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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부국제)가 열리고 있던 지난 20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모처에서 만난 이종필 감독은 ‘극장의 시간들’의 부국제 초청 및 상영을 기념해 현장 취재진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극장의 시간들’은 국내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예술영화관 씨네큐브가 개관 25주년을 맞아 극장이라는 공간의 의미와 예술영화의 가치를 새롭게 조명하기 위해 제작한 작품이다.
‘극장의 시간들’은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탈주’, 드라마 ‘박하경 여행기’를 만든 이종필 감독의 단편 ‘침팬지’, 영화 ‘우리들’, ‘우리집’을 거쳐 최근 신작 ‘세계의 주인’으로 제50회 토론토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인 플랫폼 섹션에 국내 최초로 초청된 윤가은 감독이 만든 단편 ‘자연스럽게’ 두 편을 엮은 앤솔로지 영화다. 앤솔로지’는 하나의 주제로 여러 감독이 만든 영화를 묶은 것을 뜻하는 개념이다.
‘극장의 시간들’은 올해 부국제 ‘한국영화의 오늘-파노라마’ 섹션에 초청돼 지난 19일 부국제에서 국내 최초로 상영됐다.
이종필 감독이 연출한 ‘침팬지’는 2000년 광화문에서 우연히 만나 미스터리한 침팬지 이야기에 빠져드는 세 영화광의 이야기를 담았다. tvN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미생’, 영화 ‘마약왕’, ‘내부자들’의 배우 김대명과 이 작품을 통해 처음 연기에 도전한 뮤지션 원슈타인,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 영화 ‘기적’, ‘침묵’의 배우 이수경과 청룡영화상 신인남우상 수상자인 영화 ‘탈주’, ‘화란’의 배우 홍사빈이 출연했다.
이종필 감독은 단편 ‘침팬지’의 작업 계기를 묻자 “씨네큐브 측에서 개관 25주년을 기념해서 극장 소재로 단편을 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홍보 영화가 아니라 극장이란 소재만 담겨있다면 어떤 것이든 좋겠다, 자유롭게 해보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에 응하게 됐다”고 말문을 열었다.
‘침팬지’는 이종필 감독 자신의 실제 경험과 감정을 담아 만든 자전적 작품이라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그는 “‘침팬지’란 영화는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실제 제가 경험 한 일들을 담은 것”이라며 “실제 씨네큐브가 개관했던 2000년 그 시절에 맞춰서 말이다. 제가 당시 20대 초반이었는데 당시에 우연히 알게 된 침팬지가 있었다. 침팬지와의 서사가 참 긴데 농담이 아니라 진짜 있었던 일이 맞다. 영화 속 주인공이 침팬지에 관해 접한 이야기가 실제 내가 읽은 책 안에 있었고 동물원에서 침팬지를 보고 영화처럼 사육사님과 질문과 대화를 나눈 기억도 있다. 그 후 시간이 지나 다시 우연히 그 책을 봤는데 내가 봤던 이야기가 사라져 있어서 혼란스러웠다. 그 모든 서사 자체는 실제 있었던 것이고 아주 오래 전의 일”이라고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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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자신의 경험을 영화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한 과정에 대해선 “스스로 혼란스럽고 정리가 잘 안 됐다. 그 후 시간이 흘러 그 일을 잊고 살아왔는데 올해 4월경 우연히 누구랑 이야길 나누다가 그 때 그 책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며 “‘아 맞아 이런 일이 있었어’, 그렇게 이야기를 들은 지인이 이야기 자체가 뭔가 묘하다고. 어떤 방식으로든 그 이야기를 남기면 좋겠다고 권유하더라”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그러던 중 마침 이 기획으로 전화가 받으면서 극장을 소재로 한 작품으로서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관객분들 입장에선 침팬지가 극장과 무슨 상관이지 할 수 있으신데 침팬지를 보고 읽었던 그때가 허무하게 방랑하던 시절이었고. 그때 주로 예술영화를 많이 봤던 시절이라 개인적으로 맞닿는 측면이 있었다. 내 스스로 정리하지 못했던 실제 일을 극장을 소재로 녹여내니 어떤 식으로든 정리가 됐다”고 고백했다.
실제 절친한 친구이기도 한 김대명이 감독이 된 주인공 ‘고도’ 역으로 열연을 펼쳤다. 이종필 감독 스스로를 투영한 캐릭터이기도 하다.
이 감독은 김대명에 대해 “김대명은 2012년 처음 만나 오래된 인연이다. 예전에 김대명 배우를 작품 오디션을 봤다가 떨어뜨린 적이 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 배우에 대한 관심이 덜했다”면서도, “시간이 흘러 우연히 어떤 자리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생겼는데 말이 잘 통하더라. 저와 김대명 둘 다 20대 초반 시절 광화문을 배회하며 영화 잡지 찾아보고 책 찾아보고 극장 주변을 서성이던 이야기들을 나누다 친구가 됐다”고 인연을 밝혔다.
그는 “친구이니 뭔가를 같이 하면 좋겠다는 마음은 늘 있었는데 말처럼 쉽게 되진 않더라. 그러다 ‘침팬지’의 주인공이 날 투영할 수밖에 없던 캐릭터라 생각하며 썼는데, 막상 쓰다 보니 내가 아닌 거 같더라. 이건 누굴까 가만히 생각하는데 이상하게 대명이가 머릿 속에 아른거렸다”고 회상했다. 이어 “곧바로 전화해서 ‘내가 뭘 쓰고 있는데 자꾸 네가 생각난다, 널 생각해서 써도 되냐’ 물었다. ‘어어’ 대답하기에 그렇게 썼다”며 “나로선 무슨 티가 나는지 모르지만 김대명이 나름 나랑 캐릭터의 연결성을 맞추려 살을 찌웠다고도 하더라”는 비하인드를 덧붙였다.
한국 영화 위기에 대한 생각도 솔직하게 밝혔다. 이 감독은 “올해 유독 기념일이 많더라, 씨네큐브도 25주년, 부산 영화제도 30주년”이라며 “90년대 후반부터 시작해서 2003년 한국영화 르네상스라는 가시적인 발전이 있었고, 실제 그 시기 뜨거운 영화도 많이 나왔는데 올해 이렇게 기념일을 챙기면서 막 심기일전해 보자는 의미 같다, ‘힘들다’는 상태도 지금 시점에선 지나간 이야기 같고, 이제는 다시 ‘으쌰으쌰’ 해보자는 분위기다, 이 계기로 온도가 뜨거워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진심을 전했다.
‘극장의 시간들’은 부국제 상영 후 내년 상반기 중 극장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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