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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필자가 경험한 카드사의 프리미엄 상담 서비스가 이를 잘 보여준다. 상담원은 단순히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았다. 정성껏 질문을 들어주고 불편을 진심으로 공감하는 등 말투와 태도에서 세심한 배려가 느껴졌다. 전화를 끊고 난 뒤 남은 건 단순한 ‘문제 해결’의 만족감이 아니었다. 누군가 나의 마음을 존중해줬다는 따뜻한 기억이었다. 이는 AI가 아무리 많은 데이터를 학습해도 완벽히 구현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친절한 말투’를 흉내낼 수는 있어도 진심 어린 감정의 온기를 불어넣는 건 인간만이 가능한 일이다.
비슷한 경험은 다른 곳에서도 했다. 한때 필자는 대체육 기업에 투자했다가 크게 손해를 본 적이 있다. 인공고기는 영양과 맛에서 상당한 수준까지 고기를 따라잡았지만 결국 ‘진짜 고기’를 대신하지 못했다. 사람들에게 고기의 즐거움은 혀끝의 자극만이 아니다. 불판 위에서 지글거리는 소리, 고소한 냄새, 친구들과 함께하는 분위기 같은 총체적 감각이 어우러질 때 비로소 완성된다. 인간은 단순한 ‘기능적 대체’에 만족하지 않는다. 감각의 결핍은 결코 채워지지 않는다.
이 대목에서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일상적 사색을 콘텐츠로 풀어내는 서비스 ‘롱블랙’을 만든 임미진 대표다. 그는 “감각을 자본으로 본다”는 관점을 제시했다. 산업화 시대의 자본이 땅과 노동, 자본금 같은 물질적 요소였다면 정보화 시대에는 데이터와 네트워크가 새로운 자본이 됐다. 이제 AI 시대에 들어서면 감각과 감성이야말로 가장 희소한 자산이 된다. 기술은 무한히 진화할 수 있어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감각적 경험은 여전히 인간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을 떠올려 보자. 단순히 배를 채우는 기능이라면 동네 식당도 충분하다. 하지만 파인다이닝이 주는 가치는 음식의 맛을 넘어 조명, 음악, 서비스가 어우러져 빚어내는 감각적 경험이다. 고객이 지불하는 돈은 단순한 식사 비용이 아니라 ‘감각의 가치’다. 패션, 음악, 디자인, 서비스 산업이 모두 이 원리를 따른다. AI가 발전할수록 오히려 인간의 감각적·정서적 경험을 설계하는 분야는 더 큰 가치를 얻게 될 것이다.
이 ‘감각 자본’은 예술이나 럭셔리 산업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의료 현장에서 환자를 치유하는 것은 약물만이 아니라 의료진의 따뜻한 말 한마디다. 교육에서도 지식 전달은 AI가 대신할 수 있지만 학생의 불안을 달래고 자신감을 북돋는 일은 교사의 몫이다. 금융 서비스 역시 단순한 문제 해결을 넘어 인간적 배려를 통해 고객 충성도를 높인다. 결국 감성의 차별화가 곧 경쟁력으로 이어진다.
앞으로 기업과 개인이 마주해야 할 질문은 분명하다. “우리는 사람들의 감각과 감성을 어떻게 자본화할 것인가.” 기능적 효율성만 추구한다면 결국 AI가 대체한다. 그러나 감각적 경험과 감성적 울림을 제공할 수 있다면 그것은 AI 시대에도 여전히 빛나는 가치다.
더 나아가 감각 자본은 개인을 넘어 사회적 관계와 공동체 경험으로 확장할 수 있다. 디지털 사회가 점점 개인화되고 고립을 심화시킬수록 사람들은 오히려 ‘함께하는 경험’을 갈망한다. 결국 AI가 아무리 발달해도 사람 사이의 감정적 유대와 배려의 가치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단순히 기능에 만족하는 존재가 아니라 느끼고 감동하는 존재다. AI 시대에 살아남는 힘은 기술의 속도가 아니라 마음의 깊이에 달려 있다. 이제 인간다움은 곧 가장 귀하고 값비싼 자산이다. 기능의 시대를 넘어 감각의 시대가 온다. 이것이 우리가 맞이할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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