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반룡의 게임애가] 배움 다음에는 비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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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반룡의 게임애가] 배움 다음에는 비움

경향게임스 2025-09-22 10:15:26 신고

3줄요약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에게는 친구 같은 조력자 무학대사가 있었다. 무학대사는 숭유억불 정책을 시행한 조선에서 유일하게 왕의 스승이라는 의미인 왕사였으며, 조선 건국과 한양 천도에도 관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무학대사와 태조 사이에는 유명한 일화가 많다. 태조의 꿈을 해몽해 왕이 될 것이라고 예언한 이야기나 경복궁의 터를 잡을 때 인왕산을 뒤로해 지으라 했으나, 정도전이 반대하여 북악산을 뒤로 하고 터를 잡자 200년 뒤에 내 말을 떠올릴 것이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200년 뒤에는 임진왜란이 있었다. 그 밖에도 태조의 건원릉 자리를 잡아주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님 눈에는 부처님만 보인다는 말도 무학대사가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태조와 무학대사 사이의 많은 이야기 중에 집터와 관련하여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태조와 무학대사가 같이 길을 가다가 한 농부가 산 밑에 집을 짓는 것을 보았다. 풍수지리에 해박한 무학대사가 집터가 좋아 3년 안에 농부가 큰 부자가 될 것이라고 예언하면서, 그 자리가 큰 기와집이 들어설 자리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태조가 저곳은 몇 년 안에 폐허가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래서 두 사람은 누구의 말이 맞는지 내기를 했다. 3년 후 그곳을 찾은 무학대사는 그 집이 폐가가 되어 있는 것을 보고 크게 놀랐다. 이 사실을 태조에게 전하자 태조는 무학대사가 풍수지리에는 밝지만, 대세를 판단하는 것에 약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태조의 설명은 그곳이 폐허가 된 것은 대사의 예언이 맞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태조는 대사의 예언대로 농부는 부자가 되었을 것이지만, 부자가 된 농부는 더 이상 그런 산 밑에서 살고 싶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아마 농부는 근처 큰 마을에서 부자로 잘살고 있을 것이며, 그 집은 버려져서 폐허가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많은 창업, 투자 관련 글을 읽다 보면, 이 이야기를 소개하는 글을 자주 본다. 무학대사가 집터가 부자가 될 자리라는 것을 아는 것이 배움의 영역이라면, 그 다음 그 집터가 폐허가 될 것을 예상하는 것은 비움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배운 것을 비워야 비로소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다는 설명이다. 바둑에서는 이를 통유(通幽)라는 이름으로 설명한다고 한다. 현재의 자신을 넘어 기존의 틀을 깨고 나와 보이는 것 너머의 흐름을 볼 수 있는 단계라는 의미라고 한다. 알고 있는 사실을 결합이 지식이라면, 그 너머의 흐름을 아는 것을 보통 지혜라고 부른다. 지식에 갇히지 않고, 깨고 나와야 지혜를 얻을 수 있다는 뜻이며, 현재의 자신이 가진 틀을 깨야 새로운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의미이다.

가끔 영화나 드라마 중에는 각각의 요소는 매력적이고 좋은데, 전체 이야기는 너무 산만하고 집중이 안되는 경우가 있다. 게임도 종종 너무 많이 담아서 즐기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최근 약 300시간 정도 한 게임을 플레이하다 문득 해야 할 것은 많은데, 정작 하는 것이 즐겁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나 모든 콘텐츠를 전부 클리어하겠다는 마음을 내려놓고 마음 가는 부분만 골라서 하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게임이 다시 재미있어졌다. 제작하는 사람이 너무 많은 것을 담고자 하는 욕심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구 넣으면, 정작 중요한 이야기가 전달되지 않는다. 아직 제작하는 사람이 비움으로 가지 못한 것이다. 이는 영화나 게임을 제작하는 제작자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나 역시 20년 넘도록 게임과 관련한 일을 해왔고, 나름 게임에 대해서 좀 안다고 자부해 왔지만, 최근 나와 내 글이 너무 과한 욕심으로 채워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비움이 필요한 것은 아닌지 생각한다. 달도 차면 기울고, 극이 있으면 반이 있는 것처럼, 나도 기존의 틀을 깨고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반성도 한다. 배움 다음에는 비움이 필요하고, 비워야 새로운 것을 채울 수 있다.

※ 외부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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