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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주 법무법인 안다 대표변호사·안다상속연구소장] 우리 사회에서 노후 대비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되었다. 국민연금이라는 공적 제도가 존재하지만, 그 지급액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래서 개인연금, 퇴직연금, 주택연금 등 다양한 제도의 활용이 강조된다. 특히 주택연금은 우리나라처럼 주거 중심의 자산 구조를 가진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제도이지만 많이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대다수 사람이 집을 마련하기 위해 평생을 노력하고, 노후에는 이를 담보로 일정한 현금을 받을 수 있게 하는 주택연금이야말로 ‘현금 흐름의 안정성’을 보장하는 가장 좋은 연금이다.
그러나 현실의 주택연금 제도는 여러 제약으로 인해 ‘보편적 제도’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현행 규정에 따르면 공시가격 12억원이 넘는 주택은 연금 가입이 불가능하다. 이는 고가 주택을 보유한 은퇴자들에게 사실상 제도 접근을 차단하는 장벽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고가 주택을 가지고 있다고 하여 모두 현금 자산이 많다거나 흐름이 좋다고 보기 어렵다. 고가 주택을 가진 사람들은 더 많은 재산세나 종합부동산세, 그 이전에 소득세도 많이 낸 사람들이다.
2024년 10월 신문 기사에 부산에 사는 70대 노인이 시가 8억원이 넘는 아파트를 가지고 있었지만, 공과금조차 내지 못할 정도로 생활고를 겪다가 고독사한 사례가 나온 적이 있다. 이 노인은 ‘깡통 할아버지’라고 불리며 주변의 도움을 거절했고, 결국 사회복지사에 의해 사망한 지 며칠이 지나서 발견되었다. 이 사례는 주택연금 등의 제도를 이용하지 못하거나, 자산을 현금화하지 못해 발생하는 ‘자산은 있으나 현금이 없는(Asset-Rich, Cash-Poor)’ 노인의 비극적인 현실을 보여준다. 이러한 노인들이 나오는 이유는 자산의 유동성 문제에 대한 정보 부족 및 복지의 사각지대가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은 현금과 달리 유동성이 낮아 당장 현금화하기 어렵다. 그리고 주택연금과 같은 제도를 이용하지 못하거나, 주택을 처분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인 노인들은 자산이 있어도 실질적인 생활고를 겪을 수 있다.
주택연금은 본질적으로 주택을 자산으로 가진 노인이라면 누구든 활용할 수 있는 제도여야 한다. 하지만 현재의 제도는 ‘주택 가격’이라는 기준으로 차별을 두고 있다. 12억원 이상의 주택은 재산이 많으니 굳이 연금으로 생활 보장이 필요가 없다는 정책적 판단이 깔려 있다. 그러나 이는 현실과 괴리가 있고, 헌법상 평등의 원칙에도 반한다.
우선 12억원 이상의 주택을 소유했다고 해서 곧바로 현금 유동성이 충분하다고 볼 수 없다. 서울 및 수도권의 집값은 급격히 상승했지만, 그 집에 거주하는 노인 세대는 현금 수입이 거의 없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평생 살던 집을 팔고 다른 동네로 이사 가라고 강요할 수 없다. 이들의 행복추구권과 인격권도 보호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평등 원칙에 반한다. 국민연금은 소득과 재산에 따라 차별 없이 모든 가입자가 수령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주택연금도 주택 가격에 따른 제한 없이, 일정 범위 내에서 누구나 활용할 수 있어야 제도여야 정당성을 가질 수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정책을 고려해 볼 수 있다. 12억원 이상의 주택도 주택연금의 혜택을 주되, 연금 지급액의 상한을 두는 것이다. 만약 주택 가격이 20억원이라고 하더라도 연금지급은 현행 제도하에서 설정된 12억원 기준 한도 내에서 지급하면 된다. 12억원 이상의 주택에 대하여는 연금지급비율을 낮추거나 수수료를 추가하여 공평성과 재정안정성을 동시에 확보하는 방법도 있다. 아니면 지역별로 아파트 금액의 차이가 크므로 지역별로 금액 한도의 상한을 달리하는 것도 방법이다. 지역별 평균 주택가격이나 중위 가격을 고려하여, 가입 한도를 차등적으로 설정하는 방안도 제안해 본다.
이러한 주택연금 제도의 확대는 우리 사회의 노후 안전망을 더 튼실히 할 수 있다. 고가 주택 보유자라 하더라도 ‘현금 소득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상황을 줄일 수 있다. 국민연금을 과연 나중에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불신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주택연금이 보편적이고 공정하게 운영된다면 전체 연금제도에 대한 신뢰도 높아진다. 고령 주택 소유자가 더 많은 소비를 함으로써 경제를 더 활성화거나 자산의 유동화로 인하여 투자도 더 많아질 것이다.
주택연금제도는 주택을 소유한 누구나 활용할 수 있는 연금제도가 되어야 한다. 12억원의 상한선을 폐지하거나 지급 한도를 조정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보완하자. 노후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중대한 국가 과제가 되었다. 주택연금이 형평성과 보편성의 원칙 위에 서게 될 때, 우리의 노후는 보다 안정되고 품격 있게 보장될 수 있을 것이다.
■조용주 변호사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사법연수원 26기 △대전지법·인천지법·서울남부지법 판사 △대한변협 인가 부동산법·조세법 전문변호사 △안다상속연구소장 △법무법인 안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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