 적극적으로 전달하며, 안정적인 통상 대응 환경을 조성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오는 25일 개최되는 '미국진출 한국기업 HR 현지화 가이드 세미나' 등 실무 지원 프로그램을 지속 확대해 기업 현장의 애로 해소에 앞장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번 한미 관세 협상은 한국 산업계에 있어 단순한 무역 문제를 넘어 전략 산업 경쟁력 유지와 직결된 중대한 사안이다. 미국이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자국 산업 보호를 강화하는 가운데, 조선과 원전 등 핵심 산업에서 한국 기업들의 미국 내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지만, 관세 문제는 경쟁력 확보에 걸림돌로 작용할 우려가 크다.
반도체 산업 역시 관세 확대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국내 기업들의 수출 경쟁력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관세 부담 증가가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경우 글로벌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고, 이는 결국 한국 제조업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인력 운용에 필수적인 비자 발급 지연과 쿼터 제한 문제는 현지 사업 확대에 장애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 내 인력 부족 현상과 맞물려, 효율적 인력 수급을 위한 비자 제도 개선 요구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국내 기업들은 미국 정부가 전략 산업에 대해 보다 유연한 관세 정책과 함께, 전문 인력의 원활한 이동을 보장할 수 있는 비자 제도 개선 방안을 시급히 마련해 줄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이는 단기적으로는 기업의 경영 안정과 수출 경쟁력 강화, 장기적으로는 한미 경제 협력 강화 및 글로벌 공급망 안정성 확보에 핵심적 요소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번 국제통상위원회 회의는 한미 간 통상 현안이 기업 현장에 미치는 파급력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미국의 일방적인 통상 정책 변화에 따른 불확실성이 여전한 상황에서 한국 기업들이 지속 가능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정부와의 긴밀한 협력과 실효성 있는 대응책 마련이 무엇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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