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락] 중국발 C커머스는 2020년대 초 국내 시장에 본격 유입된 이후, 지난 2023년을 기점으로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알·테·쉬'(알리익스프레스·테무·쉬인)로 대표되는 C커머스는 초저가와 무료배송을 내세운 공격적 마케팅으로 단기간 수백만 이용자를 확보하며 시장 판도를 흔들었다.
하지만 성장의 이면에는 배송 지연, 품질 불신, 개인정보 유출 등 논란이 뒤따르며 '싼값 직구'의 그늘도 드러났다.
초기 확산이 '가격 공세'와 '불신'이 교차한 1차전이었다면, 지금은 국내 법인 설립과 정부의 규제 논의가 맞물리며 2차전에 접어든 양상이다.
시장 외곽에서 공습을 감행했던 C커머스가 이제는 제도권 경쟁의 한복판으로 들어서고 있다는 것이다.
이 변화가 국내 온라인 커머스 생태계에 어떤 지각변동을 일으킬지 <뉴스락>이 살펴봤다.
폭발적인 성장과 드러난 그림자
중국발 C커머스는 등장 초기부터 '저가'와 '무료배송'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앞세워 국내 전자상거래 지형을 흔들었다.
'알·테·쉬(알리익스프레스·테무·쉬인)'로 불리는 C커머스 3사는 지난 2023년을 기점으로 국내 시장에 본격 상륙하며, 단기간에 수백만 명의 이용자를 끌어 모았다.
파급력은 수치로도 드러났다.
앱·리테일 분석서비스 와이즈앱 리테일에 따르면 올해 6월 기준 국내 스마트폰 이용자의 47.1%가 알·테·쉬 앱 중 최소 한 개 이상을 설치한 것으로 집계됐다.
거의 절반에 달하는 이용자가 C커머스를 경험한 셈이다.
개별 플랫폼별로는 알리익스프레스 월간 활성 이용자(MAU) 약 905만 명, 테무 약 800만 명으로 나타났다.
해외직구 통계도 유사한 흐름을 보여준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2분기 해외직구 금액은 2조149억 원으로 분기 기준 사상 최초 2조 원을 돌파했으며, 이 중 중국산 비중은 61.4%(1조2373억 원)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소비자를 끌어들인 요인은 분명했다.
1~2달러대 초저가 상품, 무료·극저가 국제배송, 첫 구매 무료·대규모 할인 쿠폰과 같은 공격적 마케팅이 결합하며 특히 20~30대 젊은 층 유입이 두드러졌다.
그러나 화려한 입성 뒤에는 그림자도 뚜렷했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국제거래 상담 건수는 2023년 1만9418건으로 전년 대비 16.9% 증가, 알리익스프레스 관련 상담은 2022년 228건에서 2023년 673건으로 세 배 가까이 늘었다.
불만 유형은 ▲환불·취소 지연(38.7%), ▲미배송·오배송(13.6%), ▲품질 불만(11.7%) 순이었다.
개인정보 유출 문제 역시 꾸준히 도마에 올랐다.
신순교 한국플랫폼사업자협회 국장은 "중국 이커머스의 시장 장악 속도가 걷잡을 수 없는 수준"이라며 "국내 입점 판매자들의 매출이 10~15%가량 감소하는 등 파급력이 현실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법인·현지화로 발 넓히는 C커머스
중국발 C커머스는 최근 단순한 '싼값 직구' 단계를 넘어 한국 법인 설립과 현지화 전략으로 제도권 시장에 발을 들이고 있다.
쉬인이 세 업체 중 가장 먼저 움직였다.
지난 2022년 한국 법인 설립 이후, 지난해에는 한국 전용 홈페이지와 서브 브랜드 ‘DAZY’를 선보였다.
이어 배우 김유정을 모델로 기용하고 성수동 팝업스토어를 운영하는 등 오프라인 접점까지 넓히며 현지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특히 SNS를 통해 확산된 '쉬인 하울(SHEIN Haul)' 콘텐츠가 Z세대 사이에서 빠르게 퍼지며 신규 이용자 유입을 견인했다. '하울'은 한 번에 구매한 상품을 언박싱하고 착용 후기를 공유하는 SNS 콘텐츠를 뜻한다.
알리익스프레스는 올해 3월 '알리익스프레스코리아 유한회사'로 전환하며 한국 법인 체제를 갖췄다.
이어 지난 18일에는 신세계그룹과 손잡고 'G마켓–알리익스프레스 합작법인'을 출범했다.
공정거래위원회 승인 과정에서 데이터 관리 개선 등 자진시정조치를 조건으로 내걸며, 제도권 안착을 위한 첫 시험대를 통과했다.
회사 측은 이번 합작으로 G마켓의 60만 셀러·2000만 개 상품이 알리바바 네트워크를 타고 동남아 5개국 진출을 시작했고, 장기적으로는 200여 개국·지역 확대하겠다고 설명했다.
알리익스프레스 관계자는 "신세계그룹 및 G마켓과의 협업을 통해 한국 내 상품 라인업을 확대하고 소비자 편익을 늘릴 것"이라고 말했다.
테무는 지난해 2월 한국 법인 '웨일코코리아'를 설립한 데 이어, 올해 초 한국 판매자 대상 '로컬 투 로컬(Local-to-Local)' 모델을 공식 도입했다.
로컬 투 로컬이란 현지 재고와 주문·배송 역량을 갖춘 판매자가 직접 입점할 수 있도록 한 구조다.
이를 통해 테무는 기존의 중국발 직구 이미지를 넘어, 국내 판매자와 소비자를 직접 연결하는 구조를 강화하고 있다.
테무 관계자는 "국내 판매자들의 플랫폼 입점으로 소비자들은 현지 브랜드 제품을 쉽게 구매할 수 있고, 판매자들은 수백만 명의 신규 고객과 연결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변화를 단순한 해외 직구 플랫폼 차원을 넘어선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 시장에서 정식 사업자로의 전환을 노린 제도권 편입 움직임이라는 평가다.
다만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정연승 단국대 경영학부 교수는 "중국 이커머스의 공습으로 국내 기업의 위기가 심화되고 있다"며 "소비자 보호와 개인정보 관리 강화, 한국 상품의 해외 판매 채널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화되는 규제, 공정 경쟁의 시험대
그간 C커머스는 국내 법적 규제의 사각지대에 머물며 소비자 보호와 공정 경쟁에서 허점을 드러냈으나 최근 상황은 달라졌다.
실질적인 제재가 이어지면서 '규제 논의'가 아닌 '규제 현실화' 단계로 넘어간 것이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지난해 알리익스프레스가 국내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무단으로 해외 이전한 사실을 적발해 약 20억 원 규모의 과징금과 과태료를 부과했다.
올해 5월에는 테무 운영사 웨일코코리아에 대해서도 동의 없는 개인정보 보관·이전 등 위반 행위가 확인돼 13억 원대 과징금이 내려졌다.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 역시 허위 '상시 할인' 표시 문제로 제재에 나섰다.
공정위는 지난 6월 테무에 3억 원대 과징금과 시정명령을, 9월에는 알리익스프레스에 약 21억 원의 과징금을 각각 부과했다.
관세청 역시 지난해 말부터 2년간 약 232억 원을 투입해 '전자상거래 전용 통관 플랫폼 구축 사업'을 본격 추진 중이다.
이 같은 흐름은 정치권의 입법 논의로 이어졌다.
오세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5일 '해외직구와 온라인 플랫폼 확산에 대응해 소상공인 ˑ 중소기업 보호와 소비자 안전 강화를 위한 7개 법률 개정안'을 대표 발의하며 해외 플랫폼의 국내 책임 강화를 입법 과제로 제시했다.
오 의원은 "중국발 이커머스의 무차별 공세는 단순한 시장 경쟁이 아니라 국내 경제 생태계를 위협하는 구조적 문제"라며 "이번 법안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규제 흐름은 이미 한국 법인을 세우고 제도권 안으로 들어온 C커머스 업체들의 사업 운영을 직접 제약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국내 대리인 지정과 통관 절차 강화는 운영비 부담을 증가시킬 가능성이 크고, 개인정보 고지·동의 의무 강화는 기업들로 하여금 데이터 관리 체계 전반을 재검토하도록 요구한다.
저가 공세와 마케팅만으로는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려운 환경이 본격화되는 셈이다.
국내 이커머스 업계도 전환점을 맞고 있다.
네이버·쿠팡·11번가 등 주요 사업자들은 이미 국내 규제 준수와 물류 인프라 투자에 막대한 비용을 들이고 있는 만큼, 해외 플랫폼에도 동일한 의무가 적용된다면 '역차별' 논란은 완화될 수 있다.
나아가 글로벌 물류망과 초저가 마케팅을 앞세운 C커머스가 제도권 안에서 경쟁하게 된다면, 업계 전반의 경쟁 강도는 높아지더라도 결과적으로는 보다 공정한 시장 환경이 조성될 수 있다.
신지혜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내 기업은 세계 최고 수준의 규제를 부담하는데 해외 플랫폼은 같은 책임을 지지 않는다"며 "위해 상품을 즉시 차단할 수 있는 별도 기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은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까르푸 사례처럼 소비자 요구를 간과하면 시장에서 밀려난다"며 "단순 규제 강화보다 중소상공인의 글로벌 전략 지원과 온·오프라인 결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결국 C커머스의 2차전은 개별 플랫폼의 문제가 아니라, 온라인 커머스 생태계 전반이 규제 환경 속에서 어떤 균형을 찾고 신뢰를 구축하느냐의 싸움으로 확장되고 있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C커머스 규제 강화 흐름 속에서 초기 시장을 흔든 가격 공세만으로는 장기적 성장을 담보하기 어렵다"며 "락인 효과가 뚜렷하지 않으면 성장세는 빠르게 둔화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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