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양우혁 기자】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자 선정이 또다시 무산됐다. 국내 기술로 건조하는 국가급 프로젝트지만, 사업자 선정이 계속 미뤄지면서 해군 전력화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22일 방산 업계에 따르면 방위사업청은 KDDX 최종 사업자 선정 안건을 방위사업기획관리분과위원회에 상정하지 않기로 했다. 당초 지난 18일 회의에서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됐지만, 회의를 불과 이틀 앞두고 방사청 출입기자단 문자 공지를 통해 보류 방침을 알린 것으로 전해졌다.
KDDX는 오는 2030년까지 총 7조8000억원을 투입해 6000t(톤)급 차세대 구축함 6척을 건조하는 사업이다. ‘미니 이지스함’으로 불리는 이 함정은 최신 국산 전투체계를 탑재해 해상·공중 위협에 대응하도록 설계됐다. 현재 해군이 운용 중인 세종대왕급(7600t급) 이지스함보다 규모는 작지만, 국산 기술 비중을 크게 높여 독자 전력 운용 능력을 강화하는 데 목적이 있다.
방사청은 최근 HD현대중공업과의 수의계약 안건을 상정하려 했지만, 분과위 민간위원 일부의 반대와 더불어민주당의 상생협력 논의 요구로 결국 무산됐다. 앞서 방사청은 지난 3월과 4월, 8월에도 같은 안건을 상정하지 못했다. 2023년 12월 기본설계가 완료된 이후 후속 절차는 2년 가까이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KDDX 사업 지연의 원인은 두 조선사의 대립이다. 기본설계를 맡은 HD현대중공업은 후속 단계까지 수의계약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한화오션은 경쟁입찰 원칙을 내세우며 맞서고 있다. 방위사업청은 두 회사의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한 채 난처한 상황에 놓여 있다.
통상적으로는 기본설계를 맡은 HD현대중공업과 수의계약으로 후속 단계가 이어지는 것이 관례였다. 다만 2022년 직원들의 군사기밀 유출 사건이 드러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도덕성 논란과 법적 공방이 이어지자 ‘특혜 계약은 안 된다’는 여론이 커졌고, 경쟁입찰 요구가 본격화됐다.
문제는 지연이 길어질 경우 해군 전력 보강 일정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이다. KDDX는 2028~2030년 퇴역이 예정된 기존 구축함을 대체하기 위해 추진된 사업인데, 현 속도로는 제때 배치가 어렵다는 전망이 방산 업계에서 제기된다. 북한의 잠수함 전력 강화와 중국·일본의 해군력 증강 움직임을 고려할 때, 해상 방위력 확보에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방산업계 관계자는 “해군 전력화는 이미 크게 늦어졌다”며 “계약이 계속 지연되면서 해군 작전 공백이 불가피하고 협력업체들도 무작정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업체 간 갈등이 아니라 정부의 원칙 부재와 책임 회피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한다. 상지대 최기일 군사학과 교수는 “KDDX 지연은 전형적인 방위사업청의 직무유기 사례”라며 “2년째 해군 전력 공백이 이어지고 있는데도 결정을 미루는 것은 국민 안보를 외면하는 행위로서, 감사원 특별감사와 손해 발생 시 구상권 청구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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